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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점순 Oct 30. 2023

탄광

 


개나리가 노란 손수건을 흔들어 준다. 문경 시댁으로 가는 길이다. 내 삶의 매듭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모천인 탄광으로 향한다. 창밖 빈들에는 봄볕을 받은 새싹들이 물들어간다.

여기 은성광업소는 50년 이상 무연탄을 캐냈다. 노다지가 쏟아진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땅속에 매장된 석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광부들은 굴을 뚫고 석탄을 캐내어 지하 수천 미터에서 전차로 올렸다. 시대에 밀려 폐광이 되었다가 지금은 석탄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어머님은 결혼 후에 신앙생활을 시작하셨고 나도 따라 갔다. 신앙의 거미열차에 그녀는 5남 2녀를 태웠다. 단벌 무명 적삼 차림이었다. 검은 통치마는 구멍이 뚫려 겨울이면 황소바람이 들락거렸다. 치마폭마다 매달렸던 자식들은 우후죽순처럼 성장하여 대학에 들어갔다. 장성한 아들딸은 결혼을 하고도 한 지붕 밑에서 살았다. 바가지에 소복하게 담아 놓은 알밤처럼 손자들이 태어났다. 텃밭에는 사철 싱싱한 야채들이 파랗게 펼쳐지고, 울타리로 심어 놓은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들은 며느리의 입덧을 가라앉히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몇십 년 전, 이곳은 산천초목이 거뭇거뭇하고, 강물 속에는 까만 돌들이 속삭이며 굴러갔다. 가로수의 검은 나뭇잎들이 나비처럼 팔랑거렸다. 벚꽃 필 무렵이 되면 잊은 줄 알았던 아련한 시절이 되살아났다. 저녁상을 물리고 시어머님과 손을 맞잡고 골목길을 걸을 때면 광부들이 숯덩이 얼굴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굴 입구에는 방 한 칸에 부엌 딸린 사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석탄 더미에서 뒹굴던 아이들은 제비꽃처럼 활짝 웃었다.


우리는 대가족이었다. 꽁보리밥에 나물국을 먹으며 살았지만 시어머님의 소중한 자식들이었다. 화장실은 딱 하나뿐이었다. 아침마다 출근이나, 등교로 용변이 급한 사람은 허리춤을 잡고 오리 궁둥이를 흔들며 뒷산으로 뛰어갔다. 갓 시집온 나는 그 풍경을 볼 때마다 얼굴이 홍시처럼 물들었다. 마당에는 어린 조카들이 노란 병아리처럼 들끓었다. 눈만 뜨면 치고받고 손톱으로 할퀴고 편할 날이 없었다. 연탄아궁이처럼 따뜻한 시어머님은 한 사람씩 불러서 사촌지간에 잘못이 있어도 용서하라고 훈육을 하셨다. 그날의 시어머님이 계시던 동네를 돌아보았다.


마을 초입 고택 앞에 섰다. 대문을 열자 낯익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낡은 농기계들이 주인을 잃고 뒤란에 흩어져 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시어머님은 혼절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호박 구덩이처럼 움푹한 눈을 뜨고 형제간에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으라고 하신 당부는 유언이 되었다. 맏아들은 몸이 허약해서 군대를 몇 번씩 미루는 동안 작은아들들이 영장을 받고 월남으로 떠났다. 바다 건너온 무성한 소문은 베트콩이 아군의 목을 베서 허리춤에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고 했다. 시어머님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기도에 전념하셨다. 그러다가 내 남편이 사고를 당했다는 급보가 날아왔다.


거푸집 같은 마음속의 탄광이 무너져 내렸다. 시어머님은 앓아누웠고, 나는 혼이 빠져 부산 국군 통합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비규환이었다. 의사는 군대 생활이 불가능하니 제대를 권했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온 후 무너져 내렸다. 그 와중에 시누이는 삼 남매를 두고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충격으로 쓰러졌다가 일어난 후 시어머님은 딸의 장례식 날, 영정사진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예쁘다.’며 횡설수설하셨다. 하루가 천 년 같은 모진 세월이었다. 그 시절로 다시 가보라고 한다면 천리만리로 달아나고 싶은 아픈 시간이었다. 이제 내가 시어머니 나이가 되었는지. 그날의 일들이 눈만 감으면 현실처럼 선하게 다가온다.


석탄박물관이 관광객을 기다린다. 젊은 부부들이 줄을 섰다. 그 틈에 나는 현장을 살펴보았다. 굴속은 기후변화에 민감했다. 눈비라도 올라치면 흙이 물러서 흘러내렸다. 시어머님의 몸도 온갖 풍상을 겪는 동안 일기예보와 다름이 없어졌다. 농사와 손두부 공장을 운영하며 콩 한 가마니를 번쩍번쩍 날랐고. 맷돌에 퉁퉁 분 콩을 넣고 팔이 휘도록 돌리면서 인생의 굴곡을 한 계단씩 넘기지 않았을까. 시아버님은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왔는데, 또다시 자식들이 이웃나라 전쟁에 끌려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신앙의 거미열차에 실린 기도로 베트콩의 총알도 비켜 갔으련만···. 골목길에 쪼그리고 앉은 시어머님이 언뜻 보였다. 아직도 못다 준 사랑이 남았는지, 손에는 묵주를 들고 무릎에는 옹이들이 툭툭 불거져 있었다. 이제는 그녀를 만날 수가 없기에 정든 곳이지만 이방인처럼 쓸쓸하였다.

탄광이 입을 벌리고 있다. 나는 미로 같은 갱 굴로 들어갔다. 거미줄로 엉켜버린 시간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속살을 다 빼내어준 탄광은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다. 광부들은 검은 작업복을 입고 꼬마전등을 이마에 달고 바위를 뚫어 화약을 넣고 폭발시켰다. 무너진 흙더미에서 석탄을 캐냈던 상황이 살아 움직였다. 광부들은 처자들을 위해 사자 밥을 싸 들고 굴 속을 들락거렸다. 무연탄이 수출 1호 효자 상품이 되어 기차를 타고 달렸고. 피 같은 검은 돈으로 자식들은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석유와 전기는 탄광 산업을 사양길로 밀어냈다. 저만치 보이는 학교 건물에 콩나물시루 같았던 아이들이 나를 부른다. 그 앞을 지나쳐갔다.

천천히 걸으며 시간을 더듬었다. 내 인생의 탄광도 천형天刑 같은 긴 터널을 지난 것 같다. 신앙의 거미열차에 탑승하여 밤낮을 기도로 지새웠던 날들이었다. 시어머님은 지병으로 시달리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응급실로 모셨다. 진액이 다 빠져 버린 몸은 수수깡처럼 흔들렸다. 퇴원을 했지만 치매가 깊어져 대소변을 못 가렸다. 밤중에 내복 차림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가족들이 혼비백산하여 찾으면 도랑에 처박혀 있었다. 명절 때마다 자식들이 드린 용돈은 이불 홑청 속에서 퍼렇게 웃고 있었다. 휜 등이 무너져 내려도 그녀는 자식들의 허기진 밥이었다. 탄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새롭게 변신한 석탄박물관이 관광객들에게 폐관을 알린다. 유물이 되어버린 시어머님의 눈빛과 내 눈이 마주쳤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새아가, 잘 살고 있지?’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아직도 이 손을 놓고 싶지 않지만, 내려놓아야 할 시간이다. ‘어머님을 이제 놓아 드립니다.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나를 짓눌렀던 탄광을 내려놓고 갱도 밖으로 나왔다. 박물관의 모든 전등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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