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함의 끝

오만함의 끝

by 이민주

'반드시', '절대로', '결단코', '단언컨대' 난 확신에 찬 이 단어들을 경계한다.

나에게도 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부사들을 즐겨 쓰던 때가 있었다. 3년 전 나는 자신감과잉의 상태였다. 공부를 하고자 마음먹은 후로 원하는 학과에 갔고, 졸업 전 이미 남부럽지 않은 곳에 취업을 성공했다. 퇴사 후에는 임용고시를 연속으로 두 번이나 합격했다. 이쯤 되니 이 세상에서 내가 못할 것은 없었다. 나에 대한 확신이 넘쳐흘렀고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다. 불행히도 이 확신은 날 자만심과 오만함의 늪으로 빠뜨렸다. 영악하게도 난 그럴듯한 포장지를 사서 나의 오만함과 무식함을 숨겼다. 상식과 교양으로 날 예쁘게 치장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은근한 자만심은 부끄럽게도 나만 빼고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목적을 이루는 사람이었고,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며, 나의 선택은 결단코 망하는 일이 없었다. 단언컨대 내가 가는 길은 항상 옳은 길이었다. 나는 노력해서 얻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변화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비난했다. 어느 날 한 학생과 진로상담을 했다.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학생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 아이의 뜻을 존중한다고 교양 있는 척 대답했지만 사실 마음 한편에서 이미 그 아이를 철부지로 규정지어버렸다. 몇 주가 지났을까. 그 아이가 손가락을 다쳐서 날 찾아왔다. 임시로 치료를 해주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허나 다음날 그 아이는 손가락이 여전히 퉁퉁 부은 채로 아무런 조치 없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난 짜증이 묻어난 목소리로 왜 병원에 가지 않았냐고 물었다. "돈이 많이 들까 봐요..." 예상외의 답변이 나의 귓가를 때렸다. 이 어린 학생이 병원비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감싸던 어설픈 포장지를 쭉 찢어버렸다.


내가 걸어온 길은 내가 본 세상의 전부였고, 곧 내가 세상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었다. 그 외의 것은 비상식과 몰상식함, 비정상으로 폄하되었다. 난 내가 성취한 모든 것들이 나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그 노력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했다. 나에겐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우연히 좋은 부모를 만났고, 우연히 돈걱정을 하지 않고 공부를 맘껏 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을 뿐이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뿐이다. 나의 오만한 생각들은 운을 덜 갖고 있던 그들을 찔렀고, 결국 나 자신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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