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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Jan 28. 2024

기억

2024년 1월 23일 새벽 5시 20분. 올해 마흔아홉 살.

휴대폰 알람을 끄고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욕실에서 입안을 헹구고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주방으로 나가 옥수수차를 한 컵 마시고, 하늘을 향해 짧은 기도를 올린다. 식구들이 먹을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그리고 출근 준비를 한다. 오늘 나는 집에서가 아닌 회사에서 직원과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을 예정이다. 나의 부탁으로 한 시간 일찍 출근할 당직 직원에게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로 고마움을 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 6시 40분이 되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선다. 식구들이 깰까 봐 조용히 집을 나와 공동 현관 밖으로 나오니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세상은 춥고 조용하다. 오늘 꼭 마무리지어야 할 업무가 있어서 어제 퇴근 무렵 당직 직원에게 한 시간만 업무를 하고 갈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약속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한다. 대신 아침에는 빨리 올 수 있으니 괜찮으면 내일(즉 오늘) 아침에 일찍 와서 업무를 보는 건 어떤지 나에게 물어주었다. 너무 고마워 지체 없이 그러겠노라고, 아침 7시 10분까지 출근하겠다고 약속을 해 두었다.

버스나 지하철이 아닌 자가 승용차로 출근하며 어둠과 아침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도로를 달린다. 7시에 문을 여는 커피점에 들려 샌드위치 두 개, 커피 두 잔을 사서 사무실로 향한다. 


1월의 아침 일곱 시는 아직 어둡다. 많이 캄캄하다.

신호 대기를 하고 있으니 회사명과 로고가 새겨진 몇 대의 통근 버스가 직원들을 태우기 위해 정차돼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7년 전, 스물두 살의 나는 출근하기 위해 집에서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을 지나 구포역에 내려 그곳에서 회사 통근버스로 갈아타고 근무지 김해로 갔다. 구포대교를 지나면서 낙동강을 바라보고, 어느새 고개를 옆으로 떨구었다가 제자리로 왔다 갔다 하며 잠들기가 일쑤여서 '통근버스 잠순이'로 통하기도 했다. 바빴지만 계절을 느낄 수 있었고, 힘들었지만 보람되고 뿌듯했다. 비록 만 5년이라는 기간 동안 근무하고 퇴사했지만 그 5년의 시간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소중하고 값진 세월임이 분명하다.


직장생활을 길어봐야 7,8년 정도하고 결혼하게 되면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28년째 잘 이어오고 있다. 이직을 하게 되면서 잠시 가지게 될 거라고 기대했던 휴식기도 없었다. 인수인계를 위해 일요일까지 출근해서 마무리하고 다음날 바로 지금 직장에서의 연수를 받았으니까 말이다.


가끔 도로가 막혀 예상보다 몇 분 늦게 구포역에 도착되면 어느새 구포대교로 올라가고 있는 통근버스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고, 추운 날 벌벌 떨며 통근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가 오면 따뜻함에 녹아들어 자리에 앉자마자 이내 곤히 잠들기도 했다.


2024년 1월 23일 아침 7시 3분.

27년 전의 치열하고, 반듯하고, 각지고, 때론 날이 서있는 내 모습을 본다.

스물두 살의 (알고 보면) 어수룩한 내가 통근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아직도 그때의 모습이 생생한 것은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사무실에 도착해서 직원에게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건넸다.

그리고 배려해 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당신 덕분에 오늘 내 소중한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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