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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매달리다

by 최점순

손에 밧줄을 붙잡고 벼랑을 오르다 그만 발을 헛디뎠다. 그러곤 허공에 매달렸다.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영화 〈히말라야〉의 한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문득 삶의 벼랑으로 떨어졌던 젊은 날이 떠올랐다.


남편은 결혼하고서 군대에 갔다. 특전사 임무를 수행하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는 전보가 날아왔다. 정신없이 달려가니 남편은 온몸에 붕대를 감고 누워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늘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남편은 군대에서 몇 차례 수술 받아도 차도가 없자 의가사 제대하고, 집으로 왔지만 고통에 시달리는 남편을 보면서 벼랑으로 떨어진 듯했다.

내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어린 딸을 안고 눈앞이 캄캄했다. 무엇을 해서 먹고살지 남몰래 걱정하면서 끙끙 앓았다. 시댁이 천주교 집안이라 동서들과 성당에 나갔다. 기도 중에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리기로 했다. 하늘이 날 불쌍하게 여기시고 동아줄을 내려준다면, 그것을 붙잡고 올라가고 싶었다. 다행히 내가 운이 좋았을까. 이웃 아주머니가 옷 장사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드디어 내 기도가 통했다.

나에게 옷 장사는 구원의 밧줄이었다. 수중에는 단돈 2만 원이 전부였다. 시작이 반이라고 그 돈으로 옷 도매상에서 물건을 떼 왔다. 아기 업고 처음으로 옷 팔러 나가는 날, 사람을 만나면 부끄러워 얼굴을 담벼락으로 돌렸다. 겨울이면 추위에 떨었고 여름철에는 무더위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탄광 사택, 농촌에 다니며 외상으로 물건을 팔았다. 광부들의 월급날 수금하면 물건을 떼 와서 또 되팔기를 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럼에도 옷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농촌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농부들이 논밭에 파종하러 가면 마을은 텅 빈 듯 한적했다. 낯선 사람을 본 개가 컹컹 짖자, 동네 개들이 신호를 받은 듯 떼거리로 몰려와 달려들었다. 등에 업힌 아기가 깜짝 놀라서 자지러지게 울었다. 하지만 낯선 곳이라 달려와서 구해줄 사람은 없었다. 순간 춥고 배고픈 서러움이 명치끝에서 울컥울컥 올라왔다.

개울가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엄마가 종일 굶어서 젖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어린 것을 굶겨 죽일 것만 같았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꽁꽁 얼어붙은 개울을 돌로 꽝꽝 내리치자, 물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양손을 모아 허겁지겁 받아 마셨다. 찬물이 내 몸속으로 스며들자, 젖이 도는 듯했다. 부모를 믿고 태어난 아기 눈빛을 바라보며 간신히 일어섰다.


어느 날, 남편이 삶을 포기하려는 듯 가재도구를 마당으로 집어 던졌다. 일어서서 걷지도 못 할 바에야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며 몸부림을 쳤다. 희망을 잃어버린 남편의 모습을 보자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한집에 사는 동서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왜, 나만 혹독한 시련을 겪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아기를 재워놓고, 집밖으로 나왔다.

성당으로 달려가서 십자가 앞에 엎드렸다. 예수님께 온몸의 피를 토해내는 심정으로 살려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긴 침묵만 감돌았다. 한바탕 울고 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을 일으키고 아기를 지켜야 하는 가장의 책임만 생각났다. 이제 더 이상 순한 양처럼 운명에 순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깟 보따리 장사의 부끄러움 따위는 사치에 불과하지 않나. 어금니 악물고 독하게 버티기로 했다.

옷 보따리를 단단히 싸맸다. 경험 부족인지 옷을 팔아도 수익이 나지 않았다. 본전을 야금야금 까먹자 다시 허공에 매달리는 듯했다. 시부모님이 실의에 빠진 나에게 논밭을 떼어 줄 터이니 농사를 지어보라고 하셨다. 도움의 손길을 내민 어른의 뜻을 받들기보다 스스로 극복하고 싶었다. 나는 쓰러지는 가정을 떠받치려고 허리띠를 더 졸라맸다. 죽고 사는 일은 하늘의 뜻이니 다시 도전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고전하던 옷 장사가 번창해 갔다. 열심히 살다 보니 반전할 기회가 찾아온 것일까. 물건을 잘 판다는 신용을 얻었고, 도매상 주인이 담보 없이도 물건을 밀어줘 시장보다 값이 저렴해서 옷이 불티나게 팔렸고 발바닥이 불나도록 뛰어 다녔다. 탄광 월급날 수금하면 배에 찬 돈주머니가 임산부처럼 튀어나왔다. 만석 군도 부럽지 않았다. 남편도 힘을 실어주려는 듯 마침내 고통을 털고 일어섰다.

남편이 서울 건설회사에 취업했다. 둘째 아기를 품을 무렵, 서울이 눈앞에 펼쳐졌다. 옷 장사로 번 돈을 키워서 집을 샀고, 가족들이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살 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의 상흔이 재발할 때마다 직장을 잃으면 불안에 떨었다. 밤마다 꿈속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양팔을 걷어붙이고 돈을 벌었다. 오랫동안 밧줄을 잡고 허공에 매달려 있었는데, 서서히 줄을 당기며 올라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초‧중학교에 입학했다. 살림살이가 서서히 윤택해지자 배움에 대한 열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방송통신대학 입학식 날, 아들은 환한 미소로 꽃다발을 건넸다. 스터디 활동으로 버스가 끊기면 남편이 택시비를 준비해서 기다려주는 고마움도 잊은 채 ‘친구들 남편은 차를 대기시키는데, 나는 이게 뭐냐며’심통을 부리면‘당신은 여학생이잖아 짜증 내지 마’라며 남편이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허공에 매달린 운명이 바뀌어 간다. 당시 아기였던 딸은 가정을 이뤄 1남 2녀를 두었다. 아들도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사제이다. 남편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맞이한다. 이제 내 삶을 돌아보며 글을 쓰는 수필작가이다. 영화〈히말라야〉등반대원들처럼 허공에 매달렸지만, 밧줄을 잡아당기며 한 단계 올라서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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