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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같은 내 친구
by
최점순
Apr 23. 2023
친구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나와 40년 지기 친구다. 그
녀의 가족과 우리 가족은 성당에서 처음 만났고 그녀의 남편 김옥
배 베드로는 아들의 유아 영세 때 대부를 서 주신 분이다. 그 이후
로 우리는 가족처럼 지냈고 한 동네에서 지금까지 살았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세련된 옷차림에 환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내가 다가갔다.
그녀는 예쁘기도 했지만, 무슨 부탁을 해도 친절히 도와주고 내
고민을 언제나 받아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게 용기가 필요할
때 말없이 힘을 주었고 어렵게 사는 내 처지를 이해해 주고 조언
을 해주곤 했다. 아이들이 소풍을 갈 때면 우리 아이 김밥까지 싸
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
고 도움을 주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여러 형제, 자매들과 성장해서인지 배려심이 많았다.
봉사를 하다가 갈등이 생기면 먼저 상대방의 입장부터 이해하고
맞장구쳐 주며 지지해 주었다. 크고 작은 의견의 차이가 있었지
만 신앙으로 극복하고 형제애를 나누었다. 그녀는 남편의 사업 내
조도 잘 해서 회사를 점점 크게 키웠다. 자신의 사업장에 근무하
는 직원들에게 따뜻한 밥을 손수 지어주었고, 특히 외국에서 돈
을 벌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사는 노동자들에게 외로움을 잊을 수
있도록 엄마가 되어주었다. 늘 공부하느라 바쁜 아들과 딸에게도
폭넓은 세계관과 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신문 사설을 스크
랩해서 읽어 주었다고 한다. 생전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이
웃들에게 사랑을 많이 베풀었고, 아들, 며느리, 손주, 손녀, 딸과
사위를 만나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시던 자상한 할머니였다.
그녀는 우리 성당에서 여성으로 처음 미사 주송을 하도록 발
탁 받았다. 미사에서 주송을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맑
은 목소리로 잘 보아서 신자들의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칭찬을 많
이 받았다. 또한 성모회, 꾸르실료 등 눈부신 활약으로 젊음을 불
태웠다.
아들 김명중(시몬) 성품성사에 그녀가 친자식처럼 기뻐했다.
아들은2004년
8월에 부임한 김수길(루도비꼬) 신부님, 원정숙(데레사) 수녀님 재임 기
간에, 김옥배(베드로) 총회장님, 김영희(마리안나) 성소후원회님
외 본당 신자들의 사랑과 기도 덕분에 김태근(베드로) 신학생과
더불어 2005년 7월 8일 종합운동장에서 성품성사를 받았다. 그
녀의 남편 김옥배 총회장님은 대자가 신부님이 되었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1984년 8월, 제11대 주임 김택암(베드로) 신부님이 우리 성당
으로 부임했다. 오래된 건물에서 장마철만 되면 빗물이 줄줄 흘
렀다. 그때부터 신부와 신자들이 뜻을 모아 새 성전 건립추진계
획을 세웠다. 지역적으로 마포 용산은 낙후된 산동네라 집집마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일 먼저 신부님의 출신지
인 이태원 성당으로 건축기금을 모금하러 갔다. 그때 그녀와 나는
함께 모금 활동에 참여했다.
“가난한 동네로 소임을 받고 시집을 가보니 성당 천장에서 빗
물이 새고 있어요. 제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 여러분의 도움을 청
합니다. 시퍼런 지폐를 많이 내주세요.”
미사 강론 시간에 신부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신자들의 웃음소
리와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덕분인지 봉헌함에 가득하도
록 모금을 할 수 있었다.
그녀와 나도 일요일마다 성당묘지에 묻힌 브뤼기에르 초대 조
선 교구장님을 포함해 71분의 친정집과 시집으로 건축 기금을 모
금하기 위해 신부님이 가시는 곳이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부모님의 산소처럼 관리를 해 드릴 테니 건축기금을 후하게 내달라
는 호소력이 통했던 모양이다. 각 단체마다 어묵, 떡볶이, 김밥,
별별 장사를 다 했고, 가정마다 배당된 티켓을 몇백 장씩 팔아서
모인 기금으로 1989년 8월에 성당 봉헌식을 하였다. 그녀는 윤
향희 (데레사) 수녀님을 도와 일등 공신 71분의 성직자 묘지에 철
쭉꽃 모종을 정성껏 심었는데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꽃동산을 이
루었다. 이 철쭉꽃이 피는 계절에 그녀가 떠났다.
그녀는 3개월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회복이 되어 가는 중 다시 쓰러져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
다. 3개월의 정성 어린 딸의 간호에 차도를 보이다가 결국 떠나가
고 말았다. 사람의 생과 사는 하늘의 뜻일까. 그녀가 무의식과 의
식의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하는 동안 가족들도 피를 말리는 고통
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걱정하는 친, 인척 들은 매일 보내오는 사
진이나 동영상을 보고 용기를 내라고 힘을 북돋아 주곤 했다. 그
러나 2023년 4월 18일 엘리사벳(정광열) 자매님은 70세에 안타
깝게도 영면에 들었다. 내가 놀라서 뛰어가니 그녀는 국화꽃 화환
에 둘러싸여 활짝 웃고 있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
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11장 25절)
성당에서 다섯 분의 신부님들이 장례미사를 드렸다. 가득 메
운 신자에게 본당 신부님은 고인의 아름답게 살아온 모습이 짐작
된다고 했다. 그녀는 평소에 농담처럼 자신이 죽으면 다른 사람
을 살릴 수 있도록 장기기증을 하라고 말했다. 고인의 생전 유언
에 따라 여러 명의 귀한 생명을 살려내고, 부활축제 기간에 천국
으로 전입을 했다. 이제 그녀는 아픔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나라
에서 기도하는 천사가 되었다.
어느 형제님이 독창으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고
인이 먼저 가면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모두가 뒤
따라 합창을 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청계산 정원, 그녀의 집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다. 들꽃들
의 향기가 산을 가득히 메웠다.
그녀의 남편이 속삭이듯 말했다.
“여보, 15년만 기다려. 내가 곧 갈게.”
하늘에는 양떼구름이 몽실몽실 떠 있었다.
오늘은 그녀가 떠나고, 내일은 누구의 차례가 될지 아무도 모
른다. 살아오면서 아웅다웅했던 날들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녀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천사가 된 내 친구!
네가 있어서 그동안 외롭지 않고 행복했어,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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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점순의 브런치입니다. 글 쓰기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주어진 일상을 글쓰기로 채우고 싶다. 진솔한 삶의 이야를 써서 독자들이 공감 할 수 있도록 많이노력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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