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몇 권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공덕역 지하에는 전철 4개 노선이 동서남북으로 쉼 없이 달린다. 지상에는 경의 숲이 조성되어 있고, 공원길에는 사람들이 산책로를 따라 신촌까지 오가며 북적거린다. 주인과 함께 나온 강아지들도 친구를 만나 반가운 표현을 침을 흘리며 찐하게 한다. 돌로 축대를 쌓아 올린 언덕배기에 벚나무와 소나무들이 봄에는 꽃이 피고 지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되었다. 코로나19로 오갈 때가 없어 몇 달 전부터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았다. 몇 시간 동안 책 보고 음악 듣다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던 그곳이 떠올랐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고인돌이 반겨준다. 그 자리에서 친구들과 공기 받기 하고 책 보고 숙제도 했다. 항상 거기에 앉으면 편안하고 좋았다. 이글거리던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갈 때 하루 종일 볕에 달군 돌이 들장처럼 뜨끈뜨끈했다. 배가 아프면 치마를 올리고 엎드리면 배속이 보글거리는 소리가 나면 금방 나았다. 모심기하던 엄마도 허리가 아프면 거기에 등을 붙이고 누워 지졌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고인돌이 있었는지 동네 어르신들도 모르셨다. 한낮에는 파란 하늘가에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무리 지어 창공을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저녁 먹고 마실 나오면 성근 별들 반짝거리면 나의 별을 찾아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달무리가 은은하게 퍼지고 은하수가 넓은 하늘바다에 흩뿌려 놓으면 나무 위에 앉아 졸던 부엉이가 부엉부엉 노래를 불렀다. 그곳이 차마 잊을 수 없는 나의 꽃자리였다.
마포 용산은 몇십 년 전에는 달동네였다. 서울에서 88 올림픽이 열려 판자촌을 허물고 높은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올랐다. 정든 이웃들은 삶의 애환과 터전을 빼앗기고 변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강남과 강북을 잇는 중심지로 상권이 발달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은 햇볕 동네로 달 바꿈하고 사람들도 물갈이되었다. 공원 군데군데 운동기구를 설치해 놓아 남녀노소들이 건강증진 위한 명당이 되었다. 앞으로 이 지역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점점 늘어날 것 같다. 돌담 밑에는 할머니들 몇 명 모이셨다. 내가 앉아 있는 곳까지 세상 돌아가는 빅뉴스가 들린다.
귀를 살짝 열어 놓으면 누구네 아들, 딸들이 오십이 넘었는데도 시집, 장가를 못 갔다는 등 등. 손자들 재롱 이야기에서부터 강아지까지 담소로 꽃을 피운다. 거기다가 자동차 소리, 새소리, 까치, 매미소리에 워킹하는 발소리까지 별별 소리가 다 들렸다. 소음에 가시 방석 같았다. 엉덩이를 들 거리다가 왠지 정겨워진다. 혼자 듣기 아까운 연인들의 야한 농담은 젊은 시절이 소환되어 픽 , 웃었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 시인의 詩 <꽃자리〉
위에 사는 오래전에 감명 깊게 읽었다. 지금 나의 자리는 가시방석이 아니라 꽃자였다. 갑자기 소녀가 된 설렘으로 고운 꿈이 넘실거린다. 둑에 심어놓은 다양한 꽃나무들 사이에서 유난히 빨간 개 봉숭꽃에 시선이 멈춘다. 나도 한 때는 저 꽃처럼 곱다는 말을 들은 시절도 있었다. 나의 마음을 꽃 향기로 곱게 물들이고 싶다. 코로나19로 집에 있으니 이 생각 저 생각 오만 잡생각이 들끓고 나중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피할 수 없는 갈등들도 꼬리를 물었다. 이럴 때는 나의 꽃자리를 깨끗하게 청소를 할 수 있는 기회다. 흙탕물처럼 흐려진 마음을 맑게 가라앉히는 대는 조용하게 사색을 하는 것이 최고의 비법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의 병은 일상의 스트레스에 온다고 의사들이 알려 주었다. 볕을 많이 쐬고 산책을 하며 좋은 생각을 끌어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단다. 자연의 섭리로 봄에는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고, 여름에는 푸른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 싱싱한 나무들이 숲을 이룬다. 사람들이 기분 전화하는 데는 이 보다 더 좋은 명약이 있을까. 몇 시간 동안 잔디밭에 앉아 책 두 권을 읽었다. 무더위에 갈증이 나서 가방에 넣어 간 물 한 병을 다 마시고도 갈증이 난다. 설레는 이 순간을 놓고 싶지 않아 집으로 들어가기가 범보다 더 무섭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나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고 싶어라. 마음을 비우니 모처럼 만에 동심으로 돌아 간 듯 행복해진다. 신의 한 수처럼 번개처럼 한 문장이 떠올랐다. 수필 제목을‘ 나의 꽃자리’로 정했다. 내가 앉아 있는 잔디밭에 널려 있는 소재를 그러모으니 수필 한편 을 완성했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 를 발견한 것 같다. 이런 기분이 창작이 고통과 환희의 기쁨이 아닐까?
매일 산뜻산뜻 기분 좋게 나의 꽃자리로 걸어갔다. 오늘따라 내 자리에 할머님들이 몇 분 앉아 계셨다. 힐긋 나를 한번 쳐다보시더니 자리 주인이 왔다며 슬그머니 일어섰다. “저는 다른 곳으로 가면 되어요. 그냥 계세요.” 간곡하게 말씀을 드려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셨다. 그 자리에만 앉으면 잔잔한 호수처럼 물결이 일렁인다. 이럴 때는 책을 보거나 명상을 하면 마음이 산중의 구도자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모자를 쓰고 있어도 나뭇잎 사이로 뜨거운 햇볕이 머리통을 뜨끈하게 달구었다. 발아래 얇은 바위에 달걀을 깨뜨려 놓으면 맛있는 프라이될 정도로 뜨겁다. 다리를 쭉 뻗고 해바라기를 하니 기분이 상쾌하고 마음 부자로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다.
맞은편 큰닥로에는 하루 종일 차들이 경쟁하듯 버스가 달리고, 지하에는 쉼 없이 전철들이 달린다. 중간층인 공원에는 마라톤 선수들처럼 사람들이 앞 만보고 뛰어갔다. 내가 살아 낸 인생 저편에도 오나가나 앉으나 서나 현실의 무게는 바늘방석이 따로 없었다. 외그리도 실속 없이 바쁜지 눈코 뜰 새 없이 달리고 달려오다가 코로나가 걸음을 딱 멈추게 하였다.
얼마 전만 해도 내 걸음을 젊은이들도 쉬게 따라잡지 못할 만큼 워킹 속도가 경쾌하고 빨랐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옛날같이 않다. 욕심이 앞서 어린 그들 사이에 속도를 내다보면 발목에 쇠뭉치를 매달아 놓은 듯 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숨만 헉헉거린다. 자연의 생물들처럼 순리를 받아 들려야 할 텐데 몸과 마음의 불일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나무들은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나의 꽃자리에는 봄에는 들꽃들이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에는 싱그럽게 숲을 이루었고, 여름에는 말매미들이 나무에 붙어 노래를 부르면 나리꽃도 만발했다. 가을 초입이 되니 나무 밑에서 상상화가 붉게 물들인다. 푸르던 잎이 고운 단풍으로 물들이는 가을이 오고 가면, 바통을 이어받은 동장군이 성큼성큼 걸어올 테지. 매일 앉아서 말을 주고받던 이곳에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도 머지않았다. 내 마음의 꽃자리도 자연의 순리를 따라 비우고 낮아지면 성숙하게 새로운 변화를 꿈꾸게 되겠지 라고 스스로를 위로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