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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얼굴

by 최점순


길을 모르면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사십 대로 보이는 남자

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실례합니다. 창5동 성당을 찾고 있어요. 아시면 가르

쳐 주세요.”

그는 나를 쳐다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고

말은 어눌하게 했다. 이쪽으로 쭉, 저쪽으로 쭉, 사거리에서 꺾어

서 돌아가라며 턱짓과 손짓을 번갈아 가며 가르쳐 주었다. 그 사

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어 긴 한숨을 뱉었

다. 고개를 휙 꺼떡이며 따라오라는 듯 앞장을 섰고 나는 그 사

람 뒤통수만 보고 걸었다. 불안불안했지만 꾹 참았다. 한참 골목

으로 요리조리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저어기”라며 가리

키는 손가락 끝으로 성당이 보였다. 고맙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말없이 왔던 길을 휘청휘청 걸어가며 환하게 웃었다.

마당의 성모상 앞으로 가서 넙죽 절을 했다. 성당 문이 잠겨 있

었다. 월요일이라 쉬는 날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라

도 있는지 한 바퀴 돌았다. 인터폰을 수없이 눌렀다. 반응이 없

었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멀리서 왔는데 난감했다. 그러

던 차에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가 났다. 오십 대로 보이는 젊은 남

자가 성당 마당으로 들어왔다. 무엇을 찾고 있는 듯 구석구석 둘

러보았다.

“저기요. 말씀 좀 여쭈어도 될까요? 저는 타 본당에서 순례 왔

어요. 월요일이라 문이 잠겼어요.”

“쉬는 날이라 외출하고 아무도 없어요.”

그분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말을 되풀이했다. 다시 올 시간은

없는데 어떻게 할까 망설였다.

“서울주보 한 부라도 구할 수 있을까요?”

그는 난감한 듯 말했다.

“성당 문이 잠겨서 가지고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럼, 분리수거 통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왜요? 어제가 일요일이라 쓰레기통에 쓸려 들어갔을지도 모

르잖아요.”

그는 이상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일 년 전에는 자신도 이

성당 신자였는데 분할해서 살림을 났다고 했다. 멀리서 온 손님을 대접 못 했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왕 왔으니 주보를

꼭 가져가야 하는데 생떼를 쓴다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내 말을 이해했는지 빠른 걸음으로 맞은편 담벼락 밑에 쌓아 놓은

비닐봉지를 쏟았다. 다행히 어제 밤비 맞아 젖은 서울주보가 있

었다. 나는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기뻤다. 허리를 숙여 감사드

리니, 그의 표정이 박꽃처럼 하얗게 피었다.

계단에 젖은 주보를 펼쳐놓았다.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바쳤

다. 마당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기도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 기

념 2015년 12월 8일~2016년 11월 20일까지 프란치스코 교황

님이, ‘자비의 희년’ 선포하였다.” 내 주위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자비의 얼굴이 어떤 모습일까. 속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모

든 민족을 위해 기도를 바쳤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외, 사제, 성직

자, 수도자, 성 소자, 종교를 초월해서 각종 사목자들을 위해, 북

한 동포들이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기도를 드렸다. 어느

새 내 마음이 잔잔한 호수같이 맑아졌다. 오늘 만난 사람들을 생

각했다. 아침에 길을 인도해 주느라 마음을 써 준 분들이 자비의

얼굴같이 보였다.

오후 늦게까지 앉아 있었다. 이 성당 주인이 된 듯하였다. 성경

책을 들고 마당을 서성거리니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내곁으로 왔다. 아마 내가 이 성당 신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초

면에 말을 걸어왔다.

“성당 문이 잠겨 못 들어가겠어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도 못 들어갔어요.”

내 옆으로 와서 조심스럽게 앉았다. 처음 보는 나에게 “저는 성

모님 신심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편안해 보였지만 약간 수심에

잠긴 듯했다. 내 경험으로 보면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에게는 부

담이 없이 속을 털어놓아도 뒤탈이 없었다. “성모 신심이 돈독했

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서 내 반응이 어떤지 빤히 쳐다보았

다. 그녀의 얼굴은 천사표라고 씌어 있었다. 이렇게 착해 보이는

데 성모 신심이 없다는 말이 아이러니했다.

나는 잠시 고백 신부가 되었다. 그녀의 사연을 정성껏 들어주

었다. “성모님은요. 하느님의 자녀들이 예수님께로 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시어머니와 따로 살다

가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합쳤다고 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

데 함께 사는 일이 버겁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나의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친근감이 생겼다.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의사소통이 잘 되었고 친동생같이 측은했다. 우리의

만남이 하느님의 은혜 같아 기도하고 노모를 모시고 열심히 살라

며 꼭 안아주었다. 축복을 빌어주니 그녀는 이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났다며 밝게 돌아갔다.

3시가 넘었다. 밥 달라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가방에

챙겨간 음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그때까지 성당 문을 여는 사람

은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앉아 있으니 정문으로 체

형이 좋은 남자분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는 얼른 일어나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약간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 누구세요.” 그분이 말했다. “성당 문이 잠겨서 못 들어가요.”

“네, 월요일은 쉽니다.” 짤막한 한마디를 날리고 돌아섰다. 띠띠

띠띠 번호 키를 누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동작이 너무 빨랐다.

문을 여는 것으로 보아 짐작은 갔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또 한참 시간이 흘렀다. 삼십 대로 보이는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저기요, 성당 문이 잠겨서…. 그분은 발길을

멈추고 인자한 표정으로 웃었다.

“보좌 신부입니다.”

“아, 예, 저는 이 성당으로 순례를 왔습니다. 성체 조배를 드리

고 싶어요.”

“자매님 잠깐이면 되지요?”

“예.”

이층 성당으로 올라갔다. 아침에 와서 오후까지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제대 앞에 앉았다. 성서 구절이 생각났다. (루카 18, 6) 불의한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졸라대면 들어준다는 말씀이었다. 감

사 기도를 30분 정도 바쳤다. 보좌 신부님은 바로 의자 두 칸 뒤

쪽에 앉아 기다렸다. 순례 다니다 보면 오늘 같은 행운도 생겼다.

기도를 마치고 현관으로 나왔다.

“안수 기도를 해 드릴까요?”

“네.”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축복해 주었다.

내 주위에 자비의 얼굴은 많았다. 그동안 내가 발견하지 못했

을 뿐이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오늘 만난 소박한 세 사람들이었

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관심이었다.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상

대방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써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세 분의 환한 표정 속에 예수님의 모습이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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