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작별인사]를 읽으며
인공지능이 극도로 발전한 세상 속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은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살아갈까? 인류가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은 실제 어떤 모습과 형태로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까? 우리는 어떠한 자세와 태도로 그 시대를 맞이해야 할까? 그리하여 어떻게 우리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우리의 고유 인간성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직 인공지능의 발전이 충분한 성과를 이루기도 한참 전인 8-90년대부터 수많은 SF영화에서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미래 인류의 모습을 그려내고는 했다. 그 주제에서 가장 히트를 쳤던 영화인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만 떠올려보더라도 인공지능의 시대 속에서 인류가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발전시켜 왔던 인공지능 로봇에 역으로 잠식당하고 위협을 겪는 모습들을 그려내곤 했는데, 이는 단순히 오락 영화로의 재미 목적을 떠나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을 표출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인공지능의 발전은 단순히 소수 미치광이 과학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연구 과정이 아니다. 단순히 ‘인간과 더더욱 가까운 모습의 기계를 만들 것’이라는 광기의 결과가 아니라, 정말 우리 인류 전체의 삶의 질을 올려줄 수 있는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발전 과정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시대에 대해 어떠한 미래학자가 걱정을 표하고 어떠한 예술가가 인공지능의 시대 속 인간성의 종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전인류가 성장하고 진화하는 과정이며 결국 그것은 우리에게 정말 큰 발전과 도움을 가져다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담론에서 그렇게 하고 있듯이, 인공지능이 극도로 발전한 세상이 우리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위협을 먼저 예상해 보고 그 위협으로부터 우리 인류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제도를 수립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아무리 인간과 가까운, 혹은 그 이상의 지능을 가진 기계가 만들어지더라도 절대 그것이 넘보지 못할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성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보호하고 발전시켜 나가 인공지능의 시대 속에서 인간도 충분한 ‘제 구실’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회라는 것은 본디 구성원 개개인이 제 역할을 하면서 상호작용하면서 살아가야 가장 갈등이 적을 수 있는 구조이고, 그것을 위해 우리 인간도 모든 것을 인공지능 기계에 기대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1인분의 역할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므로.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고도화된 인공지능도 넘보지 못할 절대적으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성질은 무엇일까? 이번 정독한 김영하 작가의 소설 [작별인사]의 아래 구절을 인용하며 그 고민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 호기심
"철아, 인간은 그렇게 쉽게 지지 않아. 아직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의 작동 기전과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다. 결과로는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인간은 그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거든. 우리는 감정과 이성을 조합해 판단을 내려. 반면 기계들은 오직 프로그램의 논리에 따라서만 움직여. 인간이 사라진다면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될 거야. 왜냐하면 왜 뭔가를 해야 하는지 모를 테니까. 그들은 우주를 탐험하지도 않을 거고, 외계의 존재와 소통하지도 않을 거야. 왜 그래야 하는지 전혀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지. 오직 인간만이 호기심과 욕망, 신념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그들과 교류하려 할 거야.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래야 그 결정들을 바탕으로 발전을 할 수가 있는 거야."
이 소설에서는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욕망’을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로 기술한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학습하고 더더욱 빠르게 해답과 정답을 찾아나갈 수 있을지라도, 인공지능 스스로는 인간처럼 ‘질문’을 던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철학자들이 밤하늘은 왜 검은색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천문학이 발전해 왔던 것처럼, 인간은 순수한 궁금증을 바탕으로 새로운 학문과 기술의 발전을 위한 실마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있는 반면, 인공지능은 밤하늘이 검은색인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아무리 1부터 99까지 연산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획기적으로 빠르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0부터 1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창조성이 오로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성질인 것이다.
작년 초 한창 Chat GPT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열렬한 호응을 얻기 시작할 때 했던 고민이 있다. Chat GPT와 생성형 AI가 이렇게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기술의 발전을 이루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대체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어떤 형태의 일자리가 남아있을까. 절대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술의 영역마저 압도적인 ‘모방’의 힘을 통해 창조성이 없음에도 마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처럼 수많은 창조적인 복사본을 인공지능이 찍어내는 것을 보면서 진심으로 위기감이 느껴졌다. 그때 내렸던 결론은, 생성형 AI의 발전에 세 가지 단계가 있고,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하여 답을 내리는 단계, 그 학습을 통해 인사이트를 추출하는 단계,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가치판단을 내리는 단계, 그 단계 중 생성형 AI가 지금 도달한 단계는 첫 번째 단계인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하여 답을 내리는 단계이니, 나는 지금까지와 같이 경쟁력이 덜한 ‘인간으로서’ 첫 단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빨리 두 번째 단계인 인사이트를 추출하는 단계 혹은 세 번째 단계인 가치판단을 내리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더더욱 빠르게, 인공지능에 대체되기 전에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작별인사]에서 정의한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면 내가 내렸던 이 결론도 결국 단기적인 관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생성형 AI의 발전의 단계를 고려하여 보다 더 빠르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언젠가는 대체될 것을 조금 더 시간을 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본질적’으로 다른 창조성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창조성이라 함은 단순히 예술의 영역이 아닌, 인공지능도 계속해서 ‘창조적인 복사본’을 찍어낼 것이기 때문에, 0부터 1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힘과 그것의 근간이 되는 호기심일 것이다. 그러한 창조성만이 인공지능 시대 속에서도 인간성을 지켜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것이고, 인공지능이라고 하는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가장 획기적인 기계를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을 가지고 나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어떠한 철학자가 인공지능 시대를 예측하면서 했던 말이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통해 우리 인류는 마치 다시 한번 로마시대로 돌아간 것과 같은 삶을 살 것이라고. 거의 모든 일자리는 마치 로마시대의 노예처럼 인공지능 로봇이 대신할 것이고 인간은 일을 일절 하지 않고 기본소득을 통해 향락을 즐기는 삶을 즐기게 될 것이라고. 언뜻 너무나도 행복하고 편안한 삶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래의 [작별인사] 마지막 결론을 인용하며 그 시대가 도래하기 전 인류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인공지능이 발달한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멸종할까
인간세계가 끝나게 된 것은 SF 영화에서처럼 우리 인공지능이 인간을 학살하거나 외계 생명체가 숙주로 삼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점점 더 우리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우리 없이는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뇌에 지속적으로 엄청난 쾌락을 제공하였고,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번거로운 번식의 충동과 압력에서 해방되어 일종의 환각 상태, 가상세계에서 살아갔다. 오래전 중국의 도가에서 꿈꾸었던 삶이 인간에게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신선이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멸종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