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한편에 심은 감자가 싹을 틔워 잎이 무성하더니 하얀 꽃을 피워낸다. 예쁘고 귀한 감자꽃이지만 전부 따주었다. 모처럼의 감자 농사에 기쁨과 행복이 마음 가득 넘실댄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잔디에 비해 턱없이 작은 텃밭이지만 감자를 심을 수 있어 기쁘기만 하였다.
볕이 강한 하짓날, 감자잎들이 노래지며 에너지를 모두 땅속 열매에 소진할 즈음 그 줄기를 쭉쭉 뽑아내고 호미로 살살 가르면 흙 묻은 얼굴들이 ‘나 여깄 소!’ 한다. 열 달을 복중에서 잘 자라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 같다. 보드라운 면에 싸서 엄마 옆에 누이듯, 추적추적하고 거무스름한 그것들을 뜨거운 대지에 누여 놓는다. 평소 햇빛을 보면 그만 파랗게 질리고 마는 감자지만 처음 세상에 나오면 대지의 품에서 고슬고슬 흙검댕이들을 떨궈낸다. 감자 농사에 유독 많은 시행착오와 추억이 서려 있어 기분이 남다르다.
고등학생이 된 딸애가 방송반에 들어가 공부는 뒷전이다. 힘든 마음을 주말농장으로 달래기 시작했다. 얼었던 땅이 녹아 질퍽해지는 이른 봄부터 완두콩을 시작으로 감자, 고추, 오이, 땅콩, 가지, 토마토 등 온갖 작물을 심었다. 하지 즈음 감자를 수확해야 하는데 파랗게 올라온 감자 싹이 추위에 검게 오그라들어 모두 고사(枯死)하고 말았다.
다음 해에는 조금 늦게 감자를 심어 보았다. 감자잎들이 꽃샘추위를 무사히 넘겼는데 하지에 캔 감자는 대부분 속이 시커멨다. 감자가 안으로 냉해를 입은 것이다.
이듬해에는 감자를 심고 그 위에 비닐을 덮었다. 장례식장 근조를 연상시키는 하얗고 까만 비닐은 농약사에서 추천해 준 것이다. 아! 옛날처럼 감자를 그냥 노지에 심는 게 아니구나. 한 달 정도 지나니 하얀 비닐 속에 파란 감자 싹이 나오는 게 보였다. 싹이 난 부분의 비닐을 조심스레 찢어주었다. 하얀 부분에 싹이 올라오고 나머지는 모두 검정 비닐에 덮여 감자는 더 이상 바깥 온도변화에 휘둘리지 않았다. 땅심을 잡은 감자잎들이 흐드러지더니 감자꽃이 만발하였다.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시구절을 읊조리며 하짓날 캘 커다란 감자 생각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얼마 후 조카 결혼식이 멀리 강원도에서 있었다. 조카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고속도로를 가로질러 가는데 주변으로 넓디넓은 감자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그런데 감자꽃이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한두 개, 거의 없다. 우리 감자밭은 온통 하얀 감자꽃 천지인데. 전문 농사꾼보다 내가 감자 농사를 더 잘 짓는 것 같아 내심 흐뭇하였다. 그해 하지를 넘기고 캔 감자는 어미 닭 따라가는 병아리 마냥 올망졸망 어린것들 뿐이었다.
밭 옆에 사는 할머니가 우리 감자를 보고 혀를 끌끌 차신다.
‘감자는 한참 꽃이 피면 그 꽃을 죄다 따 주어야 혀.’
‘왜요?’ 내가 의아해서 물었다.
‘아, 그래야 땅속 열매로 영양분이 갈 것 아녀.’
날씨가 오락가락하고 아침저녁과 낮의 일교차가 극심한 기후에 노지 감자는 참 어렵다. 그동안의 실패를 교훈 삼아 비닐로 씌우니 파란 싹들이 자리를 잡고 몸집을 불리면서 감자꽃이 피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꽃을 따주었다. 그런데도 일주일 만에 가보면 꽃 따낸 줄기에 벌써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다. 힘닿는 데로 에너지를 모아 꽃을 피우며 자손을 번성시킬 기회를 엿본다. 모든 식물이 그렇다. 마늘도 긴 겨울을 나고 뿌리에 힘을 잡으면 부지런히 위로, 위로 그 에너지를 모아 올린다. 땅속의 자손도 모자라 자신의 줄기 위에 또 자손을 만드는 것이다. 굵은 마늘을 캐려면 올라오는 마늘종을 계속 잘라 주어야 한다.
작년 겨울 새로 지은 집에서 처음으로 겨울을 맞았다. 추위가 서서히 몰려오면서 유독 현관주위에 작은 곤충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점점 기운을 잃어가며 현관 앞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많이 눈에 띄는 사마귀는 집게로 집어서 밖으로 내보내도 어느새 또 담벼락에 붙어 있곤 했다. 저녁에 사마귀 두어 마리를 내보내고 난 뒤 아침에 나가보니 대문 틈에 하얀 뭉텅이가 보인다. 사마귀가 나무 대문에 알을 낳고 밤새 하얀 실을 만들어 감싸 놓은 것이다. 온 힘을 소진한 사마귀는 널브러져 미동도 없다.
온통 하얗게 꽃을 피우는 감자 너머로 지난겨울 알을 낳고 죽음을 맞이한 갈색의 사마귀가 떠오른다. 숭고한 그 어미들을 생각하다 문득 타지에 있는 딸애 생각이 났다. 오늘은 딸에게 전화를 걸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