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따스하다. 효창공원을 찾아가는 길이다. 삶에 쫓겨 지척에 모시고도 애국선열들을 묘소를 자주 찾지 못했다. 오늘은 마음먹고 시간을 내었다. 먼저 입구에 들어서면 한 손에 수류탄을 쥐고 막 던지려는 윤봉길 의사의 동상을 만난다. 어제 비 온 탓인지 동상 얼굴과 옷자락이 축축하게 젖었다. 보랏빛 무궁화 꽃이 의사 옆에서 방긋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고개를 숙이고 묵념하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효창운동장은 온 국민들이 3.1 운동 만세를 불렀던 곳이다. 해방 이후에 이곳에 독립 의사들의 묘와 동상이 세워졌다. 나는 삼사의 열사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백범 김 구 선생 기념사업 협회, 백범학술원, 전시관, 대한 노인회 협회가 있다. 언제 누구와 이곳에 와도 시원한 남무와 숲이 우거져 있다. 세월은 흘렀고 그분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후손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살아계신다. 한옥 기념관에는 차 기석 선생, 조 성환 선생, 김 구 선생 이 동녕, 이 봉창 의사 윤 길 의사, 백정기 의사, 안중근 의사, 의 사진을 전시해놓았다. 내 시선을 끄는 붓글씨였다.
“너의 죽음은 너 한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몫이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했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조 마리아)가 아들에게 보낸 친필 편지를 읽고 가슴이 먹먹했다. 조국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라. 안중근 의사 어머니가 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결단을 하라고 재촉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분의 심정을 감히 짐작을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우리의 어머니셨다. 효창공원은 조국 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분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봉분 위에는 묵은 잔디 밀치고 파란 햇순이 올라왔다. 소년 이봉창이 뛰어놀면서 조국의 광복을 꿈꾸었던 곳, 윤봉길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40분 상하이를 세계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훙커우 공원에서 일제 천 장절 축하 단상을 향해 물 통형 폭탄을 던졌다. 어릴 적 역사 시간에 공무 하며 타올랐던 의분이 다시 솟아올랐다.
효창공원
기념관 넓은 뜰을 느림보처럼 걸었다. 봄이 되니 잔디를 이불 삼은 쑥이 진한 향기를 내뿜었다. 어린 시절 쑥을 뜯어다가 밀가루를 훌훌 버무려 쑥 개떡을 해 먹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입안에 군침이 사르르 돈다. 산수유와 개나리는 친구처럼 노란 꽃이 피었다. 바위틈에서 제비꽃과 민들레가 땅바닥에 붙어 보라색, 노란색 미소로 반겨주니 꽃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잔디밭에 엎드렸다. 흙냄새에 버물려진 의사들의 뜨거운 피가 폐부까지 전신을 훑었다. 까치 두 마리가 나를 향해 깍, 깍, 훌쩍 공중으로 올랐다. 아름드리 벚꽃나무는 만개한 꽃잎이 눈송이처럼 흩뿌린다. 모든 식물들은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존재한다. 계절은 빠르게 흐르고 꽃 대궐로 채색되어간다.
저기 공원 중턱에 산책 나오신 꼬부랑 할머니를 만났다. 강아지 목줄을 쥐고 의 열사 무덤 앞에 묵념을 하셨다. 허리는 구부정하고 얼굴에 잔주름이 덮였다. 후렴구처럼 아이고 다리야, 연신 끙끙 앓으셨다. 할머니도 젊은 시절에는 누구보다 건강하셨겠지만, 지금은 숨이 차서 바위에 걸터앉았다. 오솔길에는 징검다리를 놓은 돌다리가 볕을 받아 빛났다. 돌 주름 사이로 작은 개미들이 줄을 이어 가며 앞 더듬이로 수색대처럼 두 리 번 거리며 돌아다니는 이런 풍경도 정겹게 느껴진다.
효창공원은 집에서 도보로 이십 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일주 일한 한 두 번씩 산책하는 단골 코스다. 운동화 끈을 졸라매는 순간 앞만 보고 질주를 하는 습관이 몸에 배였다. 남들이 보면 누구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허둥거린다. 열사들이 잠든 묘지 옆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어른 다섯 명이 손잡고 안아야 겨우 그 품에 안 길수 있다.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서 나라의 흥망성쇠를 온몸으로 지켜보았을 할아버지 나무가 있다. 뭇 새들이 깃들고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준다. 나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내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전설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 같다.
나무 할아버지의 나이테 안에 그날의 뜨거운 함성을 기록해놓았을까. 아마 일기장에 깨알같이 적혀 있을 것 만 같다. 용감한 의사들이 나라를 위해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바쳤다. 어느 겨울에 이곳으로 산책하러 왔더니 하얀 눈꽃이 마무 마다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설경에 감동을 받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지난해에 맺었던 솔방울 한 톨이 머리 위에 꿀밤 한 대를 때리 듯 톡, 떨어뜨렸다. 위를 올려다보니 솔잎 사이로 본 볕은 가위처럼 빼족빼족 했다. 나무 할아버지에게 열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발길을 돌린다.
효창공원 사무실에서 팝 “You Raise Me U 들려온다. 그날의 뜨거운 함성처럼 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자연의 소리, 새소리, 아이들의 웃는 소리가 어우러져 오케스트라 연주를 방불케 했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정신을 열사들에게 배웠고 용기와 신념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남은 인생을 나의 몫을 다 하기 위해 노력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