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에 의하면 오늘 밤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바라본 하늘은 연한 잿빛이다. 부산의 하늘도, 경주의 하늘도.
"이번 주 일요일은 아침 일찍 출발해서 경주로 드라이브 다녀오는 거 어때요?"
기분이 좋을 때, 기분이 그저 그럴 때, 마음이 복잡해서 기분이 가라앉을 때, 이도 저도 아닌 그냥일 때.
늘 경주로 향한다. 혼자서 또는 남편과 둘이서 아니면 마음 맞는 선배들과 함께 말이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50여분을 달리면 어느새 [전방 몇 킬로미터 '경주'] 이정표가 보이고, 그때부터 내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 찬다. 결혼 전 언제인가 퇴근 후 남편과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 분수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갔을 때 노란색 프리지어 꽃다발을 들고 서 있던 남편을 멀리서 바라보며 설레어했던 그 느낌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처럼.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포근하게 안아줄 것 같고 다 받아줄 것 같은 경주를 좋아한다.
'이렇게 쫓기듯 생활하고, 일하는 게 맞아? 이대로 가면 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
하루하루 너무 빠듯한 요즘. 나를 돌아보게 되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그만큼의 내공이 체득돼서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노련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2,30대의 효율적이지 못했던 내 모습에 대한 기시감을 느끼곤 한다.
명절 연휴 전날, 몸에서 반응하는 이상 징후를 느끼고 퇴근 후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약처방 보다 휴식이 강력히 요구되는 상태라고 해서 양가 명절 인사도 남편과 아들 두 사람만 다녀오게 되었다. 연휴 4일 내내 책 읽고, 낮잠 자고, 가까운 곳에 드라이브 다녀온 게 전부였는데 마음 한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조급함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연휴가 끝나고 화요일부터 시작된 바쁜 하루하루를 느끼면서 스스로 내 등을 쓰다듬게 된다.
'나를 돌보자. 나를 먼저 생각하자.'
수요일 저녁, 남편에게 말했다.
"이번 주 일요일은 아침 일찍 출발해서 경주로 드라이브 다녀오는 거 어때요?"
회사 근무 일정만 문제없다면 남편은 언제나 나의 제안에 찬성한다.
아침 여덟 시에 출발하려고 했으나 아들이 토익 시험장까지 태워달라는 갑작스러운 부탁을 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한 시간 정도가 늦어졌지만 다 괜찮다. 경주로 가니까.
경주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남산마을로 가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30여 분 가량 마을 산책을 하고, 정갈한 한정식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애쓰지 않아도 내 마음이 받아들여지고 위로받고 있다고 느껴지는 이곳을 사랑한다. 그리고 마음을 내어주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게 든든한 뒷배처럼 느껴진다.
다행인 것은 예전에는 바쁜 일정과 그 속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도 몰랐지만 지금은 상황을 인지하고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스스로 알고 실천한다는 점이다.
내일 또다시 분주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모든 상황, 조건 등은 다 상대적인 것이라서 나의 분주함이 누군가에겐 아쉬움으로 또 누군가에겐 하찮음이 될 수도 있겠지.
버겁고 힘들 땐 쉬어주면서 충전해야 한다.
오늘 경주에 다녀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충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