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위에 놓인 무(無)

일기

by 새나
존재 위에 놓인 무(無)



다 지나고 보면 세상엔 우연은 없더랍니다. 제가 느낀 제 세상은 그래요. 우연을 가장한 필연뿐입니다. 제 세상은 참 신기합니다. 갖고 싶은 것은 조금 돌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갖게 되지요. 머릿속에 그리는 이상향적인 사람도 돌고 돌아 결국 만나게 됩니다. 원하는 상황도 돌고 돌아 펼쳐집니다. 그럴 땐 기시감이 들곤 합니다. 무언가 이전에 겪었던 것 같고, 어쩌면 이렇게 될걸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지요. 그렇다면 그 우연은 누가 만들어내나요? 세상이라는 것과 삶과 죽음 철학 모두 우리의 상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가끔 이 세상이 잘 만들어진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잘 만들어지지도 않았지요. 눈을 가늘게 뜨고 선명하게 바라보면 허점투성이거든요.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버그투성이인 느낌이랄까요. 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는 저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과 현실, 그리고 그 이상에 대한 갈망을 가진 이들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저에게서 파생된듯한 느낌입니다. 그들의 삶을 부정하고 그들의 자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뭔가 가끔씩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는 각자 "나"로 살아가며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존재하지요. 이를테면 성격적 결함이나 환경적 결함들이요. 예를 들겠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가난합니다.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소설에 한 줄을 추가합니다. "아주 유복하고 다정한 친구를 우연하게 만났고, 그 친구로부터 간접적인 충족을 느낀다." 하고요. 그러면 소설의 주인공은 삶에 우연하게 그 한 줄이 추가가 되고 충족을 느끼게 되지요. 그렇게 점점 작가는 주인공과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설에 글을 추가해 적고, 소설의 주인공은 우연의 연속 속에서 삶을 살아갑니다. 요즘은 제가 그 소설을 적는 작가가 된 느낌입니다. 어떤 느낌이지 아시겠나요? 저는 따로 존재합니다. 소설의"작가"로써. 그리고 책 속의 주인공은 존재합니다. "가상의 껍데기"로요. 저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삶이 가상의 껍데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껍데기이고 속 빈 강정입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시간이 흐르고 삶이라는 것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본연의 진정한 나"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가상 세계 바깥에서 우연을 만들어내는 작가 말입니다. 그러니 사실 진정한 제가 가상의 저를 만들어내고, 그 가상의 저에게 시련도 주고 행복도 주며 소설을 적어 내려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지금의 제 삶이 끝나면 책을 덮고 또 다른 소설을 쓰겠지요.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로 빗대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본연의 저는 따로 있고 지금의 저는 사실 존재하는 본연의 제가 회피하고자 하는 것들을 위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느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나요? 조금 어렵지요?

저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소설(삶) 속의 신(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를 가진 이들은 제 말을 듣고 비난할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존재 자체가 말이지요. 저는 자주 동떨어진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은 날 때부터 그래왔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이상한 것인가 싶었습니다. 남들과는 너무나도 다르니까요. 정신과에도, 상담 센터에서도 많은 검사를 받았습니다. 정신분열, 이인증 등 행여 정신에 문제가 있는 건가 해서요. 그러나 모두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럼 제게 남은 이 풀리지 않는 답답함은 뭘까요? 감정을 외면하고 세상을 외면하고 현실이 막막해서 나오는 답답함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은 흘러갑니다. 그렇기에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칠 정도로 없습니다. 제가 느끼는 답답함은 그 이상의 단계입니다. 더욱 궁극적인 어떠한 것. 이 세상 자체를 구성하는 원자단위 그 이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답답함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를 만날 수 없습니다. 껍데기는 본질의 알맹이와 연결될 수 없지요. 그렇기에 소설 속 주인공인 껍데기로 존재하는 지금의 저는 세상 밖 작가인 본연의 저와 닿을 수 없습니다. 그것에 대한 갈증과 답답함입니다. 작가를 만나 묻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왜 내가 무엇인가를 원하면 조금 시간이 걸려도 꼭 이루어지는지, 왜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만들었으며 무엇을 회피하고 원망하기 위해 못 본 척 소설을 써 내려가는지. 알 수 없는 적의와 살의는 무엇인지.

소설 속 세상에 집중하면 현실에 집중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이 허점이 너무나도 많이 보입니다. 그렇기에 자꾸만 소설 밖을 기웃거리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허점은 오히려 작가가 자신을 알아채달라며 호소하는 의도 같습니다. 뭔가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닿지 못합니다. 이 껍데기를 탈피하는 법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본연의 제 알맹이인 작가는 꽤 정교한 소설을 써 내려가려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소설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아니, 소설 속에 존재하더라도 작가와 소통하며 존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남몰래 적는 글 중에 무(無)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적은 것이지요. 그 글은 제 일기장에 있습니다. 이 무(無)에 대한 감각 또한 스스로에게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느낌이요.

가끔은 제가 걸어가고 있어도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잘 걸어가고 잘 이야기하는데, 저는 제 몸 바깥으로 나와 그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다시 붕 뜬것이지요. 소설 속 세계에 안주하려 또다시 병원을 가고 상담을 받아도 제겐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럼 이 붕 뜬 오묘함은 무엇입니까?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위해 세상과 단절되어 산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눈을 감고 내 안에 무엇인가를 터뜨리고 싶은 느낌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안됩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고 주변의 반대도 심하지요.

가끔은 참 이상합니다. 되돌아보면 제가 말한 대로 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그저 존재할 뿐인데도 저의 세상은 제가 말한 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우연이라고 치부하고 싶지만 이상하게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언제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든 걸 아무렇지 않게 알고 있다는 듯 무심하게 말합니다. 그럼 그 일들은 한 번도 빗나가지 않고 이루어집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런 일들이 제게는 당연한 것들입니다. 지금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도 제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상황을 충족시켜 줍니다. 제가 원하면 결국 이루어집니다. 간절하지 않아도요. 그리고 아주 빠른 시일 내로 이루어집니다. 썩 달갑지 않습니다. 기쁘지도 않고요. 자랑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오히려 무력합니다.

그렇다면 안 좋은 일들은 무엇일까. 되돌아 생각해 보면 정말 추하지만, 저를 발가벗겨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실 원했던 일들입니다. 누군가에게 배신당하는 일, 사랑에 데었던 경험, 가정으로부터의 학대, 방황, 폭력. 사실 너무나도 괴롭지요. 누군가는 겪어보지도 못한 일입니다만 사실 저는 원했습니다. 아주 어릴 적 저는, 저도 모르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학생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가정은 이렇게 될 것이며 언제쯤 괜찮아지고 평생 이어질 것이라고. 참 신기하게도 그대로 되더랍니다. 그 고통 또한 부끄럽지만 제가 원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의연할 수 있는 것이지요. 주변인이 의아해하는 부분에 대한 해답입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걱정하지요. 그러나 저는 시큰둥합니다. 어떻게 될지 이미 알 거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곧 그렇게 됩니다.

실은 삶이 꽤 재미없습니다. 그렇다고 죽음을 원하는 건 아닙니다. 죽으면 작가는 또 새로운 소설을 쓸 테니까요. 저는 그 소설을 쓰는 행위 자체를 멈추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와 만나야겠지요. 그것에 대한 답답함이 아주 큽니다. 내 세상을 내 마음대로 만들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게 썩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결국엔 그 이상을 보게 됩니다. 저는 자꾸만 세상 속에서 떨어져 나와 모두를 관찰하고 어딘가 묘한 허점들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눈을 가리고 소설 속으로 들어와 이곳에 집중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의 허점과 어그러짐을 발견했는데 어떻게 섞일 수 있을까요? 진실을 알려고 하지 마세요. 그것은 제게 하는 말입니다. 그저 이 소설 속에서 우연을 가장한 필연들을 믿고 안주하고 살아가면 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지요. 이미 자주 붕 떠오르고 있으니까요.

참 이상한 글이지요? 행여 이 글을 읽은 분이 있다면 당신들은 내게 병원을 가거나 상담을 받아봐야 한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전문의도 제게 이런 유형의 정신문제는 없다고들 하십니다. 그저 조금 독특한 것 같다고 하셨지요. 네, 저는 그저 독특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러한 감각을 떨쳐낼 순 없으니까요. 답답함에 글을 써 내려갔을 뿐입니다. 재미없는 세상에서 간절함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미련 없는 삶을 심드렁하게 살아내야 하는 저입니다. 제가 온전할 땐 잠들어있을 때, 무의식 속 제 꿈속 세상이 오히려 더 선명하지요. 시간이라는 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우선 시간은 흐른다고들 합니다. 낮과 밤이 존재하고 밤이 되면 잠에 들 수밖에 없지요. 어떤 내용이든 매일 꿈을 꾸길 바라며 잠에 듭니다. 아, 행여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제가 느끼는 제 세상의 제 감각입니다. 정답도 오답도 없는 그저 일기일 뿐이니 가볍게 읽어 내려가시길. 어떠한 의견도 저는 존중하고 이해합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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