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을 타고 외곽으로 쑥 빠져나가는 동안 푸른 물결이 출렁거렸다. 허수아비가 바람에 올라타고 양팔을 흔들었다. 용문역에 내려 시장 입구에 들어섰다. 난전에 육, 칠십 대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좌판을 벌여 놓았다. 그 위에는 햇볕을 밭은 산나물과 풋고추, 아욱 나물이 파랗게 웃었다. 흰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휘감고 은비녀를 삐딱하게 꽃은 할머니 앞에 섰다. 고무통에는 다슬기가 가득 찼다.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다슬기가 살이 통통하게 실해요.”
“어젯밤에 우리 영감이 주워온 것이여.”
꼼지락거리며 고무통 위로 기어 올라왔다. 밖으로 나온 몇 마리를 거칠한 손바닥 위로 건져 올렸다.
“이것 봐, 아직도 꿈틀거리잖아. 한번 구경해 볼래?”
내 손에 올려놓았다. 빨판을 피부에 딱 붙이고 더듬이를 내밀어 나를 쳐다보았다. 미끈미끈해 온몸이 번데기처럼 오그라들었다. “어머, 팔뚝까지 올라온다.” 가만히 보다가 아련한 그날로 들어갔다.
새댁 소리를 들었던 시절이었다. 여름밤에 다섯 동서가 전등 하나씩 들고 냇가로 갔다. 다슬기를 주워서 아침 국거리를 장만하기 위해서였다. 누가 더 많이 줍나, 내기를 했다. 세 형님은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었다. 내 눈에는 한 마리도 안 보여 물속을 첨벙거리며 돌아다녔다. 한 마리도 못 잡아 깊은 물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으악, 바위 둘레에 다슬기가 무덕무덕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그만 욕심이 생겼다. 겁도 없이 한 발 한 발을 쓱, 밀어 넣다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람 살려!”
젖 먹던 힘을 다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허우적거릴수록 점점 더 깊이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누가 내 머리채를 확, 끌어당겼다. 자갈밭에 엎어 놓고 등을 탕탕 두들기는 소리에 푸, 뱃속의 물을 왈칵왈칵 게워냈다. 사 동서가 고막이 찢어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자네 때문에 물귀신이 될 뻔했잖아. 아휴, 십년감수했다. 만약에 물에 빠져 죽었으면 어쩔 뻔했어?”
큰동서가 어른들께는 비밀에 부치자고 했다. 지난밤에 며느리들이 냇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리가 없었다. 아침에 다슬깃국을 맛있게 끓였다며 모두 칭찬을 했다. 그 후부터는 동서가 둘씩 짝지어 물이 발목에 오는 곳에서만 주웠다. 다슬기는 햇볕이 뜨거운 한낮에는 깊은 물 속에 숨어 있다가 저녁 무렵에 물가로 나와 바위틈에 빨판을 딱 붙이고 있다. 그래서 초저녁이면 한 소쿠리씩 잡을 수 있었다.
다슬기는 여름에 왕성한 활동을 한다. 육질이 쫄깃쫄깃해서 식감도 좋고 맛이 일품이다. 큰동서는 해마다 많이 주워 비닐 팩에 담아 냉동실에 저장해놓는다. 도시로 흩어졌던 형제들이 모이면 가마솥에 국을 가득 끓였다. 나는 철부지라고 시부모님과 손윗동서들이 배려를 많이 해주었다. 시부모님이 다 돌아가시니, 일 년에 한두 번씩 기일에 만난다. 형제들이 처자들을 거느리고 도착하는 순서대로 냉면 그릇에 밥 한 공기를 텀벙 쏟아부었다. 고향의 향기를 음미하며 허기진 마음을 달랜다. 해마다 명절은 물론이고 휴가철에도 당연한 듯이 시부모님이 안 계셔도 칠 남매는 고향으로, 고향으로 몰려든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다슬깃국이 단골 메뉴였다. 큰동서는 배려심이 많아 아랫동서들에게 인정을 베풀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편도 큰형수님이 끓인 국을 먹어야 고향에 온 것 같다고 한다. 이제는 여러 형제들이 고희를 넘겼다. 고향의 맛이 그리워질 때는 한여름밤 뒤척거리며 보리밥에 뻑뻑한 다슬깃국 한 그릇이면 이마에 땀을 뻘뻘 흘렸던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몸은 늙어가도 마음은 언제나 그 시절로 향했다. 다슬깃국 끓이는 비법을 시어머니에게서 큰동서가 물려받았다. 도시에서 삶이 버거울 때면 가슴 절절하게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어진다.
용문시장 할머니에게서 다슬기 두 사발을 만 원에 샀다. 비닐봉지에 물과 다슬기를 담아 전철을 탔다. 투명한 봉지에서 다슬기들이 승객들을 쳐다보며 두리번거렸다. 자신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궁금한지 창밖을 내다보는 듯했다. 집에 와서 소금을 약간 풀어 하룻밤 해감시켜 놓았다. 이튿날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이다가 다슬기를 넣고 10분 정도 두었다가 건지면 된다. 이쑤시개로 빨판을 꼭 찔러 잡아당기면 뱅글뱅글 돌면서 속살이 모양대로 쏙 빠진다. 삶은 국물에 조선 배추, 부추, 고사리, 파, 붉은 고추를 넣고 푹 끓이면 전통 다슬깃국이 완성된다.
세월이 얼마나 더 흘러야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다섯 동서가 자매처럼 늙어간다. 만나기만 하면 물에 빠졌던 그날의 이야기가 화제에 오른다. 한바탕 집이 떠나가도록 웃음이 폭발한다. 동서들의 돈독한 정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그 옛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