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빗소리를 함께 만끽한다. 그야말로 내 귀는 호강하고 있는 중이다.
대체 휴일인 오늘, 아들 k는 고3 포스를 뿜으며 제 방에서 열심히 공부 중이다.
식탁에서 책을 읽던 나는 점심때가 되어 k에게 스파게티를 제안했다. 하지만 어제 점심때 라면을 먹었다는 이유로 k는 면음식을 거절했다. 이럴 땐 참 기특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k에게 나물 비빔밥을 차려 주었다. 비빔밥을 좋아라 하는 아이는 아니지만 할머니께서 만들어준 음식은 다 잘 먹는 편이서 잠시 입을 삐죽거리더니 이내 쟁반에 그릇을 담고 방에 들어가 혼자 먹는다. 그저께 남해 본가에 다녀오면서 어머니께서 싸 주신 4가지 나물을 이번 주 밑반찬으로 먹을 예정이다.
어젯밤 우연히 샘킴 셰프의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 중간중간에 강조하는 "가장 기본에 충실한 스파게티"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다. 영상을 보고 있으니 너무 먹고 싶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면 올리브 오일을 생각보다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었는데 일단은 따라 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소스에 버무린 샐러드 채소와 조각낸 방울토마토를 스파게티 위에 넓게 얹어 주면서 완성시켰다. 그 또한 따라 해 보고 싶었다.
'내일 점심 메뉴는 알리오올리오 스파게티로 하자.'
남편은 출근하고 아들과 나 이렇게 남겨진 오늘, 아들의 점심을 먼저 챙겨주고 나는 스파게티를 준비했다.
마늘, 올리브오일, 매운 고추, 소금, 후추. 그리고 스파게티면.
기본에 충실한 스파게티답게 재료도 단출하다. 거기에 샐러드를 곁들일 거라 루꼴라와 방울토마토, 새우, 레몬즙을 더했다. 평소 나의 레시피대로 하자면 절인 올리브와 액젓도 필요하다. 물 2리터에 소금 몇 스푼 어쩌고...... 하면서 계량에 집중했지만 샘킴세프는 소금도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한 꼬집씩 뿌려가며 맛을 보는데 아주 편안하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그 동작마저 따라 해 보았다.
음식을 다 만들고 나서 주방을 보니 산만하게 널브러진 모습이 아니라 설거지도 몇 안 되는 부담 없는 상태였다. 좋다. 이런 느낌. 편안하게 식사시간을 만끽해 보자.
먼저 면을 포크로 말아먹어 보았다.
과연 "가장 기본에 충실한 스파게티"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올리브오일과 마늘, 매운 고추, 면. 거기에 약간의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간단한 음식이지만 맛의 깊이는 간단하지 않았다.
그다음엔 루꼴라 몇 줄기와 방울토마토를 함께 말아서 먹어 보았다. 이 또한 루꼴라의 고소함과 잘 어우러져서 괜찮았다. 혼자 먹기엔 아까운 맛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돌아오는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맛있게 잘 먹을 것 같다.
비가 제법 굵게 내리나 보다. 빗소리가 묵직하게 들린다. 올리브 오일에 볶아낸 마늘의 향과 루꼴라 가득한 샐러드가 오늘의 날씨와도 잘 어울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