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번개소리에 깜짝 놀랐다. 굵은 빗방울이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듯 쏟아진다. 8월 15일이 다가 오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명치끝이 아려오곤 한다. 일본징용에서 얻은 공황장애로 고생하시면서도 검은 전대를 배에 차고 사셨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가족들에게는 금기사항이되섰던 날들이 지난지도 오래 되었다. 소낙비에 아버지 산소에 흙이 떠내려갔는지 걱정이 되어 찾아뵈러 간다.
길은 초목으로 우거져 있다. 풀 섶을 더듬거리며 발로 툭툭 차며 올라간다. 빨간 나리꽃과 들꽃이 향기를 뿜어내며환영해 준다. 봉긋한 매봉을 파란 잔디가 감싸 안아 흙이 쓸려가지 않았다. 신문지 위에 북어와 소주잔을 차려 놓고 엎드리니. 흙냄새와 뜨거운 열기로 숨이 콱 막힌다. 우리나라 수난역사와 아버지의 인생이 물레방아처럼 맞물려 돌고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 온 후오래동안 시름시름 앓으셨다. 생과 사의 갈림에서도 딸을 애타게 기다렸다는 말을 동생에게 전해 듣고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다. 세월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간다.
남편은 지방출장 중이었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두고는 내려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간밤에 아버지가 호련이 우리 집으로 오셔서 너무 반가운 나머지 손을 덥석 잡았다.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이였기에 알 수 없는 불안이 몰려왔다. 예감은 적중했다. 새벽에 아버지가 운명하셨다는 전보가 빗발쳤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눈물콧물범벅이 된 채 도착했다. 삼복더위에 멀리 사는 집안 대소가들도 속속 모였다. 시원한 소나무 관속에서 깊은 잠이 드셨는지 평풍을 쳐놓았다. 영정사진 속에서 인자하게 웃고 계시는 아버지와 마주하니 슬픔이 한꺼번에 올 라왔다. 사춘기에 방황하며 불효했던 날들도 끝없이 밀려왔다.
벌써 수 십 년이 지나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살면서 엄마와는 살가운 정이 없어서인지 아버지의 정이 더 그리웠다. 혼잣말처럼 에그, 못난 부모를 만나서 고생이 많다며 측은해하시던 눈빛을 잊지 못한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고, 친정에 방문인사를 갔던 날, 몸이 허약해 콜록콜록 기침소리를 들고 걱정이 되셨을까. 여자는 아기를 낳고 몸조리를 잘하면 무슨 병이라도 고칠 수 있다고 하셨다. 첫 딸을 낳고 연락을 드렸다. 팔대장신에 검은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어깨에는 대장각 미역과 북어 20마리를 어깨에 걸고 달려오셨다. 등에 맨 봇짐을 풀어보니 고향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도라지조창, 익모초조창, 토종꿀 등, 산후 중인 딸자식에게 먹이려고 밤낮으로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고아온 약들이었다.
시집가족들이 친정아버지의 사랑에 감동하셨다. 사랑방에서 시아버지와 밤새워 담소를 나누셨다. 딸과 갓 태어난 손녀를 방하나 사이에 두고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셨다. 가풍家風 있는 사돈지간이라 체면상 내색을 못 하셨을 것이다. 이틀 묵는 동안 큰 동서가 산후바라지하면서 아버지의 삼시 세끼 식사를 대접했다. 산기로 얼굴이 부석부석한 딸을 향해 몸조리 잘하라고 당부하셨다. “아버님, 살펴 가세요.” 터벅터벅 기차역타로 가시는데 나를 업어 주셨던 아버지의 넓은 등이 너무도 쓸쓸해 보여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멀리서 오셨는데 여비도 못 드리는 내 처지가 말할 수 없이 서글펐
다.
어릴 적 아버지는 보릿단에 파묻혀 지게만 보였다. 논두렁에 보리이삭이 흔들흔들 춤을 추면 우물가로 달려갔다. 두레박으로 퍼 올린 물을 양푼에 담아 사카린 두 세알을 떨어뜨리고, 숟가락으로 휘휘 젖으면 달콤한 주스가 완성되었다. “아버지 물, 드세요.” 턱밑까지 높여 들고 재촉을 했다. 아버지는 단숨에 흡입하듯 벌컥벌컥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휴, 시원하구나.”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출렁출렁 들판으로 걸어가셨다.
아버지의 삼베바지적삼이 늘 칙칙했다. 얼굴에도 버석거리는 소금꽃이 피고 졌다. 일제의 탄압이 얼마나 가혹했으면 뼈골에서 진액이 다 소진되었을까. 여름날 천둥번개가 쾅쾅 괴성을 지르면 불안에 떨곤 하셨다. 비밀스러운 무엇을 가족들에게는 숨기시고 혼자만 몰래 꺼내 보시곤 장롱에 넣어두셨다. 가족들은 궁금했지만 상처가 덧날까 봐 쉬쉬했다. 자식들에게 전쟁이야기를 자주 해 주셨다. 일본군의 총에 맞아 죽은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이면, 아버지는 몰래 땅을 파고 묻어주다가 들키는 날에는 몽둥이질을 당하고 영혼육신이 피폐해져 백약이 무효였고 이제는 영원한 훈장이 되었다.
젊은 시절 나의 인생에도 자주 굴곡이 덮치곤 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내거나 아이들이 다쳤다. 호미로, 삽으로도 막지 못하면 살림살이가 궁색해졌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숨겨두신 검은 전대錢臺가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보다 몇 배나 고생을 하셨는데도 묵묵히 견뎌내셨다. 아버에게 물려받은 은근과 끈기로 극복해 낼 수 있었다. 인생의 강물은 저만치 흘러가고 회환만 가슴에 남았다.
폭우가 쏟아지니 아버지의 산소에도 초록물이 번진다. 서산에 걸린 붉은 달이 손짓하는 듯했다. 8월이면 연민과 슬픔이 교차한다. 전대에는 쓸 수 없는 패망한 나라의 지폐라는 것을 알았다. 갈잎처럼 불소시계로 태우던 날, 당신의 기구崎嶇했던 운명도 불구덩이 속에서 산화시켰으리. 후손들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꼭 기억하기를 소망한다. 시원한 솔바람을 타고 말매미들이 꽥, 맴 맹 합창소리를 뒤로 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