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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doc]결국 내가 postdoc을 선택한 이유

앞을 보지말고 멀리 보자

by 다정한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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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쓴게 2024년 4월, 당시에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해 혼돈 속에 갇힌 상태였다.


과연 졸업은 할 수 있을까?

졸업하고 뭐먹고 살지?

어디든 취업할 수는 있겠지?


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나의 생각들을 철저하게 가로막아 섰다.

박사과정생들은 이러한 생각들을 정리하다보면 항상 3가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1. 취업

2. 연구소/학교

3. Postdoc (포닥)


선택지가 너무 적다고 느껴지겠지만, 보통의 박사과정생들은 항상 이 갈림길에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하게 되어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나는 결국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 (LBNL)으로 포닥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작년 4월에 그렇게 포닥에 대해 부정적이던, 결국 왜 포닥을 선택했는가?


예측 불가능한 시대, 중심은 결국 ‘AI’ 그리고 ‘미국’


요즘의 사회는 그야말로 ‘예측불허’다. AI가 발전함에 따라 모든 산업군으로 스며들어가다 못해 이제는 산업군 전체를 바꾸고 뒤흔들고 있다. 이로 인해 생산성 및 발전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AI 기반 기술의 발전속도를 인간은 따라잡기 벅차다. 이러한 조급함은 AI가 현대 사회의 모든 accelerator이자 trigger로써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AI가 핵심 기술이다. 이런 세상에서 적응하고 생존하려면, 변화의 한가운데에 몸을 담그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AI 기술이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기술의 중심이 되는 곳은 어디인가?”

정답은 명확했다. 미국이다.


나는 AI 기술개발의 중심지인 미국으로 가면, 내 연구분야의 트렌드를 누구보다 크게 선도할 수 있고 좋은 기술을 빠르게 반영하여 높은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좋은 실적이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온다하더라도, 기술개발을 장려하는 환경과 신기술 트렌드에서 몸을 담궜던 나의 경험들은 내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어줄 가장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라고 믿었다.


연구개발이 과연 나와 맞을까? → 아직 모른다


연구개발의 본질적인 목표는 결국 기술개발을 하여 산업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논문을 위한 기술개발이 아닌 정말 practical하게 쓰일 수 있는 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R&D는 논문을 위한 기술개발에 집중되어있다. 그 이유는 R&D를 과정과 목표가 아닌 성과로만 보는 현재의 R&D 평가 시스템 때문이다. 항상 중간평가를 하면서 논문/특허/기술이전 실적을 보고, 3+3, 1+2+3 처럼 단기간의 성과를 요구하는 대한민국의 R&D 평가 시스템은 이미 질적 평가를 배제한체 정량적 평가만으로 굳어져왔다. 거기에 질려버린 나도 연구개발이 과연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년의 나는 연구개발보다는 연구기획이 더 잘 맞는다고 받아들였다. 제한된 자원과 틀 안에서 실현가능한 목표만을 위해 기획을 한다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대한민국보다는 확연히 다르다. 정말로 선민의식이 아니라 달러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기 때문에, 재정적 여유가 있다보니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과정과 목표만을 추구하며 기술개발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과는 다른 환경 속에 놓여진 내가 과연 성과주의 R&D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오는 참된 R&D를 할 수 있을까? 정말 내가 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R&D를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설렘이 들었다. 그 설렘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다양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라로 가자


대한민국의 시계는 그 어느나라보다 빠르게 느껴진다. 자원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늘 누구와 경쟁해야한다. 어느 한 쪽을 떨어뜨려야 내가 올라가는 이 냉혹한 피라미드에서 살아남으려면, 나의 소중한 무엇 하나는 꼭 포기를 해야한다고 어렸을때부터 경험적으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 나에게 소중한건 크게 5가지다.


1. 나의 오늘인 아내

2. 가족

3. 친구

4. 돈

5. 명예


여기서 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 성과를 향해 달린다면, 나의 오늘인 아내, 가족, 친구들에게 관심을 줄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자연스럽게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자원이 한정적인 대한민국에서 돈과 명예를 포기한다면 (특히 박사들에게 명예는 곧 돈과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아내, 가족, 친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되거나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지켜낼 수 없다. 결국 여긴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미국은 자원이 넘쳐나는 나라로 대한민국에 비해서는 경쟁이 심하진 않다. 굳이 비교하자면 대한민국은 하나의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모두가 달려드는 것이고, 미국은 여러 개의 피라미드를 여러 인종,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달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편리한 나라, 미국은 편안한 나라라고 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사회에서 대한민국보다 많이 받을 수 있는 연봉,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미국이라면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편리한 나라가 아닌, 편안한 나라인 미국을 선택했다.


불안이 대신 옆에서 지켜주는 나의 오늘인 아내


내 인생 통틀어서 가장 잘한 선택은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라고 확신한다.


대한민국의 연구자로써 언제 연구비가 삭감될지 모르는 불안함. 그 불안함이 현실이 되어 실적에 영향을 주고 우리 가정을 먹여살리는데 문제는 안될지 걱정되는 그 마음. 아카데미에 남아도 연구비를 과연 딸 수 있을지. 정말 그들이 말하는대로 영업하는 것 처럼 원로 교수님들이나 박사님들 모시면서 연구비 내려받기를 해야하는지...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늘 불안함이지만 옆에 있는 아내에게만큼은 팩트만 전달할 뿐 감정을 섞어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가장의 무게라고 생각했었다.


다행히도 내 아내는 정말 현명하다. 그런 나의 불안함을 이미 캐치했는지 예전부터 지금까지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었고, 내 옆에 아내가 있었기에 박사과정을 잘 마무리하고 지금의 포닥 자리를 결정할 수 있었고 도전할 수 있었다. 늘 나에게 "돈 많이 벌 수 있니?" "취업 할 수 있겠니?"라고 장난스레 묻는 아내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날 응원하고 지지해주며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잘 풀릴거라고 기도해주는 아내라서, 내가 속으로 너무 힘들 때 항상 심적으로 의지가 되는 동반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슨 도전을 하던 내 뒤에는 늘 든든한 아군이 있고, 그 아군이 내 아내라서 너무나 행복한 요즘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나이들면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나만의 판단 기준도 명확해지고 그 기준을 잃지 않고 매순간 나에게 적합한 판단을 잘한 것 같아서 참으로 다행이다.


이 글이 연구자의 삶을 살면서 포닥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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