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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Apr 08. 2024

내가 크루즈를 좋아하는 이유- 마지막, 네 번째

마음껏 누리는 여유와 사교 그리고 낭만이 있기 때문이다.

크루즈 여행 12일 동안 크루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여유와 함께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는 물론 누릴 수 있는 유흥을 충분히 즐겼다.

물론 서양인들만큼은 아니다. ㅎㅎㅎ


해가 쨍쨍한 날에는 나는 아침 운동과 식사를 마치면  대부분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책을 읽고 덱의 시원한 그늘로 들어가 누워있지만 서양인들은 나와는 반대로 해를 즐기기 위해 수영복 차림으로 햇빛을 받으며 선베드에 드러눕는다.

멋진 바다 풍경과 함께 아늑한 분위기의 도서관에서는 크루즈에서 지내는 일들을 조목조목 기록도 하고 한국에서 가지고 갔던 책들을 읽기도 했으며 영화도 보곤 했다.

때때로 남편과 sodoku라는 숫자 게임을 하기도 했는데 소도쿠 게임을 할 때면 내가 살면서 그동안 숫자에 이렇게 목을 맨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게임.

처음 해보는 게임(sodoku)이었는데 수학에 달인(?)인 남편을 내가 이겼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 ㅎㅎㅎ

바다가 보이는 조용하고 아늑한 도서관에서의 시간은 쏜살같다.

게임룸


때때로 조금이라도 구름이 낀 날이면 우리는 바로 수영장 덱으로 올라가 선베드에 누워 시간을 보낸다.

칵테일과 약간의 스낵이 올려져 있는 테이블을 옆에 두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기도 하며 때론 영화와 함께 하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한두 시간은 정말 순식간이다.

그러다가 시원한 바람을 못 이겨 잠이라도 들면 시간은 훌쩍이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자연과 주변의 환경에 나를 맞기는 게 여행다운 여행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간혹 크루즈 여행 중에도 여전히 마음과 몸이 바쁜 사람을 볼 수 있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데 맞은편에 앉은 중국인 부부로 보이는 그들의 노트북 화면에는 주식 차트가 띄워져 있고 서로 심각하게 얘기를 하는데 얼굴을 붉히며 얘기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복잡하고 무거운 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휴가를 휴가답게 즐기지 못하는 그들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오후가 되면 자주 13층 조깅트랙이 있는 야외 운동 시설에도 간다.

골프 연습장도 있고 서서하는 체스장도 있으며 탁구장도 있다. 농구를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심지어는 크루즈에서 농구 대회도 연다.

나는 오랫동안 놓고 있었던 골프채를 오랜만에 휘두르려니 몸도 굳고 정말 공이 안 맞는데 남편은 제법 맞는다.

남편과 나는 본격적으로 몰입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릴 보며 응원을 해 주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더 공이 안 맞는다. ㅠㅠㅠ

남편은 상의를 벗기 시작한다. 헐~~

어느새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식이 되어버렸다.

탁구를 할 때는 더 심하다.

나도 겉옷을 벗고 소매를 걷어 부치고 삼십 여분 탁구를 치면 금세 온몸이 땀에 젖는다.

그런 후에는 샤워를 하고 스낵바에 들러 한 잔의 맥주를 마시면 꿀 맛이다.

이렇게 보내는 오후의 여유가 언제 쉽게 다시 찾아올까 싶다.



대화를 자주 나눴던 여행객들 중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다.

밤마다 수영을 했던 우리 부부는 수영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뉴욕에서 온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Bobby라는 남자와 자주 얘기를 나누곤 했다.

흑인이며 휴스턴에서 미용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는 그는 무척 유머가 있고 호탕한 사람이었다.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말솜씨도 아주 뛰어나다.(상대방에 대한 칭찬이 과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또한 칵테일을 잘 만들고 음식을 잘 만든다며 자랑도 늘어놓는다.

아직 한국에는 와본 적이 없지만 곧 방문을 할 예정이라는 그는 심지어 크루즈 여행을 쉰여섯 번이나 했다고 한다.

물론 그가 살고 있는 미국은 크루즈를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수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40대의 나이에 크루즈 여행을 그렇게나 많이 했다니 일 년 중 크루즈에 있는 날이 더 많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의 다음 여행은 인도의 Goa에 갈 예정이라고 하면서 고아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

우리도 몇 년 전 고아를 방문했는데 그곳에 대한 인상은 큰 감명이 없었다고 하자 계획을 변경해 그리스(Greece)로 가야겠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성소수자(Queer)였는데 자연스럽게 그의 남편이라며 또 한 사람의 흑인 남성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헐~~!

그 순간 나에게 오는 충격이란...

물론 나는 성소수자에 대해 어떤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진 않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고 쉽게 동성의 배우자를 소개받는 상황이 되니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연속으로 다가온 문화적 충격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여동생과 함께 온 여의사 역시 아침에 수영장에서 자주 만나 얘기를 했다.

나와 비슷한 50대 후반이라 더 얘기가 통했나 보다.

그분은 크루즈 여행이 처음인데 무척 매력이 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또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카자흐스탄에는 한국인들이 꽤 많이 살고 있고 함께 온 여동생은 한국말을 할 줄 안다고 했다.

무척 겸손한 분인 듯 영어로 말하는 게 익숙지 않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한다.

대화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데 말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수영을 좋아하고 내 나이 또래의 여성이라 볼 때마다 즐거운 대화가 이어져 무척 기분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온 Austin은 그가 사는 빅토리아의 날씨가 지금은 너무 추워 따뜻한 곳을 찾아왔다고 했는데 우리를 보며 아침마다 수영을 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다며 엄지를 척하고 내세운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두어 시간을 물에 뜬 채 걸어 다니는 분인데 볼 때마다 오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물에서 떠 다니는 그가 무척 신기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분이 수영장에 없는 날에는 궁금하기까지 했다.


일본인 아내와 결혼을 하고 현재 도쿄에 살고 있는 Paul이라던 남성은 무려 6개의 언어를 구사했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심지어는 중국어까지 한다.

한국에 대해서도 많은 걸 알고 있는 그는 한국말은 TV를 통해 배웠다고 했는데 문장의 끝 말이 모두 존대어이다. ㅎㅎㅎ

하지만 무려 20년이 지났는데도 한국말을 잊지 않고 할 수 있어 간단한 대화는 될 정도이니 정말 언어에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이렇게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인 크루즈에서는 매일 식사 때나 카페에서 그리고 운동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을 만나 흥미로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크루즈 여행이 흥미롭다.




저녁 식사 후에는 공연장에서 다양한 공연을 관람한다.

몇 년 전 탔던 크루즈 공연과 비교가 되기도 했는데 화려함과 다양함에서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독특한 음색을 가진 솔로 가수들의 공연과 Rock band공연, 트럼펫 연주, 댄스와 노래가 곁들인 무대, 마술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지만 때로는 중복된 장르도 있고 같은 공연자가 다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약 50분 정도의 공연을 관람한 후에도 우리는 방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또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카페와 바 들이다.

공연장이 아니더라도 바와 카페에서는 다양한 공연(노래와 연주가 대부분)들이 선보이는데 칵테일과 위스키를 주문해 테이블에 앉아 분위기를 즐긴다.

한국에서도 잘 느끼지 못했던 바와 카페의 분위기를 크루즈 여행에서 만끽하게 된다.


때로는 왠지 크루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통하는 듯한 오묘한 분위기를 느끼기도 한다.

TV로 중계되는 호주 오픈 테니스 경기를 보며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흥분하며 얘기를 하기도 하고 바의 자그마한 무대에서 연주하는 노래와 음악에 맞춰 함께 따라 부르며 옛 추억에 젖기도 했다.

크루즈 이용객들 80%가 넘게 나이가 지긋한 서양인들이기 때문에 1960~90년대 유행했던 곡들이 주로 불려지고 연주된다.

나도 지긋한(?) 나이가 들었는지 연주되는 노래들이 듣기에 편안하고 따라 부르기 쉽다. ㅎㅎㅎ

그들은 무대의 크기에 상관없이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와 연주가 시작되면 부부들이 스스럼없이 무대로 나와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데 보기가 참 좋다.

남편은 우리도 나가자며 손을 잡지만 나는 아직은 어색하다.

이젠 커플 댄스도 배워야 하나 싶다.  ㅎㅎㅎ


크루즈는 밤이 되면 멋진 슈트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과 손에는 칵테일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여기저기 bar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술잔을 들고 서서 이야기하거나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크루즈는 밤이 되면 화려한 사교의 장소로 변한다.

낮 동안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한 순간에 털어놓으려는 듯 끼리끼리 모여 웃으며 대화를 한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재밌게 신나게 하는지 궁금해진다.

신기한 건 카페나 바에 모여 얘기하는 사람들 모두 그들의 손에는 휴대전화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로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대화를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이 정겹기까지 하다.


자주 우리는 대화 중에도 테이블 위에 휴대전화를 올려놓고 얘기를 주고받는 사람들도 볼 수 있는데 그런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알면서도 곧 잘 실수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 크루즈에서는 바쁜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나도, 남편도 휴대전화 없이 지내려니 처음엔 궁금하기도 불안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르니 이젠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휴대전화 없는 이런 생활이 오히려 알차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러다 보니 휴대전화 없는 크루즈 생활은 나에게 온전히 빠져 사는 기분이 든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유가 있고 모든 걸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결국 크루즈 여행을 위한 필수 준비물은 마음껏 여유를 누리며 즐기려는 마음과 몸 뿐이다.


Bar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분위기에 젖어들면 어느새 나의 몸도 마음도 취한다. 

북적이는 크루즈 내를 벗어나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덱으로 올라가 본다.

한 낮엔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크루즈 옥상은 밤이 되자 적막함과 아늑함이 함께 있는 고즈넉함으로 다가온다.

남편과 함께 갑판(deck)을 잠시 걷는다.

한 밤의 크루즈

지금은 휴가 중이고 이렇게 우리는 크루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여유와 분위기로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난 크루즈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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