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이다. 겨울을 밀어낸 봄바람이 뭇 생명체를 살랑살랑 흔들어 깨우고 있다. 저 멀리 수표교와 오간수교가 있었던 흔적으로 자리했다. 25년 전에는 찌든 물이 흘렀던 강이었다. 개복 후 명승지가 되어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구정물이 흐르던 그날의 검은 물속으로 기억을 옮겼다.
아들 친구가 집을 나갔다.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도 시원찮을 고3이었다. 수능을 앞두고 부모님의 기대가 부담으로 작용한 탓이었다. 그런데 내 아들이 몇 달 동안 친구를 찾아 돌아다녔다. 보다 못한 나도 아들 친구를 찾아 나섰다. 번번이 허탕이었다. 속이 타들어 갔다. 수능이 백일 남았다. 아들의 모의고사 점수는 자꾸 떨어졌다. 몇 달 동안 책 대신에 친구를 찾은 결과였다. 그 와중에 학교 선배들이 하굣길을 막고 돈을 요구했다. 아들은 이중고에 시달렸다. 평소에는 온순한 아들이 분노가 가득 차서 돌아왔다. 집 나간 선배들이 책가방을 뒤지고 회수권도 털어갔다고 한다. 빈털터리로 친구 찾아 삼만 리를 돌아다녔다. 그만 멈추라고 말했다.
“엄마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날카로운 한마디가 날아왔다.
“어른들은 왜, 자기 자식만 그리도 소중합니까? 남의 자식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단 말이에요?”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거렸다. 혹시나 친구가 돌아왔나 해서 찾아가면 그 집 부모님은 너 때문에 집을 나갔다며 억지를 썼다. 그럴수록 친구를 찾아서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 한다며 눈에 불을 켰다. 그러나 엄마는 달랐다. 내 자식이 우선이었다. 그런 내게 그는 말했다.
“어머니, 저는 대학에 못 들어가도 친구를 찾을 겁니다.”
친구가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며 요지부동이었다. 청계천에는 집 나온 학생들이 모여 살았다. 아들이 친구를 구해야겠다는 가상한 마음은 험악한 분위기에 눌러버렸다. 도리어 멱살을 잡혀 붙들렸다. 한밤중이었다. 술을 마시고 자기 패거리들끼리 한바탕 싸움이 붙었다. 그때야 정신이 들었는지 엄마의 말을 들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도망갈까, 포기할까, 두려움에 떠는데 엄마가 애절하게 부르는 ‘효자’라는 애칭이 환청으로 들렸다고 한다.
‘효자야, 효자야, 어서 나와라.’ 귀에 들린 환청이 신호처럼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왔다. 아들은 친구의 옷자락을 끌어당겨 하수구로 빠져나와 줄행랑을 쳤다.
이른 새벽이었다. 대문 소리가 삐거덕 났다. 그 소리의 주인은 아들과 아들 친구였다. 넝마주이 몰골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순간 내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아, 하느님, 두 명의 탕자들이 돌아왔습니다.”
눈물 콧물이 뒤범벅되어 흘려내렸다.
“이놈들 고생했다. 참 잘 왔다.”
목욕탕으로 들여보냈다. 하수구 냄새가 풀풀나는 몰골을 친구 부모가 보면 까무러칠 것 같았다. 우리는 입을 맞추었다. 나는 아침밥을 먹여서 둘을 학교로 보냈다. 학교가 파한 후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부모님이 교복을 입고 집에 돌아온 아들을 보고 얼굴을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들의 우정은 감동을 주었다. 사랑은 단순했다. 아들은 친구 생각뿐이었다. 이름 대신에 불렀던 애칭이 아들과 친구를 살렸다. 반면의 나는 신앙생활을 머리로만 했다. 예수님 사랑의 계명을 몰라서 못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세월의 때가 묻어 생각이 복잡했다. 아들 친구의 부모는 일류 대학으로 자식을 무리하게 몰아넣었다. 대학이 무엇이기에 거리로 내몰았을까. 나도 부모의 마음이라 눈에는 계산만 보였다. 친구가 마음을 잡을 때까지 아들은 친구 옆에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성당으로 인도해 영세 대부도 서 주었다. 그 후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졌다. 그들에게 새로운 미래가 환하게 펼쳐졌다. 이제 나는 아들이 하나에서 둘이 되었다. 배도 아프지 않고 새로 얻은 아들이 어머니라고 불렀다.
청계천은 변함없이 흐른다. 그들은 천변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엄마가 불러준 ‘효자’라는 애칭이 아들을 어른으로 만들었을까? 내가 만약 ‘이 원수야’ 하고 불렀다면 그는 지금 무엇이 되었을까? 말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양날의 칼이라,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농담이라도 한번 뱉은 말은 부메랑이 되어 자기에게로 돌아온다고 한다. 청계천 강물은 그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없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강물은 그들의 우정을 품고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