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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연 Jun 02. 2022

안동 방문기

큰 숙제 해결하기...

아버님의 오랜 바람이셨던 아들 며느리와 안동 가기 숙원 사업이 평일날 시간 내기가 어려운 탓에 5월의 주말 오전 안동으로 떠나게 되었다.

가는 길은 초반부터 막혀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뒷자리에 앉으신 아버님 어머님이 눈치못채게

터져 나오는 한숨을 삼키고 일 년 중 가장 파릇하니 연둣빛으로 뒤덮인 바깥 풍경을 보며 좋은 계절 떠나는 여행이라고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뒷자리에 앉으신 어머님 표정을 얼핏 보니  내 마음과는 달리 설렘과 즐거움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유치원 나이일 때는 여러 번 모시고 가족 여행을 다녔는데 아이들이 크고 나서는 함께하는 여행의 기회가 드물었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하는 안동 가는 길이 어머님께는 목적지가 어디라도 상관없는 순수한 여행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좋으신 거다. 종갓집을 방문하고, 종친 어른을 뵙고, 안동 태사묘를 방문하고 철저히 아버님의 스케줄대로 짜인 여행일지라도... 어머님의 평온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원치 않는 안동 여행에 짜증스러운 마음뿐이었는데 생각을 달리 먹어보기로 했다. 1박 2일 동안 여행의 목적은 잊고 어머님과 이 계절을 사진으로 남기고 진짜 여행처럼 즐겨보기로 물론 쉽지 않겠지만 서로를 살뜰히 챙기고 주제 없는 사소한 대화를 즐기는 흔치 않은 고부 관계라 가능하리라...

주말 한창 붐비는 휴게소에서 센스 있게 돌솥밥을 고른 나의 잘못된 메뉴 선택으로 50분을 허비하고 그렇게 오후 2시 넘어서 안동 종갓집 잘 꾸며진 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도착 전까지는 경기 인근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전원주택의 아담한 앞마당을 생각했는데 뒷산까지 이어진 정원은 봄꽃들이 지고 난 후의 풍경인데도 십수 년을 버틴 오래된 이팝나무와 소나무가 주는 당당함과 오랜 시간이 남긴 소박하지만 자연미 넘치는 모습에 여든을 넘기신 종가 어르신의 손끝에서 다듬어진 고택의 본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 종일 구부정한 허리로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고택을 손보고 종갓집의 존재를 알리려 매일을 준비했을 것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얼굴도 희미한 친척들이 한 번쯤은 생각 속에 떠올리고 발길을 붙잡고 싶은 그런 존재로 알리고 싶은 마음이 전부이실 것이다. 본인이 원한 삶이 아닐지라도 숙명처럼 짊어지고 여든이 넘으신 나이에도 고택을 지키고 멀리서 나들이 삼아 온 마음이 미안할 정도로 자부심과 깊은 애정이 보이신다. 일 년에 10번 이상의 제사를 치르고 손님상을 내느라 본인 가족과의 보통의 일상이나 추억은 분명 뒷전 일 수밖에 없었던 종부인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전통을 지키고 옛 모습을 후대에 알리는 일은 분명 가치 있은 일일 것이다. 작은 범위의 가족관계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과거를 어렴풋히 느끼고 세기를 거슬러 전설처럼 전해지는 애국충정에 앞섰던 선조의 이야기나 박물관에 장식장 한편을 차지한 고서적의 지은이로 이름 석자를 알린 학자의 이야기를 잠깐 나누며 종가 어르신이 충분한 역할을 하실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 드렸다. 저녁 시간이 되어 간단히 밖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그날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긴장감과 부담감이 사라지고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코로나 시작 전부터 뵐 때마다 온 식구 안동 가자고 노래를 부르셨던 아버님의 부탁을 해결했다는 개운함에 남은 시간을 여행자로 즐겨볼 수 있을 듯싶다. 나와 같은 기분이신지 어머님께서도 사진 찍는데 거절 없이 포즈를 잡아주신다. 내일은 크림 라테로 유명한 예천군 카페로 모시고 가야겠다. 며느리와 커피타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어머님과의 동행 덕에  웃는 얼굴로 좋은 마음으로 안동 여행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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