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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같은 내 친구

by 최점순

친구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나와 40년 지기 친구다. 그

녀의 가족과 우리 가족은 성당에서 처음 만났고 그녀의 남편 김옥

배 베드로는 아들의 유아 영세 때 대부를 서 주신 분이다. 그 이후

로 우리는 가족처럼 지냈고 한 동네에서 지금까지 살았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세련된 옷차림에 환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내가 다가갔다.

그녀는 예쁘기도 했지만, 무슨 부탁을 해도 친절히 도와주고 내

고민을 언제나 받아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게 용기가 필요할

때 말없이 힘을 주었고 어렵게 사는 내 처지를 이해해 주고 조언

을 해주곤 했다. 아이들이 소풍을 갈 때면 우리 아이 김밥까지 싸

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

고 도움을 주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여러 형제, 자매들과 성장해서인지 배려심이 많았다.

봉사를 하다가 갈등이 생기면 먼저 상대방의 입장부터 이해하고

맞장구쳐 주며 지지해 주었다. 크고 작은 의견의 차이가 있었지

만 신앙으로 극복하고 형제애를 나누었다. 그녀는 남편의 사업 내

조도 잘 해서 회사를 점점 크게 키웠다. 자신의 사업장에 근무하

는 직원들에게 따뜻한 밥을 손수 지어주었고, 특히 외국에서 돈

을 벌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사는 노동자들에게 외로움을 잊을 수

있도록 엄마가 되어주었다. 늘 공부하느라 바쁜 아들과 딸에게도

폭넓은 세계관과 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신문 사설을 스크

랩해서 읽어 주었다고 한다. 생전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이

웃들에게 사랑을 많이 베풀었고, 아들, 며느리, 손주, 손녀, 딸과

사위를 만나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시던 자상한 할머니였다.

그녀는 우리 성당에서 여성으로 처음 미사 주송을 하도록 발

탁 받았다. 미사에서 주송을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맑

은 목소리로 잘 보아서 신자들의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칭찬을 많

이 받았다. 또한 성모회, 꾸르실료 등 눈부신 활약으로 젊음을 불

태웠다.

아들 김명중(시몬) 성품성사에 그녀가 친자식처럼 기뻐했다.

아들은2004년8월에 부임한 김수길(루도비꼬) 신부님, 원정숙(데레사) 수녀님 재임 기

간에, 김옥배(베드로) 총회장님, 김영희(마리안나) 성소후원회님

외 본당 신자들의 사랑과 기도 덕분에 김태근(베드로) 신학생과

더불어 2005년 7월 8일 종합운동장에서 성품성사를 받았다. 그

녀의 남편 김옥배 총회장님은 대자가 신부님이 되었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1984년 8월, 제11대 주임 김택암(베드로) 신부님이 우리 성당

으로 부임했다. 오래된 건물에서 장마철만 되면 빗물이 줄줄 흘

렀다. 그때부터 신부와 신자들이 뜻을 모아 새 성전 건립추진계

획을 세웠다. 지역적으로 마포 용산은 낙후된 산동네라 집집마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일 먼저 신부님의 출신지

인 이태원 성당으로 건축기금을 모금하러 갔다. 그때 그녀와 나는

함께 모금 활동에 참여했다.

“가난한 동네로 소임을 받고 시집을 가보니 성당 천장에서 빗

물이 새고 있어요. 제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 여러분의 도움을 청

합니다. 시퍼런 지폐를 많이 내주세요.”

미사 강론 시간에 신부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신자들의 웃음소

리와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덕분인지 봉헌함에 가득하도

록 모금을 할 수 있었다.

그녀와 나도 일요일마다 성당묘지에 묻힌 브뤼기에르 초대 조

선 교구장님을 포함해 71분의 친정집과 시집으로 건축 기금을 모

금하기 위해 신부님이 가시는 곳이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부모님의 산소처럼 관리를 해 드릴 테니 건축기금을 후하게 내달라

는 호소력이 통했던 모양이다. 각 단체마다 어묵, 떡볶이, 김밥,

별별 장사를 다 했고, 가정마다 배당된 티켓을 몇백 장씩 팔아서

모인 기금으로 1989년 8월에 성당 봉헌식을 하였다. 그녀는 윤

향희 (데레사) 수녀님을 도와 일등 공신 71분의 성직자 묘지에 철

쭉꽃 모종을 정성껏 심었는데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꽃동산을 이

루었다. 이 철쭉꽃이 피는 계절에 그녀가 떠났다.

그녀는 3개월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회복이 되어 가는 중 다시 쓰러져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

다. 3개월의 정성 어린 딸의 간호에 차도를 보이다가 결국 떠나가

고 말았다. 사람의 생과 사는 하늘의 뜻일까. 그녀가 무의식과 의

식의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하는 동안 가족들도 피를 말리는 고통

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걱정하는 친, 인척 들은 매일 보내오는 사

진이나 동영상을 보고 용기를 내라고 힘을 북돋아 주곤 했다. 그

러나 2023년 4월 18일 엘리사벳(정광열) 자매님은 70세에 안타

깝게도 영면에 들었다. 내가 놀라서 뛰어가니 그녀는 국화꽃 화환

에 둘러싸여 활짝 웃고 있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

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11장 25절)

성당에서 다섯 분의 신부님들이 장례미사를 드렸다. 가득 메

운 신자에게 본당 신부님은 고인의 아름답게 살아온 모습이 짐작

된다고 했다. 그녀는 평소에 농담처럼 자신이 죽으면 다른 사람

을 살릴 수 있도록 장기기증을 하라고 말했다. 고인의 생전 유언

에 따라 여러 명의 귀한 생명을 살려내고, 부활축제 기간에 천국

으로 전입을 했다. 이제 그녀는 아픔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나라

에서 기도하는 천사가 되었다.


어느 형제님이 독창으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고

인이 먼저 가면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모두가 뒤

따라 합창을 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청계산 정원, 그녀의 집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다. 들꽃들

의 향기가 산을 가득히 메웠다.

그녀의 남편이 속삭이듯 말했다.

“여보, 15년만 기다려. 내가 곧 갈게.”

하늘에는 양떼구름이 몽실몽실 떠 있었다.

오늘은 그녀가 떠나고, 내일은 누구의 차례가 될지 아무도 모

른다. 살아오면서 아웅다웅했던 날들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녀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천사가 된 내 친구!

네가 있어서 그동안 외롭지 않고 행복했어,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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