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도시들

파리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여러 도시 계획의 결과물들을 바라보며

by Aaron

작년 이맘때쯤 한 직장 동료와 커피를 마시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꿈에 대해 듣고 매우 흥미로웠던 적이 있다. 공대 출신으로 글로벌 테크 기업 엔지니어 출신이자 이직 후 세일즈로 일하고 하고 있는 그의 꿈은 정말 쌩둥 맞게도 어떠한 '도시 계획'의 일원으로서 보다 나은 도시를 만드는 것에 일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 고민해 보았는데, 그러한 여러 갈래 일 중에서 가장 강력한 방법이 도시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향이기에 흥미롭게 들렸고 짧은 대화였지만 뇌리 한 편에 '도시 계획'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얼마 후 가족 여행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처가 식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유럽으로의 여행이 처음이셨다. 아는 만큼 더 보인다고 더 재미있게 첫 유럽 여행을 즐기실 수 있도록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파리와 바르셀로나의 역사와 몇 가지 랜드마크를 공부했는데, 그 공부를 하면서 예상치 못하게도 도시 계획의 결과물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의 모습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853년 오스만 시장이 취임하기 이전의 파리의 모습은 지금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좁은 도로들이 미로처럼 얽혀있었고 루브르궁과 같은 건축물들도 허름한 건물들에 둘러싸여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뽐내지 못했다고 한다. 1889년 만국 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에펠탑뿐만 아니라, 개선문부터 이어지는 쭉 뻗어진 도로들과 그 주변으로 5층 높이 건물들이 수평을 맞추어 정렬해 있는 모습들은 모두 오스만 시장의 '도시 뚫기'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오스만 시장은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도시의 기반 시설부터 도로 체계나 미관 등을 정비했고, 특히나 건물들 사이로 쭉 뻗은 길을 통해 주요 지역에서 어디에서나 보더라도 에펠탑이 보일 수 있도록 하는 도시 계획을 통해 지금의 아름다운 파리 모습을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기존 거주민들의 불편이나 과도한 공사 비용 등 여러 비판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파리가 현재까지도 가장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수도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은 위대한 도시 계획의 업적일 것이다.

스크린샷 2024-09-29 오후 4.16.19.png 개선문을 중심으로 쭉 뻗어진 파리의 도로들과 그 양 옆으로 늘어선 같은 높이의 건물들


천재 건축가 가우디로 유명한 바르셀로나도 도시 계획의 결과물 중 하나로 다가왔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처음 느꼈던 인상은 도로가 끝을 모르게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다는 것이었고 그 모습을 통해 굉장히 정돈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가우디 주요 건축물인 까사 바트요나 까사 밀라도 이렇게 곧게 뻗은 길에 위치해 있었고, 그 길을 따라 내려가면 카탈루냐 광장에도 다다를 수 있었다. 이러한 직교 형태의 시가는 1860년대 이후 계획적으로 건설된 신시가지의 모습이라고 한다. 바르셀로나의 도시 전경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굉장히 흥미롭게 보이는데, 중심에 다소 어지럽고 복잡하게 발달해 있는 지역이 구시가지이고 그것을 둘러싸며 뻗어있는 직교 형태의 정돈된 지역들이 신시가지이다. 19세기 전후 무역과 산업이 발달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당시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만사나'라고 부르는 블록 형태의 건물 구조를 도시 확장을 위한 설계 공모를 통해 채택하여 도시 확장에 일괄 적용했다고 한다. 동일한 디자인으로 도시를 설계하여 통일성을 주고 비용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내부에는 중앙 정원 혹은 공원을 조성하여 시민들의 여가 공간까지 확보했다고 하니 꽤나 획기적인 도시 계획의 아이디어라고 할 만하다.

바르셀로나.jpeg 직사각형 모양으로 정렬된 바르셀로나 신시가지의 만사나


파리와 바르셀로나가 19세기의 성공적인 도시 계획 결과물이라면, 20세기의 대표적인 도시 계획 사례들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 그리고 그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두바이일 것이다. 19세기까지는 그 도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정돈하느냐, 즉 도시의 겉모습에 중점을 맞추었다면, 20세기 도시 계획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부분은 도시의 범주를 단순히 그 지역 시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 나아가서는 전 세계의 누구든 우리 도시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도시의 외관뿐만 아니라 정책적인 부분까지 도시 계획의 범위를 확장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와 두바이는 모두 그 지리적 특성을 활용하여 20세기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통해 급성장을 이루었던 도시들이다.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강력한 현금 흐름을 구축하는 동시에 세금 혜택을 통해 여러 글로벌 기업의 지역 본사를 유치하여 지속적으로 도시가 발전해 나가고, 동시에 여러 정책적인 부분들을 가다듬으며 기존의 시민들과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었다.


과거 말레이 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늪지대에 불과했던 싱가포르는 초대 총리이자 싱가포르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리콴유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주변 국가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선진적인 도시를 구축했다. 리콴유의 싱가포르는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며 현금 흐름을 구축하고, 세금 혜택을 통해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하는 것에서 나아가, 영어 공용화 정책을 통해 싱가포르 국민들을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는 데에까지 도시 계획 정책을 확장시켰다.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싱가포르는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의 로고가 새겨진 마천루들이 중심 비즈니스 지구의 황홀한 야경을 만들어내고 대표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샌즈 뒤로 자리한 항구에 끝없는 선박들의 행렬이 줄을 이루고 있다. 싱가포르에 위치한 여러 글로벌 기업들의 아태지역 본사에는 여러 나라의 글로벌 인재들이 모여들고 있고, 영어에 능통한 싱가포르 젊은 인재들 또한 그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해나가고 있다. 싱가포르는 특이하게도 가장 능력 있는 인재들이 도시 계획의 일원인 '공무원'이 되는 것을 장려하고 여러 동기부여 정책을 제공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초기의 굵직한 도시 계획 정책에서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 교육 정책, 이주 정책, 건설 정책 등 여러 분야에서 점진적인 개선을 이루어나가고 있기도 하다. 글로벌 인재들의 각축장에 치이는 자국민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국민 혹은 영주권자 중심의 이주 정책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나, 빠른 성장과 발전으로 인해 다소 인공적으로 변모한 도시를 개선하기 위해 이전과 동일한 디자인의 건물을 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건물의 일정 부분은 식물이 보여야만 허가를 내주는 건설 정책들이 그 사례들이다.

GP3YiDKXQAEOy9H.jpeg 주요 금융 회사들이 모여있는 싱가포르의 중심 비즈니스 지구


싱가포르와 비슷하면서도 굉장히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는 두바이 또한 그들만의 도시 계획을 통해 빠르게 선진화된 도시를 구축해 왔다. 처음 시작이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두바이는 19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진주 채취와 해양업을 주요 산업으로 하는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하지만 1960년대 석유가 발견되면서 두바이는 크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180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두바이를 통치하고 있는 알 막툼 왕조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두바이를 발전시켜 왔는데, 알 막툼 왕조는 단순히 두바이에서 생산되는 석유를 판매하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아부다비 등지에서 발견되는 모든 석유를 세계로 수출하는 거점의 역할을 하며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내었다. 아부다비 등지의 석유 수출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발전하는 동시에 서방 세계와 아랍, 나아가 동북아시아를 잇는 중간다리의 역할을 통해 무역과 금융의 중심이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고 이것을 통해 얻게 된 자본력을 바탕으로 현재의, 흡사 미래도시와 같은 두바이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에 이르렀다. 2021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초고층 빌딩 부르즈 할리파와 페르시아만을 따라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인공 섬들인 팜 아일랜드 등, 두바이는 무역과 금융 중심지에서도 나아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관광지로써도 그 매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부르즈 할리파의 전망대에 올라가면 볼 수 있는 두바이의 전경은, 두바이를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세련된 지하철의 모습과 부르즈 할리파 주변을 둘려 싼 초고층 빌딩들로 이루어진 미래 도시 모양의 신시가지 구역과 동시에 마치 아직까지 중세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만 같은 두바이의 구시가지 사막 지역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도시 계획을 통해 얼마큼이나 극단적으로 그 모습이 변모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시각 자료의 느낌을 준다.

스크린샷 2024-09-30 오후 3.27.32.png 미래 도시를 보는 것만 같은 두바이와 높이 우뚝 선 부르즈 할리파


물론 도시 계획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만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도시 계획의 결과물이라고 언급한 위의 네 개 도시들도 도시 계획의 진행 과정에서 보인 리더십의 독재와 그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잊혀가고 밀려져 나간 기존의 구성원들이 존재한다. 오스만 시장의 도시 뚫기가 있기 전 그곳에 거주했었을, 그리고 보금자리를 잃고 쫓겨나 지금은 잊힌 기존의 파리 시민들과 싱가포르가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 리콴유가 행해왔던 독재적인 정치 체제와 언론 통제 등의 사회 탄압의 모습들은 도시 계획이라는 거대한 움직임이 있을 때 발생하는 명암과 도시 계획의 이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두바이가 서방 세계와 아랍 자본의 혼합으로 쌓인 거품 경제라고 비판을 받는 것과 실제로 금융 위기와 메르스 등의 위기 때마다 도시의 존폐를 논할 정도로 휘청이는 모습을 보이는 보이는 것은 또한 도시 계획이 성공적이라 함이 단순히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인지에 대한 논쟁의 여지를 주기도 한다.


아직은 그러한 모든 부작용을 해소하는 올바른 도시 계획이란 무엇인가 혹은 앞으로의 도시 계획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19세기의 도시 계획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그 모습이 확장되어 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여러 국가와 도시들에서 보일 모습들 또한 주의 깊게 관찰하고자 한다. 직장 동료가 가지고 있던 '언젠가 도시 계획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꿈'을 나도 잠시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상상하며 언제가 나도 이 분야에 대해서도 나만의 견해와 가치관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언젠가 나만의 견해가 생기는 순간 다시 한번 도시 계획에 대한 글을 남기고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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