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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르~ 파르르!

영양제가 어디 있더라?

by 까만곰

"아빠, 엄마는 그냥 주무시게 놔두는 게 좋겠죠?"

"우리가 서프라이즈로 저녁 식사를 준비해 드려요."

멀리서 들려오는 딸의 명랑한 목소리와 달그락 거리는 조리도구 소리에 눈을 떴다.

'벌써 해가 졌나? 내가 얼마나 잔 거지?'


오늘 아침, 교실에서 들어서서 아이들에게 말을 하는 순간부터 진동이 느껴졌다.

입 밖으로 한마디 한마디 튀어나올 때마다 '파르르'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큰 소리로 힘을 주어 말하면 떨림은 더 커졌다.

'어디가 떨리는 거지?'

한참 수업을 하다가 파르르 떨리는 곳을 찾았다. 왼쪽 눈꺼풀!


말을 할 때마다 눈이 떨리니 나중엔 머리도 윙윙 울리는 것 같았다. 말을 최대한 줄이자 마음먹었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평소보다 말할 일이 많았다. 잘 지내던 아이들끼리 다툼이 일어나고, 학부모 상담에 새로운 업무조율까지. 정신을 차리니 5시가 훌쩍 넘었다.


이젠 아무 말도 안 해도 파르르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퇴근길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도 함께 떨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근육의 떨림에 방치해 두었던 영양제를 떠올렸다.

'아연인가? 마그네슘인가? 분명 영양제를 먹으면 눈떨림이 나아진다고 들은 것 같은데. 선물 받은 눈 영양제와 종합비타민제도 어디 구석에 잘 넣어 뒀는데. 어디다 뒀더라?'

그동안 귀찮고 바쁘다는 핑계로 챙겨 먹지 않았는데, 후회가 됐다. 진작 좀 먹을 걸.


집에 들어오자마자 종합영양제를 찾아서 입에 털어 넣었다.

"딸, 엄마 30분만 잘게. 눈이 너무 아파."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떨림.

'파르르 파르르'

미세한 진동과 함께 창밖으로 들려오는 자동차소리, 아이들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었다. 잠이 든 건지 눈만 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방 문 밖에서 들려오는 딸과 남편의 대화 소리가 점점 커지며 코를 자극하는 매콤한 냄새가 기분 좋게 흘러왔다.


"제가 어깨너머로 배웠거든요. 저도 요리 잘해요."

"아빠, 우리 음악 들으면서 할까요?'

소다팝 음악에 맞춰 프라이팬에서 김치를 볶는 소리가 클래식 연주처럼 평온하게 들려오다니.


평소에 웬만하면 주방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이 움직여준 것도, 엄마 잔다고 딸이 깜짝 요리를 준비해 준 것도 감사한 일이다. 파르르 떨리는 눈 덕분에 남이 해준 밥도 먹고 설거지도 면제! 고마운 가족을 위해서라도 내일부턴 잘 챙겨 먹어야겠다.


"영양제들아, 그동안 방치해서 미안해. 내일부턴 잘 챙겨 먹을게"


김치에 대한 새로운 해석! 오묘한 맛과 정성이 어우러진 부녀의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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