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병원까지는 차로 10분, 막혀도 15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다. 조바심이 났다. 침을 삼키면 ‘꿀떡’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괜히 마른기침만 콜록 인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은 것은 땀이 많이 나는 내 체질 탓일 게다. 차창밖은 매양 보던 풍경이다. 다만 오늘 조금 더 흐리고 음산한 느낌일 뿐.
사거리에 이르면 바로 왼편에 병원이 있다. 좌회전을 못하는 도로라 조금 더 직진해서 유턴을 해야 옳을 일인데, 택시는 우회전을 해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재개발이 임박한 오래된 골목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간다. 오늘따라 왜인 지 인적조차 드물다. 괜찮다. 전에도 길을 헤매다 이 경로를 거쳐갔던 기억이 난다. 침착하자. 이제 거의 다 왔다.
그 짧은 순간 차 안에 잔잔히 흐르던 클래식 선율은 스릴러 영화의 BGM이 되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바흐에 심취해 피가 낭자하게 살육하던 한니발 렉터가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이 모든 것이 마치 닥쳐올 끔찍한 장면의 서막이고 불길한 전조인 듯싶다. 택시 안에서 나는 공포영화 트레일러 한 편을 찍고 있었다.
두근거리던 심장박동이 무색하게 나는 무사히 제시간에 병원 입구에 도착했다. 택시는 귓가에 이명처럼 울리는 바이올린 선율만 남기고 유유히 떠났다. 그럼 그렇지. 다큐멘터리같이 단조로운 내 일상에 서스펜스는 상상 속에서나 펼쳐질 일이었다. 향수 냄새도 손가락 악력기도 모두 맥거핀(Macguffin)*이었다
얼마 전 경북 포항에 한 여대생은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대학교 기숙사로 가야 할 할 택시가 낯선 곳으로 향하자 공포감이 극에 달해 일어난 일이다. 처음 여론은 택시 기사를 욕했지만 알고 보니 그는 보청기를 끼는 청력 장애인이었다. 이후 경찰이 확보한 블랙박스에는 애초에 일러준 행선지를 잘못 알아들은 정황, 잘 들리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킨 대화 내용이 녹화되어 있었다.
늦은 밤 택시에 탄 여자 승객에게 원활하지 못했던 의사소통과 침묵, 낯선 경로는 물리적인 폭력이 없었음에도 패닉이 와 뛰어내릴 만큼의 공포였다. 누구의 잘못이라 탓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만의 하나 벌어질지 모를 범죄를 매 순간 예상하고 긴장해야만 하는 일상의 공포로 비롯된 참극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최근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알쓸범잡, 당혹사는 요 근래 나의 최애 다시 보기 콘텐츠다.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횃불 일렁이고 콤콤한 냄새나는 일루미나티의 비밀 회랑처럼 어둡고 음침하다.
종일 좁은 차 안에서 운전대를 잡고 앉아있으면 혈액순환이 잘될 리 없다. 클래식 음악은 그의 고상한 취향일 테다. 틈틈이 짬 내 악력기를 쥐어 체력 관리하고 교양 있는 음악 듣는 애꿎은 택시기사를 일순간 소름 돋게 두려워한 내 무의식에 죄책감이 들었다. 한정된 택시 탑승 경험 빅데이터로 촌스러운 스테레오 타입을 만들고, 거기서 조금 벗어난 낯섦을 내 맘대로 오해했다. 어쩌면 스릴러 상황극을 만들어 낼 만큼 별것 없이 무료한 내 일상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가만 근데, 우리 아파트 후문에는 자동차 출입을 통제하는 차단기가 있었다. 등록돼 있는 입주민 차량 외에는 출입이 불가능하다. 택시는 어떻게 차단기를 열고 지하 주차장 안으로 들어와 있던 걸까.
......
나는 당분간은 조금 일찍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다닐 생각이다.
*맥거핀: 작품 줄거리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관객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묶어 둠으로써 공포감이나 의문을 자아내게 만드는 극적 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