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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꽃자리 /최점순

by 최점순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구상 「꽃자리」 중에서


어린 시절 나의 꽃자리는 미루나무가 춤추는 곳이었다.

사미동네 어귀에는 언제부터인지 전설처럼 앉아 있는 고인돌이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뜨거운 볕을 받아 구들장처럼 달아올랐다. 여러

명의 친구들이 공기받기를 할 수 있는 넓고 평평한 품을 내주었

다. 어른들도 일하다가 허리 아프면 돌 위에 누워 등을 지지곤 했

다. 여름날 누워서 귀를 기울이면 먼 옛날부터 구전으로 전해오

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했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성근 별들이 떠

고 있다. 종일 햇볕에 달궈진 돌 축대는 유년의 고인돌처럼 따뜻

해서 좋다. 공원은 변화무쌍하게 사계절이 오고 간다. 봄이 되면

매화와 개나리, 벚꽃이 피고 백목련은 형광등 알처럼 부풀어 오

른다. 여름이면 벌, 나비의 날갯짓을 따라 나의 시선도 이 꽃 저

꽃으로 날아오른다.

삼 년째 나의 꽃자리로 출근을 한다.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 챙

겨온 빵과 생수를 먹고 책을 읽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내 어

스름이 내린다. 나뭇잎 사이로 뜨거운 볕이 쨍쨍 내리쬐면 머리

를 따끈하게 달군다. 동네 어르신들도 먼저 와서 앉아 있다가 나

를 보면 자리 임자 왔다고 일어섰다. “할머님, 제가 다른 곳에 가

면 됩니다. 그냥 계세요.”라고 말씀드려도 손사래를 친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물러갈 때쯤 되니 고인돌처럼 평평한 나의 꽃자리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편안한 자리가 되었다.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 한번 결정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몰입했던 시간들이 쌓였을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달리고 달려

왔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불청객이 속도 조절을 하라고 걸음을

멈추어 세웠을까.


시대를 막론하고 노인들이 모이면 소문을 가지고 재밌어한다.

나의 꽃자리 밑에 터를 잡은 할머니들의 대화 속으로 빨려든다.

누구네 아들은 오십인데 장가도 못 가고, 승무원 딸을 둔 집은 하

늘길이 막혀 실직했다는 재미있는 사연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다.

집집마다 강아지가 호감도 순위 1위, 할머니 할아버지는 비호감

도 1위라는 씁쓸한 소리에 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귀가 순

화된 것일까. 거친 말도 정겹게 들린다. 이 자리에서 나는 작가

의 꿈을 꾼다.


나의 꽃자리는 꿈을 꾸게 하고 사색하는 동안 좋은 스승이 되어주는 곳이다.

어두운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선물 같은 장소다.

어릴 적 함께 놀던 사미 효선중리 친구들이 생각나게 한다.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곳에서 피워 올렸던 상상들은 언제라도

다시 펼쳐 볼 수 있는 이야기로 갈무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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