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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과학자 Apr 10. 2024

내가 박사후연구원(post-doc)을 하지 않은 이유

인생의 행복을 알아가는 과정

박사후 연구원(post-doc)은 대학교나 학술전문연구기관에서 박사 취득 후 특정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포닥이 되는 것은 성공적인 경력을 쌓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결정한다.


내가 알고 있는 포닥의 정의다.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석사 혹은 박사과정 학생이거나 포닥분들이다. 그래서 내가 저년차일 때 부터 포닥을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돌이켜보면, 포닥을 도전하지 않는 것은 연구의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변 박사님들께 속히 가스라이팅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 말한 것 보면 내가 포닥에 대한 생각들이 굉장히 부정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맞다. 나는 포닥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가려고 했었던 사람 중 한 명으로써, 내가 왜 포닥을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지 적어보려한다. 그저 해당 글이 지금 나의 감정 표출 수단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이 글을 읽어보면서 연구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한 번 생각해보기를 바랄 뿐 이다.




예측가능하기 힘든 현대사회

지금 우리는 당장 앞으로 5년, 10년, 20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기후변화 문제는 어느새 기후위기 문제로 바뀌었고, 국제 정세는 여전히 어지럽다. AI와 로봇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일자리는 대체되고 있다. 당장 AI와 로봇으로 소재개발하는 나지만, 나조차도 그들에게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항상 내면에 달고 연구하고 있다. 자산의 양극화는 더더욱 심해져서, 가진자가 가지지 못한자들 보다 훨씬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과연 그 자산 격차를 좁힐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내집마련"이라는 꿈을 누구나 갖고 있지만, 과연 내가 "내집마련"을 할 수 있을지 비관적 관점에서 나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설령 "내집마련"을 한다 하더라도 자산이 어느정도 있고 직장 연봉이 꽤 높은 부부들에 한해서다. 자가에 대한 과수요로 인해 젊은 부부들은 죽을 때 까지 원금을 갚아야한다. 더 나아가, 일반 중하위층은 평생 "내집마련"에 대한 꿈은 이미 버린지 오래다.


이렇게 예측가능하기 힘든 현대사회에서 길게 보고 연구하는 포닥의 생활이 과연 올바른 방향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과학자 선배들의 경우에는 하나의 분야를 우물 파듯이 파는 연구를 많이 진행했었고, 그걸 보면서 자란 우리는 연구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술의 발전이 빠른 경우, 유행에 뒤쳐지지 않는다면 다행일 정도다. 또한, 내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분야가 언제 끝날지도 예측할 수 없다. 정보의 교류되는 속도가 전보다 빨라진 만큼 하나의 분야를 계속하는 것이 과연 현대 사회에 적응한 동물의 진화적 행동일까? 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연구개발이 과연 나와 맞을까?

모든 사람들의 직업이 자신과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자신과 맞는 직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축복받은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과연 나는 연구개발 직군이 나와 잘 맞는 것일까?" 라는 근원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교 시절의 나로 돌아가보기로 하였다.


나는 화학과를 졸업하였다. 우리 과에서는 아무래도 배우는 것들이 기존에 알려진 이론들이고, 이런 작은 이론들을 밝혀내는 것 자체가 굉장한 시간이 많이 필요로 하는 작업이였다. 이 시기에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썬을 배웠고 입력값에 대한 결과물이 바로 나왔다. 이 때 나는 "내가 투자한 시간 대비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주기가 짧은 활동들을 좋아하는구나" 라고 느꼈던 것 같다. 어찌보면 나의 성취욕이 공부할 때도 발현되지 않나 생각이든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에 빠졌고 졸업하기전까지 컴퓨터공학과 전공 수업들을 챙겨 들을 정도로 정말 재밌게 공부했었다. (이 시기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듯 하다) 하지만 학계에서 하는 연구개발은 짧게는 3년, 길게는 6-10년을 바라보고 투자를 한다. 물론 나도 대학원에서 해당 과정을 겪고 있지만, 내가 결과물을 얻기까지 원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추가적으로 내가 개발한 요소기술들이 실제 산업에 쓰이는데까지는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하기에, 내가 요소기술의 효능감을 느끼기에는 큰 괴리감이 존재한다.


또한, 내 MBTI는 ENFJ다. 공상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써,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큰 그림을 스케치하고 실행에 옮기고 이를 관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박사님 따라서 과제 기획 회의하다가 나의 생각들이 구체화되었다. 과제 기획 회의에서 하나의 목표 아래, 구체적인 일정 및 컨소시움, 계획들을 구체화하던 과정을 생각해보았을 때, 해당 과제가 내가 책임자였다면 정말 재미있게 했었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연구개발은 해당 과제의 최종목표를 위한 필요한 요소기술을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그림을 스케치한다기 보다는 스케치 되어있는 그림을 채색하는 느낌이었다. 좀 더 나와 붙여서 생각해보자면, 연구개발보다는 과제 기획이 좀 더 잘 맞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생에 단 하나의 종류의 행복만 있지는 않다

물론 지금은 내가 쓴 논문이 좋은 저널에 투고되어 다행이지만, accept 되었을 당시의 기분은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내가 그만큼 절실했었구나"라고 느껴지면서 내 자신이 정말 대견했었다. 하지만 반대로 연구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 나는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했다. (그만큼 내가 워커홀릭이 아니였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그만큼 연구개발 자체가 내 삶이었고, 연구개발 자체가 나였다.


이는 건강하지 못한 나였고, 연구 실적에 따라서 내 기분이 출렁이는 하나의 파도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일 외적으로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참 많다. 여자친구, 가족, 친구, 독서, 클라이밍 같은 것들이다. 지금까지 내 학위 과정이 힘들었던 것은 나 자체를 연구, 일로 동일시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단 하나의 종류의 행복이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불안으로 인한 내 사람들의 힘듦

우리는 지금 불안이 만연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런 사회 속에서 행하는 박사과정은 외적인 불안과 내면의 불안의 연속이다. "내가 과연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까?" 를 스스로에게 강박적으로 질문을 하게 된다. 또한, 비교하면 안되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주변 사람들은 회사생활하면서 자산도 차곡차곡 모으고 배우자와 결혼생활을 준비한다. 그에 비해 난 가진 것 하나 없이 묵묵히 학위과정을 간신히 버텼다. 그 과정에서 여자친구도 떠나보냈다. 그런데도 난 버텼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지만, 오로지 스스로의 포텐셜에 의지하여 버텨낼 뿐 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내가 무너진다면? 

과연 포닥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내가 포닥을 마치고 한국으로 왔을 때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게 될까?


나에게 던졌던 수 많은 생각들이다.


이러한 불안으로부터 해방되면 물론 다행이지만, 나라는 사람은 불안에 생각보다 취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나는 굉장히 이타적인 사람이고, 내 주변 사람들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래서 내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하지만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면, 내 삶이 많이 힘들어진다. 그렇게 나는 연애를 실패했었다. 가장 미안한 부분은 나의 외적 그리고 내면의 불안을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들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이 하나도 없을 때 정말 좋아했고 사랑했던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선택한 연구자로의 삶이지만,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잃었다는 죄책감은 나의 내면 안에 깊은 상처가 되었다. 




적다보니 포닥이라는 생활은 내 사람들과 함께하는 현실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온전히 나만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리는 아닌 것 같다.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아 아쉬울 뿐이지만, 지난 시간을 도움닫기 삼아 연구자로의 삶이 아닌, "나" 라는 삶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내 자신과 대화를 더 나눠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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