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나의 부족한 점들을 떠올리며. 안될 거야. 나는 실패할 거야.라는 부정적인 틀. 그 틀 안에서 나의 기준을 맞추며. 그 생각에 나의 목표 나의 방향성을 정해가며 어떤 일을 도전할 때 일에 대한 확신보다 불신으로 나를 가두었다. 그렇게 점차 나는 정작 나라는 사람의 장점이 무엇인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놓치고 점점 망가져갔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생각이 많아 풀어헤쳐 나아갈 방법들을 잊은 채 엉망이 되어 버린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남들이 보기 그저 ”부정적인 “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을 누군가에게 꺼내게 되었을 때
그 불안을 이해해주는 사람보단 그 불안으로 인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원래 그런 사람으로 인식하며 점차 나아지려고 해도 색안경에 비췬 내 모습이 익숙한 사람들은 그런 척하는 모습에 불과했다. 사람의 인식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사실 그런 인식을 가지게 만든 본인에게 문제가 있지만
정작 본인은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남들에게는 엄격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기에
잘못된 방향을 선택하였음에도 다른 길 일 뿐이지. 잘 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합리화를 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그렇게 부족한 사람을 더욱 부족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인관 관계에서도 무의식은 크게 작용하는 원리다. 인간관계에서 평소에 가족. 친한 친구들에게 로부터
그 관계의 소중함. 목적성. 방향성을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되게 소수일 것이다.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박여있기에. 어떠한 계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잘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장 해 받고 주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무의식 속에서 우리의 뇌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나 자체로 인식하여 때로는 과한 감정이입과
참견을 하여 관계에 금을 내기도 한다. 가족의 단점 친구의 단점을 보게 되었을 때 그것을 나의 문제로 인식하여 뜯어고치려고 정도를 넘는 말과 행동들을 하게 될 때가 많고 그로 인해 감정이 격해지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인간관계는 늘 정답은 없고 문제만이 가득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현명한지 아닌지만이 남는다. 인간관계에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문제가 생겼을 때에 비로써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평소 자신이 형성해 놓은 관계를
크고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진심을 알게 되는 순간은 불화가 생겼을 때
비로써 그 사람의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되는 것 같다.
좋은 사람이었든 나쁜 사람이었든 인식은 평소의 모습보단 마지막의 모습에 비중을 두게 된다. 마지막 모습이 좋은 모습이었다면 그 사람은 정작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도 좋은 사람“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비칠 것이고. 나쁜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했다면 그 사람이 평소에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저 나에게 해를 가한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단순해서 가장 최근의 모습으로 사람을 인식하고 그 모습에 프레임을 씌우며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 나 자신은 알 수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결국 인간성을 정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기에 누군가에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은 가장 피곤하고 바보 같은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인간은 사회화의 동물이다.
즉 사회에서 선호는 선하는 마음. 행동. 표정들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 보다 타인의 기준에 행동 하고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