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위력인가. 추석을 앞두고 계절이 뒷걸음을 치는지 더위를 다시 끌고 왔다. 며칠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더니 가슴이 답답했다. 운동복 차림으로 공원으로 나갔다. 용문, 문간 가는 경위선 효창역 4번 출구 광장까지 달려갔다. 봄부터 아치형 지지대를 세우고 수세미와 조롱박 넝쿨을 올려놓았다. 여린 촉수로 더듬거리며 철사 줄을 잡고 곡예사처럼 빙글빙글 타고 올라간다. 작은 손이 미끄러워 놓치면 땅으로 곤두박질을 친다. 눈도 없는 가느다란 여린 촉이 철사 그물망을 꼭 잡았다. 마치 어린 시절 초가지붕 위로 새끼줄을 올려놓으면 큰 박이 줄을 타고 올라갔던 풍경이 떠오른다. 하얀 박꽃이 피고 지면 육십 촉 전구 담아 만한 박이 맺혀다. 몇 칠이 지나면 용마루 위에서 햇볕과 달빛을 받아 둥글둥글 몸을 불렸다.
초가지붕 위에는 흰 박꽃이 무덕무덕 피었다. 아버지는 박꽃이 진자리에 짚을 뱅글뱅글 뙤 아리를 틀어 박 밑에 깔아놓았다. 낮에는 해바라기, 밤에는 달빛을 받아 하루가 다르게 굵었다. 처마 밑에서 지붕올려다보아도허기진 배가 부는듯 했다. 보름달 정도로 굵으면 박 껍질이 딱딱하게 영글었다. 사다리를 비스듬하게 지붕 끝에 붙이고 올라가서 박을 따서 아래로 던지면 아버지가 밑에서 이불을 펴 놓고 받았다. 한 번에 다섯 덩어리를 따는 날은 동네 잔칫날이었다.
소죽 끓이는 가마솥에 장작불을 피웠다.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아 놓고 흥부네 가족처럼 설겅설겅 톱질 하세 박을 탔다. 박이 반으로 잘라 소죽 끓이는 솥에 넣고 장작불을 지펴 놓고 뜸들이록 기다리면 푹 삶겼다. 하얀 속살이 청포묵처럼 말랑말랑거렸다.
빗대기 숟가락으로 파내면 큰 옹기 질그릇에 한가득 찼다. 뜨거운 박속을 한 숟가락 푹 떠서 입안넣었다. 물컹물컹 씹지 않아도 목구멍으로 슬쩍 넘어갔다. 너무 뜨거워 입천장이 훌렁 벗겨져도 배를 채울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마당에 멍멍을 깔아 놓고 동네 사람들이 둘러앉아한 대접씩 돌리면 어른들도 아이들도 한 그릇 먹고 배가 배가 벌떡 일어났다. 박의 딱딱한 껍질은 음지에 말리면 튼튼한 그릇이 되었다. 조롱박도 칼로 반을 배를 갈라 삶으면 장독에 서 간장과 어우러져 간장을 맛있게 숙성시켰다. 엄마는 큰 바가지에 밥을 이 비서 아이들 숫자대로 똑같이 금을 그어 주었다. 식탐이 많은 오빠들은 바가지에 그어진 금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엄마에게 등짝을 후려갈겨도 배만 부르면 히죽히죽 줄행랑을 쳤다. 어려서부터 밥을 빨리 먹지 못하는 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효창동 경의선 넓은 광장에 는 조롱박을 심어 놓은 아치 넝쿨있다 그밑에 앉으면 햇볕을 가려주고 주렁주렁달린 조롱ㅂㄱㆍㄱ과 팔뚝 만한 수세미를 구경하고 일석이조였다. 위에 펼쳐진 넝쿨들을 감상하면서 글감의 소재도 채집할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 햇볕을 밭아 노랗게 익은 황금빛 조롱박들이 서정적일 글감을 불러온다. 핸드폰 메모지를 꺼내 글자를 치고 있는데 꽥, 말매미가 소리를 질렀다. 제 딴에는 마지막 사력을 다해 울고 있다 싶어 측은해졌다. 그때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도 붕붕. 빨간색 보라색 나팔꽃도 하늘을 향해 빵빵 나팔을 불었다. 파란 잎들이 신나는지 손뼉을 치듯 신선한 느낌이 든다. 그 옆에서 곱게 물들인 장미꽃들이 활짝 웃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해바라기 가 손에 지휘봉을 휘두르며 연주를 했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귀 울리면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어릴 적 내 고향 초가지붕 위에 보름달이 주렁주렁 열렸다. 하얀 박꽃이 지고 나면 아기 주먹만큼 굵은 박 밑에 담요를 깔아 주었다. 뜨거운 태양을 끌어안고 씨름을 하는 동안 딱딱하게 영그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아버지는 바짝 마른 박 꼭지에 구멍을 뚫어 다섯 개 열 개 놋줄에 끼워 장날 어깨에 메고 팔았다. 산은 푸르게 녹색 물감을 뚝뚝 떨어뜨린다. 들녘엔 노랗게 알알이 익어가는 곡식들은 허리를 숙이고 대풍을 알려준다. 허수아비도 새들을 쫓느라 양팔을 흔다.
늦게 심은 수박과 똥 참외가 달짝지근하게 맛이 들면 기다리던 풍성한 가을이 산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갔다. 내 마음에도 고운 빛깔로 어린 가슴을 물들렸다. 거리 두기 4단계가 추석까지 연장되었다. 가족들도 오고 가지 못하게 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빨간 잠자리들의 후손들은 오늘도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언제쯤 사람들도 자유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꽃들과 나무들이 스산한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하다. 아치형 지지대를 따라 조롱박이 누렇게 익어가는 풍성한 가을이 반갑다.
어스름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하얀 박꽃들이 넝쿨에서 내려다보고 환하게 활짝 웃었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가을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갑자기 비가 오렸는지 저쪽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우산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먼 거리를 어떻게 가나 망설였다. 순간 아치형 지지대 속으로 뛰어들었다. 소낙비가 쏟았다. 다행히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세미 잎과 조롱박 잎이 수산이 되어 준 덕분에 비 한방울 맞않았다.
박을 타는 날. 동네가 사람들의 잔칫날이었다. 큰 바가지에 밥과 가지나물, 산나물과, 조선배추 겉절이를 넣고 훌훌 까불면 맛있는 비빔밥이 완성된다. 유명한 비빔밥의 유래는 거지 문화에서 왔다고 한다. 요즘은 아무도 박속을 먹지 않는다.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인터넷으로 쿠팡에 음식을 주문하면 영양이 풍부한 다양한 음식들을 싣고 새벽부터 총알같이 달 려오는 배달문화가 대세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을 많이 먹고 윤택한 문화생활을 누려도 인정에 허기진 마음은 채워지지는 않는지 인심이 옛날같이 않아 씁쓸 해진다. 이번 추석에 보름달이 뜨면 소원을 빌어야겠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박속처럼 맑고 소박한 나눔을 통해 사랑에 허기진이들에게 든든하게 채워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