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내 김치 찌개에 질린 가족들 입맛을 돋아주려고 경동시장에 갔다.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앉아 사람들에게 호객을 했다. “3천 원이요.” 길바닥에 비닐을 펴 놓고 소쿠리에 담긴 냉이, 씀바귀, 달레, 쑥, 망초에서 항기가 솔솔 났다. 어릴 적에 실골에서 자라서 삶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재래시장 자주 찾는다. 할머니들이 손수 채집한 봄나물이 마트에서 사는 것 보다 더 싱싱하고 맛도 좋았다. 손처럼 덤까지 듬뿍 얹어 주는 인심이 후했다. 질퍽한 인생살이에 고향이 그리울 때면 발길이 이곳을 찾게된다.
시장 구경을 한 바퀴 돌았다. 어디선가 낯익은 냄새가 솔솔 났다. 한약 방을 끼고 돌아 찾아갔다. 70대 할머니가 길옆에서 찌그러진 솥단지에 번 대기를 나무주걱으로 벅벅 젖고 있다. 그 앞에 걸음을 딱 멈추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번데기 향에 입안에 군침이 가득 고여 꿀꺽 넘어갔다. 구수한 향기가 온 몸에 촉수들을 작하서 번쩍 스위치를 올라갔다. 먹고사는데 정신이 팔려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조급한 마음은 어느 새 누에들이 꿈틀거리던 시절로 달려간다.
면사무소에서 엄마는 까만 누에알을 2장 받았다. 일일이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약 5만 마리 정도 된다고 어른들이 말했다. 누에 키우는 일은 무척 까다로워서 부정 탄다고 담배연기 조심 말조심도 시켰다. 농번기에 바빠서 손이 못가 소홀히 관리하면 누에 농사를 망치가 일수였다. 금방 부화 한 눈만 붙은 에 벌레가 하루에 4번 먹는다. 연한 뽕잎을 잘게 송송 설어 뿌려주면 먹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렸고, 비료부대를 깔아 놓은 곳에 까만 똥을 쌌다. 3일 동안 밤낮으로 먹고 하루는 잠을 잔다. 그렇게 4~5번 정도 횟수가 반복되다가 큰 누에가 되었다. 고치 지을 섶을 찾느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다. 엄마가 솔가지와 짚을 섞어 갈대발 위에 올린다. 아파트처럼 층층이 누에섶에 누에를 올려주면 입에서 뿜어낸 하얀 액체로 고치를 짓는다.
경동시장에는 다양한 상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청년이 넉살 좋게 손님을 끌기 위해 어머니, 누나, 골라 봐요. 고막이 얼얼하도록 외치는 소바람엦 깜짝 놀랐다. 나는 얼떨결에 옆에 할머님께 “번 대기 얼마예요.” “ 3천 원.” 두 봉지 주세요. 종이컵에 가득 담아 주는 것을 손에 들고 한 마리씩 입에 넣고 씹으면서 구경을 다녔다. 번 대기 주름잡는다는 말이 생각나서 혼자 히죽히죽 웃었다. 어릴 적에 학교가 파하면 빨리 집으로 달려왔다. 뜨거운 여름철에 엄마는 솥단지에 물을 붓고 장작불을 피워 고치를 삶았다. 물이 끓어 오르면 실은 실구리에 감기고 번 대기는 물속으로 퐁당퐁당 다이빙을 했다. 색깔이 진갈색으로 변하고 통통하게 살이 찐 번 대기는 허기진 시대에 아이의 영양간식이었다. 엄마는 자식들을 먹이려고 한마리도 입에 넣지 않고 침만 삼키고 부뚜막에 놓인 대접에 한가득 건저 두었다가 동생과 나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시장 통을 걸으며 기억의 창고에서 어린 시절이 명주실처럼 술술 풀려나오다가 갑자기 울컥거렸다. 어느새 마음은 엄마가 기다리는 고향집 툇마루로 뛰어갔다.
나를 낳고 엄마는 일주일 동안 모심기를 했다. 온몸에 산후병이 들어 피를 철철 쏟았다. 아기에게 젖을 제 때에 먹이지 않아 젖도 다 말라버렸다. 피덩이를 안고 우물가, 빨래터를 전전 하며 심청처럼 젖동냥을 다녔다. 다행이이웃집 친구 엄마가 모유를 먹여 키우는 유모로 일 년에 쌀 몇 석을 주고 젖을 빨렸다. 그런데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는 말처럼 눈만 뜨면 쫄랑쫄랑 따라다녔다. 성장하면서 친엄마에게는 반항을 해서 모녀간에 점점 갈등의 골이 깊어갔고, 사춘기를 지나고 혼기가 차도록 엄마의 정을 느끼지 못했다. 남편을 만나 부모님이 반대에도 결혼을 했다. 시린 사연들을 뒤로하고 세월이 켜켜이 쌓이는 동안 그날을 까마득하게 잊었다.
여름에는 누에 치는 계절이다. 온 집안에 방마다 누에 밭이 되었다. 벌레나 똥파리 한 마리도 들어올 수 없도록 모기장을 쳤다. 밤에도 몇 번씩 뽕잎을 주면 쇄 쇄. 잠자는 동안에 누에가 발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투 둑, 투 둑 들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몇십 마리씩 엉켜서 방바닥에 떨어져 있다. 나는 청학동 총각처럼 머리를 길게 길러서 누에들이 머리카락이 자기들 올라갈 섶인 줄 알고 징그럽게 달라붙었다. 손으로 만지면 송충이처럼 구물거리면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엄마는 밤에는 베틀에 앉아 명주 한필씩 짰다. 오일장이 서면 명주 한필씩 잘라 팔았다. 그 돈으로 가족들이 먹고살고 아들들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엄마 입에는 후렴구처럼 일제 식민지에 육이오 전쟁까지 작두를 타는 심정으로 살아냈다고 했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빈말은 아니었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 낡은 무명 적삼에 맨 발로 샘물을 길러 밥을 지어 가족들을 먹였다. 엄마의 속이 숯덩이가 되도록 나는 그 아픔에 눈을 감았다.
부모라는 책임과 자식 사랑은 끝이 없었다. 불교 신자인 엄마는 밤마다 장독대에 물 한 사발을 떠 놓고 간절히 빌었다. 농사일도 버거운데 까다로운 양잠을 치느라 잠 한번 못 자고 뜬 눈으로 세웠다. 명주 목도리를 목에 감으면 사촌도 따뜻하다는 말이 있다. 엄마의 품은 그렇게 따뜻했다. 누에처럼 몸속의 실을 뽑아내듯이, 자식들을 위해 껍데기만 남기고 진액을 소진하였다. 호롱불 밑에 명주 옷감을 재단해서 바지저고리와 도포를 지었고, 베틀에 엎드려 쪽잠을 자다가 쿵, 떨어지기도 부지기수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마에 빨간 자두처럼 튀어나온 혹이 달렸다. 엄마 나이가 되어가니 늙어 가는지 잠이 줄었다.
내 인생의 누에치기도 거웠다. 어려운 살림살이는 세월이 흘러도 형편이 나아 질 기미가 없었다. 남편은 군대가서 큰 부상을 입었다. 이병제대를 해서 집에서 생활 하는 동안 덧난 상처에서 피고름이 나왔다. 고통의 밤을 견디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남들처럼 해 주지 못하는 심정이 고치가 뜨거을 물속으로 떨어지는 아픔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밤이 이슥하도록 뒤척거렸다. 별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내 마음에 고인 그리움도 한 자락 하늘 바다에 흘러 보낸다. 산천이 수 십 번 바뀐 뒤에, 누에는 알에서 에 벌레로 눈을 뜨고 성장해서 고치를 짓고 명주실과 번데기로 모든 것을 다 주는 사랑이었는 것을 알았다. 엄마의 누에 밭에서 자식들은 먹고 입고 성장하고 도회지로 떠났다. 이제 나도 흘러간 세월에 명주실처럼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한 올씩 풀어낸다.
양잠을 치는 일은 엄마의 굴곡진 인생 드라마같았다. 온몸으로 가파른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누에처럼 모든 것을 다 뽑아주었다. 소낙비가 내리면 너덜거리는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오면 초라한 엄마의 모습이 친구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부끄러웠던 시간들이 싸하게 아려온다. 하늘거리는 명주 목도리를 목에 두른 엄마와 마주 섰다. “엄마, 미안해요.” 청 보리 같이 치렁치렁한 머리를 질끈 묶은 소녀가 저만치서 손짓을 하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