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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점순 Aug 04. 2023

마포우체국 가는 길

마포 우체국 가는 길/ 최점순

마포 우체국 가는 길이다. 우체국을 상징하는 로고 새, 제비를 보면 반가운 마음에 설렌다. 창구로 눈을 돌리니 그녀가 보이지 않아 여직원에게 “신복희 씨는 휴가 중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정년퇴임을 하셨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뜻밖의 소식을 접하니 오랜 세월 그녀와 함께 쌓아왔던 정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우체국에 가면 신복희 씨는 고객에게 최선을 다 하는 직원이었다. 정년퇴임 소식을 듣고 친정집에 왔다가 엄마를 못 만나고 돌아가는 쓸쓸함이 밀려온다. 나에게 희망을 주었던 우체국 로고 새를 손에서 놓쳐버린 듯 가슴 밑바닥에서 울컥했다. 30대에 우체국에서 예금통장을 개설할 무렵 창구에 앉았던 그녀는 20대 아가씨였다. 서울에는 일가친척이 없어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리면 눈앞이 캄캄했다. 그녀의 권유로 보험과 예금, 적금을 들어 놓았더니 몫 돈이 필요할 적마다 요긴 쓸 수 있었다. 때로는 급하게 집을 나섰다가 도장을 빠트리고 가서 인출을 못해 난감했다. 그때마다 카드를 재발급해서 돈을 찾을 수 있었다. 몇 십 년 동안 들락거려도 차도 한잔 못하고 이별 소식에 너무 섭섭했다. 정년퇴임 축하드린다는 메시지를 보냈더니 그녀에게 답장이 왔다.


〖문자를 받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오랜 세월 동안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우체국 생활이 무엇에 쫓기듯 허둥지둥 지나다 보니 정년이 되어버렸네요. 지금까지 새장 속새처럼 삭막한 도시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살아왔습니다. 그런 인생을 벗어나 좀 자유로운 생을 살아볼까 생각 중입니다. 사모님 때문에 정말 행복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웃음꽃이 함께 하시기를~^^〗


돌아보니 세월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내가 30대부터 우체국을 이용했는데 벌써 칠십 줄에 들어섰다. 예쁘고 상냥한 그녀도 세월을 비켜가지는 못한 모양이다. 마포 우체국은 집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걸린다. 저축은행의 부도로 돈 손실 본 후 우체국 예금이 안전할 것 같았다. 가족들의 통장을 개설한 후 딸과 아들도 명절에 세뱃돈 받으면 엄마와 셋이서 경주하듯 예금하러 달려가곤 했다. 그녀도 한 마리의 노고 새가 된 듯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했다가 잊을 만하면 돌아와서 반갑게 재회를 했다.


젊은 시절 남편이 근무하는 오지를 자주 방문을 했다. 당시에는 현금이 있어야 버스도 타고 숙박시설이나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시골에 사는 친척들을 방문할 적마다 돈이 금방 바닥이 나면 농, 어촌 어디를 가도 우체국이 있었기에 40년 동안 우리 집 금고처럼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남편의 월급을 타면 가족들의 통장에 꼬박꼬박 예금을 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예금통장에 넣어 두었던 돈을 정기적금으로 갈아타는 날은 하루 종일 뿌듯했다. 하지만 가족들이 저축습관이 자리를 잡기까지 험난한 현실의 벽을 넘어야만 했던 눈물겨운 시절도 많았다.


돈이 발이 달렸는지, 들어오기가 무섭게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칠 남매 형제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살아 경조사가 겹치면 저축할 돈이 없었다. 고심 끝에 몇 천 원을 들고 우체국으로 가면 그녀는 내 처지를 이해한다는 듯 친절하게 반겨주었다. 돌아오면서 부업을 해서라도 매달 저축하는 금액을 늘리고 싶었다. 동네 아주머니와 용산 전자 상가에서 일감을 받아왔다. 한 달에 몇 십만 원을 벌어서 저축을 할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밥을 먹지 않아도 마음 부자가 된 듯했다.


하지만 우체국에 가는 날은 갈등도 생겼다. 남편이 아픈 몸으로 벌어주는 월급이라 아동복 가게, 신발가게, 반찬가게 앞에 수없이 망설였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 삼수갑산을 갈망정 자식들에게 브랜드 신발을 사주려다가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딸과 아들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책과 옷을 새로 사지 않고 물려받아서 사용했다. 살면서 쌓인 검소함과 노하우를 발휘하여 자식들의 뒷바라지와 전세보증금도 조금씩 올려주었다. 장기적금으로 묶인 돈은 밤에 잠도 자지 않는지 탈 적마다 이자가 불어났다. 그렇게 나만의 계획이 착착 진행되었고 딸과 아들에게 공부방을 마련해 주고 싶다는 간절한 꿈을 우체국 로고 새에게 띄어 보내곤 했다.


딸이 졸업 후 취업을 했다. 첫 월급을 타서 봉투째로 엄마에게 가져다주었다. 남편이 번 돈은 당연시하며 생활비로 썼지만, 자식이 번 돈은 아까워서 한 푼도 쓰지 못하고 몽땅 우체국 적금을 들었다. 저축을 늘려 갈수록 견고한 바위처럼 현실적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예금 적금을 탄 돈으로 새 아파트 중도금, 잔금을 치를 수 있었고, 딸의 결혼을 대비해 들어 놓았던 만기 적금을 타서 혼수품을 장만해 주었다. 그녀는 창구에서 입출금을 하던 나의 경제적인 규모와 인생 일대기를 지켜보았다. 남편의 수술 회복을 위해 노을빛 쉼터를 구입할 때도 돈이 부족해서 막막했는데 그녀가 우체국 보험에서 융자를 받게 해 주어 잔금을 치를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우체국문을 열자, 첫 방문하는 고객에게 상품을 준다는 이벤트 행사에 내가 뽑혔다. 우체국에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종합선물세트를 탈 수 있었다.


마포 우체국 가는 길, 젊은 시절 그녀의 권유로 미래지향적 인생 설계를 한 덕분에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노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녀와 나는 40년 동안 고객과 직원을 넘어 눈에 보이면 반갑고 안 보이면 안부가 궁금해지고 소중한 사람임을 늦게 깨달았다. 정년퇴임 후 2막 인생을 출발하는 오랜 친구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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