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태어나면서 누구 잘하는 것을 지니고 태어나게 된다. 신체능력. 좋은 머리 미적 감각 등 나는 어릴 적부터 남들에 비해 미적감각이 뛰어나다는 소리 많이 들었다. 음악을 들으면 그 마음 안에서 들어가는 악기가 어떤 것 인지. 그 음악의 탬포는 몇 비피엠이라던지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예술을 하지 않는 사람 기준에서
그런 것들을 일일이 생각하고 듣는 사람은 생각보다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음악의 가사보다. 그 음악이 만들어진 악기 피아노의 단조 기타의 코드 베이스 드럼의 루틴들이 먼저 들려왔다. 그렇기에 나는 음악에 대해서 꽤나 재능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음악을 다루는 엔지니어
프로듀서가 되려 다짐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다양한 음악들을 만들어가며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해 갔다.
각종 오디션부터 영상 테이프 유명 디랙터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하지만 인생은 정말이지 하치 앞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많은 영상을 보내고 다양한 음악 장르를 만들어 낸 내 작품들은 대중에 평가에 정말 아무것도 아닌 특색 없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정말 연습 곡으로 취급되었으니. 처음엔 조금 좌절했다.
여태까지 어디 가서 음악이 이야기가 나오는 나를 안다는 사람들은 모두 나보고 언제 데뷔하냐고 할 정도로
실력 있는 사람으로 여겨 주었니 내가 이렇게 매몰차게 기획사에 거절 연락을 받게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처음이니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곡 내가 추구하는 음악을 만들어 다시 한번 기회를
기다리며 음악을 작업에 몰두했다. 그렇게 쌓인 음악들은 몆백 개가 넘어 컴퓨터 용량을 다 집어삼켰다.
결과는 어땠냐고 결국 내 음악 나만 듣는 아무런 의미 없는 나만 아는 곡들로만의 가치로 여겨졌다.
그렇기 실패하다 보니 시작 꽤 흘러 주위 친구들은 하나둘씩 대학에 졸업하고 직장을 잡아가며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럼 음악으로 이름 못 알린 나는 나한테 떳떳하지 못한 사람인가?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과정과 노력보단 결과물 성공한 사례에만 귀 기울이지 과정에 대해선 극히 소수가 아니면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남들 눈에는 자기만의 이상적인 세계에 빠져 꿈만 꾸는 사람으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주위 친구들은 그때 내가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의 반응과는 매우 다르다. 내가 음악의 재능 내 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기타 연주를 해달라고 했던 그런 친구들은 이젠 언제까지 꿈만 좇다가 넘어져서 다시 제자리 걸음 할 건데?"라는 질문을 한다.
마치 내가 잘못된 것처럼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중인데 말이다. 세상은 꿈을 가지라 말한다.
하지만 정작 꿈을 가지고 실현에 옮겼을 때는 어느 정도 현실과 꿈을 타협하라고 한다. 그러다 꿈을 좇다 보면
세상은 꿈에 빠져사는 건 어린아이와 같다며 그만 현실을 보고 당장 필요한 돈이 되는 것을 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그저 한심한 몽상가라는 말인가?.
이것이 인생의 딜레마가 되어 스스로를 괴롭히고 그것을 견디 못하면 위험해진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렇기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내가 만들 노래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알고리즘을 통해서 조회수가 꽤 올라 사람들의 입 소문을 타고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많이 정말 많이
생겼다. 이젠 내 이름을 걸고 만든 노래가 내 통장에 숫자를 꽂아준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선 끊어졌던
연락들이 줄지어 오고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없었던 사람들 내가 힘들 때 외면하며 비난했던 사람들이
몰려왔다.
꿈을 좇다 보면 내 곁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게 된다. 그 사람들은 내가 어떤 모습이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습을 갖춘 내가 되어있어야 관계의 이유가 생기는 것이었다. 이것이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이다.
결국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필요에 의해 관계가 형성된다. 일단 친구의 경우 심심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관계 이처럼 지금에게 연락 오는 이 사람들은 결국 돈에 엮인 목적을 가지고
연락하는 사람들이다.
과거의 나는 이 사람들에게 그저 한낱 한심한 사람이 되었을까. 그저 꿈이라고 칭하지만 결국 고집에
미래 계획 없이 사는 사람처럼 비추어졌을까. 그럼 현재 나는 이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가까운 관계일수록 실수하고 실망하고 분노한다. 그렇기에 가까운 사이일수록 멀리하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이 말이 그렇게 살면 결국 혼자가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는 중에 많이 느낄 것이다. 어색한 사람에게 어려워서 우호적으로 대하면
그 사람 또한 나에게 우호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기에 실수하게 되면
왜 그랬을까 보단 그냥 그런 사람인 걸 이제 알았다라며. 선을 긋기에 그런 불상사를 예방하려
우호적으로 대한다.
하지만 방면에 가까운 사이일 경우 아 원래 그런 애니까 이해하는 것이 아닌 포기하게 되고
그 관계가 어느덧 손을 놓아지게 된다. 그렇기에 가까운 사이일수록 멀리하고 나의 꿈과 계획을
어느 정도는 숨기며 적당한 선을 그린 채 살아가는 중이다. 이렇게 살다 보니 사람들과의
트러블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꿈을 이루었을 때 다른 누군가가 꿈을 쫓아가는 모습을 보고도 나는 크게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알아서 사람들은 나를 응원해 준 사람으로 인지한다. 인생에 오지랖은 타인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먼저 오지랖 피우며 나 스스로 인생에 관여했을 때 가장 의미 있는 것 같다. 결국 남는 건 나 자신 하나뿐이니. 말이다.
이상적인 관계는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 등'을 짚어주고 다양한 길을 알려주는 그런 관계를 찾겠지만 사실
이성적인 관계는 그저 자신의 선택이나 가치관에 관여하지 않고 그저 그 사람의 노력만을 알아주고 그 결과가 긍정적인 결과이든 부정적인 결과이든 그냥 수고했다. 짧고 굵은 말 한마디를 해주는 관계가 아닐까라는 생각 한다.
그 이유는 결국 그 선택은 나 자신이 한 거이고 상대방에게 그 선택을 하고 도움받은 것은 사실 없는 것이
대부분일 테니 말이다. 물론 이야길 들어준 것이 있을지도 모르는다. 하지만 그 선택에 진가를 발휘했을 때는
오로지 선택한 나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이 들어가 그 결과를 만들어 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