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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유진 Feb 06. 2022

La vie en France - 원치않은 가족

02. 크리스마스이브 아침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다.

창문 길이만 한 2m 돼 보이는 이 기다랗고 큰 창문에는 커튼이 없었다.

그리고 '이정도면 아침이다'를 알려주는 우울 꾸물한 빛이 들어왔다.

'프랑스 시골이라 해서 날씨가 좋은 건 아니구나'

'왠지 시골에 가면 공기도 좋고 날씨도 좋을 것 같았는데'

12월 내내 회색빛 파리에서 지내며 나는 춥긴 춥더라도 해가 쨍한 한국 겨울 날씨가 그리웠다.

아니면 1년에 한 번, 이맘때쯤 가는 한국을 코로나때문에 못가게 되서 더 그리운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줄리앙은 옆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나도 좀 더 잘까?'

두 달 전 팍스로 반쪽자리 첫째 며느리가 되서 그런지 한국처럼 시댁에 와서 명절 음식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다.

오히려 명절 준비는 뒤로 하고 여행 온 관광객처럼 오전에만 서는 장과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서둘러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줄리앙도 몇 번씩 깨웠다.

안 일어나길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수평으로 맞춰진 창문 손잡이를 90도 방향으로 꺽자 약간의 철거덩 소리와 함께 그 큰 창문 문살 두 개가 내 몸 쪽으로 와서 양옆으로 활짝 벌어졌다.

« on va au marché, lève toi! » (시장에 가보자, 일어나!)

시어머님도 줄리앙도 예전부터 리모쥬 시장에 가면 맛있는 게 많이 있다고 했다.

줄리앙에게 빨리 준비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한끝에 아침 10시가 다 되어서 1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1층에 내려가니 여러 종류의 빵들과 여러 색깔의 주스, 쨈들이 식탁에 올려져 있었다.

시어머님은 록스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시키고 오셨다면서 우리에게 좋아하는 걸로 골라서 아침식사를 하라고 하셨다.

벌써 10시여서 아침을 먹고 나가면 장이 끝날까 걱정 됐다. 그래도 먹으라고 이렇게 다 꺼내놓으셨는데 어떡하지 하며 줄리앙을 봤다.

줄리앙은 벌써 자리를 잡고 커피를 내리려 하고 있었다.

'그래 배고플 수도 있으니 먹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리고 무얼 먹을까 자세히 보니 바게트보다 속 밀도가 좀 더 촘촘하게 채워진 직사각형 모양의 pain pavé도 있었고 브리오슈같이 약간 달콤하면서 부드러운빵, 아니면 마들렌같이 아침에 먹기에는 부담스럽게 달콤한 케이크류의 빵도 있었다.

그중에서 줄리앙은 브리오슈를 집어 들어 열심히 패션후르츠와 키위를 섞었다는 잼을 바르기 시작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대게 아침식사를 달게했고, 줄리앙은 심지어 아침식사로 비스킷 위에 초콜릿이 레어이드 된 빈츠같은 초콜릿 쿠키 먹는 걸 좋아했다.

'한국에서는 아침에 빵을 먹더라도 계란 토스트같은 솔티한걸 먹는데'

나는 그냥 브리오슈를 조금 뜯어서 먹었다.  

그리 패션후르츠와 키위 조합의 쨈이 궁금해서 줄리앙 빵을 한 입 베어 먹었다.

시어머님께 이 쨈이 맛있다고 하니 리모쥬 시장에서 사온 수제 쨈이라고 하신다.

 다시 우리가 먹는 걸 지켜보시는 시어머님의 시선에, 혹시 명절 음식 준비하는데 부족한 게 있으면 시장 가서 사오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벌써 다 준비됐다면서 필요한 게 없다고 하신다.

크리스마스 당일 점심때는 친가가 모이는데 그때 먹을 음식들은 다 주문해서 받아놓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 저녁식사 때 먹을 버섯은 줄리앙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직접 캔 것을 가지고 오시기로 하셨다면서.

줄리앙을 의식해서 말씀하신 건지 줄리앙은 버섯 이야기에 물깨 박수를 쳤다.

그럼 오늘 점심때 먹을 거라도 사 올까요? 했더니 간단하게 먹을 건데 모가 좋을까? 하시길래 저번에 파리에 가지고 와주셔서 먹었던 리무장 고기빵(pâté du limousin)을 생각했다.

이 지방에서만 하는 오븐에 구운 빵인데 말이 빵이지 사실 고기 요리나 다름없는 게 그 빵을 썰어 보면 빵은 한 0.5cm밖에 되지 않고 빵 벽면 가득 소고기가 들어있다.

리무장 고기빵을 공수해오겠다는 명분을 가지고 시댁을 나섰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여행 시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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