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음식기행

아귀백반과 어죽

by 꿈꾸는 소나무

남편의 전화다. 며칠 전에 시작한 필사에 몰두하다 무심히 받으니 빨리 준비하고 집 앞으로 나오란다. 조수석 차 문이 안 열려 서비스센터에 간 남편의 뜻밖의 전화를 받고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서둘렀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추어 늦어질 수도 있으니 냉커피를 타고 남편이 마실 이온음료를 시원하게 보틀에 담아 얼음도 몇 개 띄워 차에 올랐다.

군산을 향하고 나서야 남편이 입을 열었다. 낡은 차라 부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주변대리점에도 부품이 없다면서 현재 부품 있는 곳의 리스트를 보여준다. 본사에서 보내준 리스트를 보니 군산에 두 곳, 서천 한 곳 그리고 무주에 한 곳이 있었다. 당연 군산으로 가야지. 전군가도를 가는데 아래로 벼들이 자리를 잡아 파란 들판이 펼쳐져 있다. 긴 장마 끝에 유난히 싱그러운 풍경이다. 나는 풍경에 매몰되었는데 남편은 논 가운데 집 마당의 트랙터에 꽂혔다.

“요즘은 농사지으면 트랙터 하나쯤은 다 있어야 해.”

남편의 말에 ‘그러네.’라고 성의 없이 대꾸했다.

남편의 긴 역사적 사실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20년 전에는 집집마다 경운기 한 대쯤은 다 있었고, 40년 전에는 농사 좀 지으려면 소가 끄는 달구지, 60년 전에는 리어카가 대세였다는 설명이다. 자신이 세 살 코흘리개였던 60년 전까지 들먹이며 농사의 역사를 나열하는 남편은 꽤 진지하게 몰두해 있었다. 평소 뭔가를 물어도 잘 대꾸하지 않고 대체적으로 염세에 가까운 남편이었기에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이 사람이 즐거워하는구나 생각되어 잠자코 듣고 있었다. 리어카에서 달구지로, 다시 경운기로 이제는 트랙터로의 변천사를 보니 우리 베이비붐 세대들은 정말 급변하는 세상에서 나름 적응하며 애 먼 글 먼 살고 있구나 싶다. 그래, 우리가, 내가 사는 게 힘든 건 당연한 거야. 우리가 뭐 잘못 살아서 그런 건 아니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달리는 기분은 썩 괜찮았다. 여행 기분도 내어 보았다.

모처럼의 군산행이라 휴대폰으로 군산 맛집을 검색하는 중에 대리점에 도착했다. 하지만 허탕이었다. 단종되어 귀한 물품이라 미리 예약한 손님 줄 거라며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였다. 다른 군산 대리점에 전화를 건 남편이 사정해 보았지만 역시 같은 답변이었다. 군산에서 가까운 서천으로 다시 전화를 돌렸다. 이번에는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여 남편의 통사정과 그쪽의 거절을 다 듣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사정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지만 앞으로 이 낡은 차를 더 타려면 도리가 없다. 바로 갈 텐데 좀 주시면 좋겠고만. 연거푸 읍소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여느 때 와는 다르게 낯설었다. 우리는 결국 무주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간절한 심정으로 전화를 거니 다행히 있단다. 오늘 17시까지 가지러 갈 테니 절대 다른 사람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자.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가자. 시간은 11시 남짓이었지만 이미 맛집까지 찾아놓은 터라 기쁜 마음에 서둘러 음식점으로 갔다. ‘아귀백반’ 다소 낯선 음식이었지만 지역민들의 추천 음식이라니 실패하지 않겠지. 주인공인 아귀찌개가 나오기 전 게장과 황석어 젓갈 무침을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흔히 보는 반찬이 아닌 바닷가에서나 맛볼 수 있는 반찬이라 반가웠다. 비릿한 바다 내음도 입맛을 돋웠다. 아귀찌개는 얼큰한 빨간 국물에 아귀와 미나리, 양파 등을 넣고 끓인 생선찌게였다. 찜으로만 먹던 아귀를 찌개로 만나 반가운 마음으로 능글한 살도 알뜰히 발라 먹어 치웠다. 이것저것 남은 반찬 청소를 하며 기쁜 마음에 남편에게 공치사할 겸 말문을 열었다.

“내가 음식점 잘 골랐지?”

“아니.”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단칼에 답변이 돌아왔다.

우거지는 질기고 밑반찬들이 별 맛이 없다는 남편의 설명이다. 색다른 음식이니 너그럽게 먹어 넘기면 감사하겠고만……. 솔직한 표현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 그 느낌을 직접 경험하였다. 쩝~. 결국 군산은 순전히 점심을 먹기 위해 온 꼴이 되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군산에서 무주까지는 전주를 통과해서 가야 하는 먼 거리였다. 어차피 수시로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2-3시간은 족히 걸리곤 했던지라 오늘도 드라이브 가는 셈 치자는 말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남편은 차를 천천히 몰았다. 평소의 운전습관대로라면 경주하는 차 마냥 요리조리 차들을 따돌리며 나름 속도감을 즐겼어야 하는데 웬일이래. 거친 운전으로 조수석에서 맘 고생하는 마누라를 나름 배려하여 맘먹고 슬로드라이브를 결심한 듯하다. 기특하네.

저녁에 어죽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별말이 없다. 긍정으로 받아들이자. 우리의 주 목적인 차 부품을 구입하는 데 성공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보니 15시도 되지 않았다.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무주에 온 김에 관광지를 가기로 합의를 보고 구천동으로 차를 모는데 주변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고 길가에 연분홍빛 복숭아가 자태를 뽐내며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비 때문인지 산지여서인지 제법 싸고 크기도 굵고 실하다. 잘라주는 복숭아를 한입 베어 문 남편이 ‘어렸을 때 먹던 복숭아 그대로네요.’ 한다. 내가 먹어보니 신맛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리 달지도 않았다. 여자는 남편의 말에 감동해서인지 덤까지 얹어주어 두 보퉁이나 차 뒤편에 쟁였다. 달지도 않은데 왜 극찬을 했느냐고 물으니 ‘내가 맛있다고 했어? 어렸을 적 과수원에서 따서 바로 먹던 바로 그 맛이라 그대로 표현한 건데.’ 무슨 문제 있느냐는 듯이 되묻는다. 말장난도 아니고 차라리 말을 말자. 고개를 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속으로는 귀도 막았다. 충돌은 피해야지.

무주구천동은 그 물소리만으로도 더위를 물러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 걸을 것이 못 되는 게 땀이 삐질삐질 나면서는 다시 여름을 실감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16시 남짓이다.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 현수막에 맛집에 나온 식당이 유혹한다. 일단 가보자. 점심 휴식시간이 30분이나 남았지만 여주인은 한숨 쉬며 고민하더니 앉으란다. 근데 커다란 에어컨은 깊은 휴식에 들어간 듯 미동도 없고 대신 방충망을 걸친 창문이 보초를 선다. 무주라는 지대가 무색하게 훅~ 더위와 눅눅함이 몰려온다. 어죽을 고집한 것이 미안스러워 남편을 보니 별 내색이 없다.

2인분의 어죽이 커다란 보퉁이에 나왔다. 빨간색의 어죽은 주연이 밥이었다. 대개 어죽 하면 국수나 수제비가 들어가는데 이 집은 말 그대로 죽이고 먹을 때 고명처럼 수제비가 씹힌다. 많지 않은 수제비가 백미다. 씹는 입속에 작은 새우가 오래 남는다. 물고기를 우려낸 물에 새우까지 넣어 나름 맛을 내었구나. 한데 매운맛이 강해 그 걸쭉한 어죽 고유한 맛이 밀린 느낌이다. 적당한 매운맛이 더위와 만나니 몸 전체가 서서히 데워진다. 말없이 서둘러 먹은 남편이 밖으로 나가 차에 에어컨을 켰다. 덥긴 덥나 보다. 어죽을 고집한 것이 미안하여 슬쩍 남편을 떠보니 더위에 손님을 기다리며 에어컨도 켜지 못하는 주인은 오죽하겠느냐며 넓은 마음을 낸다. 맘이 태평양이네. 힘들게 여름을 나며 무작정 손님을 기다리며 자리도 비우지 못하고 북 매여 에어컨 전기세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새삼 숙연 해진다. 우리나라가 살만해졌다지만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 항상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새로운 음식을 먹는 행운과 두 곳의 여행까지, 삶이란 늘 계획을 세우지만 뜻하지 않은 일도 겪게 된다. 삶이라는 배가 항해하는 길에 따라 고단하거나 평탄하거나, 둘 다 새로운 길이니 여행으로 즐기면 될 일이다. 매일 같은 일상에 끼어든 낯선 일정으로 하루가 후딱 가버렸다. 인근 도시 두 곳을 갔다 왔다는 만족감과 낯선 음식도 오래 기억에 남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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