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헌 발톱 줄게 새 발톱 다오!
아침에 양말을 신다 보니 왼발 세 번째 발톱이 없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새살이 자리를 잡고 있어 보기 흉하지는 않다. 여전히 속살에 피가 뭉쳐 보랏빛이지만 그 색이 옅어 언뜻 보면 매니큐어를 멋 나게 가운데만 칠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지난주 금요일 힘든 요가 동작을 하는데 다리를 벌리면서 그만 손으로 기어이 발톱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이미 검붉은 보랏빛으로 피가 뭉쳐 발톱이 그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통증은 없었다. 깜짝 놀라 보니 발톱이 제 자리를 벗어나 아랫부분만 간신히 살을 움켜쥐고 있었다. 열댓 명의 회원들 동작을 골고루 고쳐주며 분주히 돌아다니는 선생님이 오늘은 유독 나에게 가까이 오지 않는다. 왼쪽 발톱 두 개가 나란히 진보라 매니큐어처럼 멍이 들어있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오늘 세 번째 발톱의 반항을 눈치챈 것 같았다.
아이 둘이 학교에 다니고부터 우리 부부는 주말이면 산을 자주 찾았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주변 산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등산을 갔다 오면 꼭 발톱에 보랏빛 매니큐어가 떡하니 자리를 잡는다. 처음 며칠은 사정없이 발톱이 아프다 감각이 없어질 때쯤엔 색이 진해져 있다. 혹자는 신발이 작아서라고 하고, 혹자는 자세가 좋지 못하다고도 했다. 큰 치수의 등산화를 신고 바른 자세로 산행을 하려고도 했지만 좀 험한 산을 다녀오거나 산행 시간이 길었다 싶으면 꼭 발톱이 수난을 당하였다. 주말농장을 시작하여 산행이 강제로 종료될 때까지 모든 발가락의 발톱 심지어 엄지발톱도 빠지고 새로 나기를 반복하였다.
십 년의 주말농장은 남편의 오른뺨에 훈장을 남겼다. 아주 커다랗게 검버섯이 떡하니 자리를 잡은 것이다. 피부과를 가보자고 여러 번 권유했건만 남편은 요지부동이었다. 여름 한 달에 두 번 이상 넓은 밭의 풀을 쳐내는 일에 남편은 땀을 쏟았고 결국 두 손 들고 말았다. 말로는 오뉴월 오이보다 더 쑥쑥 크는 잡초를 더 이상 감당 못해서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얼굴의 훈장 때문인 듯했다. 농장을 정리하고 우리는 다시 무료한 주말을 보냈다.
6년 전 옮긴 학교에서 학생들의 체력과 정신력 함양을 위해 2박 3일의 산행 종주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해 내가 담임을 맡은 아이들과 설악산 울산바위와 해파랑길을 3일 동안 걷고 또 걸었다. 그 후 한 달 내내 오리걸음을 하며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여름방학 때부터 집 근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중간 쉼터까지 가는데도 헉헉거려 정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그때는 발톱의 고통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대 명산을 한답시고 충청도, 경기도까지 산행지역을 넓히자 이내 수난이 다시 시작되었다. 결국 100대 명산이 50대 명산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소중한 내 발톱을 지키고자 다시 근처 산으로 산행 장소를 정하였다. 이제 발톱의 수난은 그 어미와 막내 새끼를 제외한 가운데로 한정되었다. 위기상황에서 어미가 제일 어린 새끼를 보호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가운데 세 개의 발톱이 매니큐어를 입고 환골탈태할 기회를 노리며 물들고 떨어져 나갔다.
발톱이 신발과 부딪히면서 결국 피가 뭉치며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간다. 속에서 새로운 살이 자라면서 피부를 보호하고 새 발톱의 구실을 하게 되면 하얗게 떠들려 올라간 발톱은 미련 없이 세상을 등진다. 제 몸을 새끼에게 다 파 먹히고 빈 껍질로 스스로를 제사 지내는 우렁이 같다. 피부의 강한 생명력을 보면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이번 주말에는 신발 끈을 꽉 조이고 조심조심 산에 올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