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자기 스스로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
"사실 아이한테 가장 중요한 건 행복이 아니라 '독립'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많은 분들이 '아이가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교육을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행복은 원래 우리 모두 알지만 되게 주관적이잖아요. 사람마다 행복이 다른데 내가 '아이가 행복하면 좋겠어' 하는 순간 자신의 행복이 들어갈 여지가 생길 수 있어요. 좋은 대학 가야지, 좋은 직장 가면 행복하겠지 그러니까 아이의 행복을 생각하는 순간 위험할 수가 있어요. 사실 인간만이 교육을 하는 게 아니고 동물도 교육을 시키거든요. 동물들의 교육의 목표는 아주 명확해요. 혼자 먹고살 수 있는 독립!"
"인간의 기본적인 목표도 아이가 혼자 스스로 경제적, 정신적 독립을 이루게 하는 게 첫 번째 목표가 되는 것이고, 행복은 이제 자기가 찾아야죠."
- 카이스트 김상욱 교수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어느 TV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행복하게 기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아이를 행복하게 기르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독립적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이 대답은 최근 자녀를 가지기로 계획한 뒤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 과연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로 다가왔다.
나는 내 아이가 나중에 커서 나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왔다. 정확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장점을 꼭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장점과 단점이 있듯이 나도 여러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장점 중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꽤나 자존감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나보다 더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겠지만, 나는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굳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보고 아쉬워하지도 않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정확히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이미 사전에서 정리된 답변도 있을 것이고 사람들이 저마다 정의하는 바도 각각 다를 것이다. 나는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스스로를 높일 수도 있고 낮출 수도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자책하지도 않고, 자신보다 자칫 위치가 낮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월감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무언가 잘한 일이 있을 때에는 스스로 충분히 칭찬해 줄 줄도 알고,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는 남에게 책임을 떠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잘못했다고 망설임 없이 나설 수도 있어야 한다. 자기 확신 속에서 모든 상황의 기준을 남이 아닌 자기 스스로로 설정하고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이유를 자기 스스로에서 찾는 것, 나는 그것이 바로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어보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잘잘못을 따지기 애매한 다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자. 이러한 경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거리낌 없이 먼저 사과를 할 것이다. 먼저 나서서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 것이다. 어려운 가정 상황이나 난처한 개인적인 일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며 적절한 선에서 조언을 구하거나 의견을 묻는 사람들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일 것이다. 스스로 확신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허물을 보여주는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것이고 자신에게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함께 입사한 동료나 후배가 먼저 좋은 평가를 받아 승진하는 것을 보며 진심을 담아 아낌없이 축하해 주는 것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고, 내가 열심히 일궈온 업무가 마침내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때 떳떳하게 주변 동료들에게 알리는 것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다.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과한 애정을 보이는 자기애와 분명히 다른 것이고, 반대로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기만 하는 과도한 겸손과도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들은 주로 비판에 대한 회피 성향을 보이는데, 이는 오히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자신감 넘쳐 보이는 겉모습 속에서는 자칫 나의 부족한 모습을 사람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자기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기만 하는 과도한 겸손도 높은 자존감과 동일시될 수 없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를 낮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는 떳떳하게 높일 줄도 알아야 한다. 언제나 겸손이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근대 한국 유교식 교육관은 자존감을 길러주는 방향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앞서 김상욱 교수가 말했던 '아이가 독립적일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는 발언이 자존감과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나는 자존감이야말로 인간 사회에서, 특히나 현대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이 자식에게 독립을 교육시킬 때에는 그들 각각의 환경에 맞는 자질을 길러줄 것이다. 사자는 자식에게 사냥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고, 그들로부터 생존해야 하는 사슴은 자식들에게 도망치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새는 자식에게 먼 거리에서 먹잇감을 찾아 빠르게 하강하여 포획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고 다람쥐는 먹이를 안전하게 보관해서 추운 겨울을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자식이 자신들의 도움이 없이 험난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각자의 환경에 맞는 가장 중요한 자질을 길러주는 것이 자식의 독립을 위한 준비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자존감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인간이 독립접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사회 활동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러 답변이 있겠으나 나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사회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 스스로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가 친족이나 주변 마을 사람들이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의 관계는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인해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비단 지구 반대편에 있어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밖에 사람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그들의 삶과 생각에, 조금 더 정확히는 SNS 용으로 예쁘게 포장된 모습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다. 이는 앞서 정의한 자존감을 길러가기에 다소 적절치 않은 환경이다. 자존감이란 모든 삶의 가치관이나 기준들을 남들이 아닌 나 스스로 설정하여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져야만 하는 것인데, 남들의 기준이 내게 영향을 주기 너무 쉬운 환경인 것이다.
남들에게 영향받은 가치관이 나쁜 것인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는데 꼭 자존감을 지키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어려운 것이지만, 나는 명확하게 자존감을 지키면서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동물과 다르게 우리 인간은 생존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매슬로의 욕구 계층 이론에 따라 자아실현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고, 조금 더 쉽게는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넘어서서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자질이 자존감이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잘하는데 누군가 말 잘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말을 잘하지 못할까 자책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충분히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살고 있는데 주식으로 큰돈을 번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세한탄할 필요가 있을까. 집 앞 공원을 산책하면서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뉴욕 센트럴파크에 놀러 간 친구를 부러워하며 스스로의 삶을 깎아내릴 필요가 있을까.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하나씩 나열한다면 며칠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텐데, 가지지 못한 것들을 아쉬워하며 내가 가진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과연 만족스러운 삶일까. 남들이 정한 기준이 아닌, 나 스스로 정한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삶이 아닐까. 앞서 김상욱 교수의 말처럼 행복이라는 감정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돈을 많이 버는 삶이 행복한 삶이고, 누군가에게는 남들에게 인정받는 삶이 행복한 삶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큰돈을 벌지도 않으면서 소소하게 살아가는 삶이 행복한 삶일 것이다. 남들이 정의한 행복이 아니라 스스로 정의한 행복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중요하다는 것도 알겠고, 자존감 높은 삶을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도 알겠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생각해 볼 문제는, 아마 가장 어려운 주제인, 그래서 어떻게 해야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일 것이다. 내가 나중에 아빠가 되었을 때 어떻게 아이를 길러야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기를 수 있을 것인가. 이 몹시나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저마다의 이론을 펼쳐왔고 실제로 행해진 여러 검증된 연구 결과들도 있으며, 잠시만 검색해 봐도 자존감에 관련한 서적들은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다만 각각의 사람들이 정의한 자존감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나 또한 내가 살아온 삶에 근거하여 가장 공감이 가는 몇 가지 내용을 다짐 삼아 적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먼저 나는 스스로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지고 언제든 일어설 수 있다고 믿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실패했을 때는 언제든 기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유년 시절부터 굳게 다져진 믿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즉, 어린 시절부터 내가 언제든 실패하더라도 내 부모는 항상 나의 편이 되어서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이야말로 성인이 된 이후의 자존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처음 자전거 타기를 연습할 때처럼, 내가 넘어질 것 같으면 아빠가 언제든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용기 있게 페달을 내딛게 해주는 원동력인 것이다. 나는 장난 삼아 이것을 '비빌 언덕' 이론이라고 부르곤 한다. 내가 넘어지거나 혹은 기대고 싶을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비빌 언덕이 있다는 것이 바로 내 자존감의 원천이다. 이와는 반대로, '내가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우리 엄마는 나를 예뻐해 줄 거야'와 같은 소위 조건부 사랑을 심어주는 것은 아이의 자존감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피해야 할 양육 방식이다. 학교에서 성적을 잘 받았다거나 수학에 특출 난 재능을 보인다거나 하는 어떠한 근거에 의한 사랑이 아니라, 근거가 없는, 보다 근본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한 믿음을 주는 것이 아이가 자존감이 높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출발점이며, 내가 자존감 높게 자라날 수 있었던 이유이다.
한편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에서도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 사랑이 지나쳐 아이에 대한 ‘과잉보호’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러 사회 문제 중 하나인 과잉보호는 절대로 아이를 자존감 높게 기를 수 없는 방법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면서 언제나 실패해도 기댈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것과 과잉보호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바로 실패라는 경험을 아이가 스스로 겪일 수 있도록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모습 중 하나는 스스로를 언제든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실패로 인한 상처와 좌절에 대해 제대로 단련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다. '내가 실패를 해도 나는 괜찮구나'라는 경험이 그러한 단단함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실패했을 때에도 언제든 기댈 수 있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과, 아이가 절대로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앞서 나서서 막아주는 것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실패를 겪지 않도록 하는 과잉보호는 앞서 말했던 비판에 대한 강력한 회피 성향을 보이는 자기애로 이어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높은 자존감과는 거리가 있는 방법이다.
아이가 높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그렇게 나 스스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도록, 나는 아이가 자라나면서 모든 성공과 실패를 직접 경험할 수 있게 장려하는 동시에 어떤 상황에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어줄 것을 다짐한다. 내가 주는 사랑에는 조건이 없을 것이고, 동시에 그것이 자칫 과한 보호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항상 스스로 경계할 것이다. 그리하여 내 아이가 나중에 나처럼 성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장점을 ‘자존감이 높다는 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내가 정의한 이 방법이 자존감 높은 아이를 길러낼 수 있는 모든 비밀을 담고 있는지는 물론 나는 알지 못한다. 나아가서 나 또한 아직까지 완벽하게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나 또한 때때로 내가 선망하는 커리어를 밟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인정이 아니라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종종 올라오기도 한다. 나의 자존감도 사실 알고 보니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었을 수도 있고, 그렇듯 여전히 스스로도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 아마 자존감이라는 것은 유년 시절의 어떠한 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것에서 나아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내가 한 다짐을 지켜나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시작으로 하여 계속해서 자존감이라는 성질에 대해 고민해보려 하고, 이후에 더 나은 생각이 정리되거나 가까운 미래에 실제로 아이가 생겨 길러가면서 자존감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을 때 한번 더 글을 적어볼 것이라고 다짐한다.
마지막으로 나의 글에 또 하나의 실마리가 되었던 허준이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중요하죠."
"근거가 있는 너무 연약해요. '내가 반에서 1등 했어!', '아 나는 수학을 좀 하나보다!'라는 식으로 자신감에 근거를 두다 보면 금방 깨지거든요. 대학원에 가고, 박사학위 연구원을 하고, 세상에 나가보면 그런 사람들 많고 내가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어느 단계에선가 크게 깨닫게 되거든요. 그것을 자기 자존감의 원동력으로 삼으면 언젠가 한 번은 힘든 시기를 겪을 수도 있으니까, 좀 더 본질적인 데에서 자양분을 끌어올리는 게 좋은 일인 것 같아요."
- 프리스턴 허준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