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늘이 눈부시다. 뭉게구름이 무리 지어 두둥실 흘러간다. 이런 맑고 쾌청한 날은 청소하고 빨래하기 딱 좋은 날이다. 이제 장마가 끝난 듯하다.
거실에 깔았던 돗자리를 걷어 내고 봄에 씻어 말려 둔 매트를 깐다. 먼지 쌓인 집 안을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도 한다. 옷장마다 쌓인 옷을 세탁기에 돌려놓고 온 집안의 곳곳을 청소하려 한다.
남편과 나의 성격 차가 북극과 남극으로 벌어졌다. 살아갈수록 사사건건 견해차로 갈등을 겪으니 마음에도 미움과 비판의 먼지가 쌓이고 쌓인다. 수없는 세월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도 좁혀지지 않는다. 융통성이 없는 성격 탓인지 타인과의 인간관계도 오해와 이해 사이에 가슴앓이를 한다.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는 선배 한 분의 조언을 마음에 새긴다. ‘내가 손해를 보면 본전’이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마음속에 미움이라는 얼룩이 생겼다. 지우개로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관계에서 쌓인 내 마음의 먼지를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으면 안에서 미움의 덩어리가 자꾸 커질 것이다.
냉장고에 반찬이 쌓였다. 남편과 둘이 살다 보니 음식을 조금씩 만들어도 남는다. 살아오는 동안 검소한 생활 습관이 몸과 마음에 배여서 남는 음식을 버리지 못한다. 냉장고 청소를 시작했다. 언제 샀는지 모르는 생선, 고기 등이 구석구석에서 나왔다. 야채실도 마찬가지로 포화상태이다. 깊은 잠에 빠져 잔주름으로 배배 꼬인 호박, 가지, 양파, 감자가 보인다. 이것저것 꺼내놓고 보니 큰 소쿠리에 가득 찼다. 며칠은 시장에 가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대청소를 하는 김에 조금씩 남은 찬거리로 잡탕 특식을 만들어 볼까, 영문도 모르고 끙끙거리며 일하는 남편을 위해 요리 솜씨를 발휘해보기로 했다.
집안은 반들반들, 우리 얼굴에도 환한 빛이 난다. 밀린 일은 남편에게 맡기고 맛있는 요리를 구상했다. 껍질이 시들시들한 통배추와 냉동실에 늘어지게 잠자던 오징어를 꺼내 배추전을 부치고 소고기, 무를 넣고 먹다 남은 김치도 썰어 넣고 뚝딱뚝딱 잡탕찌개를 끓인다. 멸치, 새우를 약한 불로 살살 볶아서 마른반찬도 몇 가지 장만한다.
“진수성찬이야, 최고!”
칭찬에 인색한 남편한테 평생 처음 들어보는 감탄사였다. “이런 점심은 처음이지.”라며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맛을 본다. 참말이든 빈말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왜, 진즉에 오늘 같이 살지 못했는지? 가끔은 설렁설렁 넘어가 주면 서로 까칠한 각을 세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눅진한 이불은 오후 햇볕에 말렸다. 창문 곰팡이 제거, 부엌과 베란다 청소를 시작했다. 부엌 수납장에도 냄비와 그릇 세트가 가득 쌓였다. 남편은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내리고 나는 밑에서 받았다. 결혼식장에서 받아온 컵이나 커피 잔도 몇 벌씩 나온다. 기억에도 없는 물건들이 부엌 공간을 점령하고 있었다.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서 아파트 재활용품 수거장에 가져다 놓기로 했다. 굵은 펜으로 몇 호실에서 내어놓은 물건이니 필요하신 분은 가져가시라고 종이에 써서 붙였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남편이 힘든 일은 자기가 한다며 여러 번 밖으로 날랐다. 어느 분이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했다.
장롱도 점검해보았다. 십 년 전만 해도 사계절이 뚜렷했다. 요즘은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고, 가을이 스쳐 가고, 겨울이 문 앞에서 서성거린다. 계절이 변화무쌍하게 순환하는 동안 제철 옷을 입을 새가 없다. 장롱에 잠자고 있던 유행 지난 옷도 정리를 했다. 입을 수 있는 가을옷을 꺼내서 옷걸이에 걸어놓고 여름옷들은 세탁소에 맡겼다. 이불은 탁탁 털어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널었다. 남편은 에어컨 필터와 선풍기 날개도 분해하고 찌든 때를 닦아낸다. 웬일인지 오늘은 남편이 무거운 짐은 알아서 척척 들어주고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오늘은 세탁기도 큰 몫을 했다.
대청소를 마치니 집안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남편의 얼굴도 환한 등불처럼 밝았다. 남편에게 “덕분에 우리 집에 해가 떴어요.”라며 칭찬했다. 서로를 위로하는 말이 오간 오늘은 최고의 날이다. 부부간에도 각이 사라지고 마음의 여백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