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 그 곳엔

19호실 그 곳엔

by 이민주

최근 드라마 <더 글로리>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난 끝까지 본 드라마를 손에 꼽을 만큼 긴 호흡을 끌어가는 작품에는 영 흥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의 후속 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애청자가 된 이유는 아마 내 과거를 직면하고 현재를 반성하는 일종의 고백문을 만들게 해 준 고마움 때문이리라.


중학교를 졸업한 지도 벌써 10여 년이 훌쩍 넘었다. 학창 시절이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지만 아직까지 내 마음속 19호실에서 떠나지도, 꺼내지도 못하는 아이가 한 명 있다. 그 아이는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동급생이었다. 따돌림을 당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남자들의 거친 힘의 세계에서 남성성을 과시하지 않았다는 것. 단지 조금 더 섬세하고 부드러운 아이라는 것. 이 것이 그들이 만들어 낸 유일한 이유였다. 어느 날은 교실 뒤편에서 불량한 학생 한 명이 그 아이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대부분의 동급생들이 싸움구경을 하기 위해 둘을 둘러쌓다. 학생들은 그 아이가 주먹으로 얼굴을 맞을 때면 연호했고, 발로 배를 맞을 때면 키득거리며 뒷 쪽으로 한 발 물러났다. 나 또한 그 관중 중 한 명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한 행동은 고작 입을 틀어막으며 놀라는 것뿐이었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나의 19호실이 되었다. 그 아이는 내게 부끄러움, 미안함, 껄끄러움이 한데 뭉쳐있는 복잡한 감정을 자아냈다. 그럴수록 나는 그 아이를 손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 꽁꽁 묻어두었다. 문득 그 아이가 떠오를 때면 난 여전히 스스로를 변명하는데 급급해 어두운 19호실에 그를 버려두었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렸다고, 나는 지켜보기만 했다고, 그러니 나는 죄가 없다고. 수십 수백 가지의 그럴듯한 변명으로 나를 가뒀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 그땐 너도 나만큼 어렸고, 여렸고, 아팠다. 그 여린 아이에게 나는 방관자가 아닌 가해자였다. 그날 교실 뒤편에 있던 모두가 가해자였다. 나의 변명은 10년이 지나도 참 비겁했다.

이제 이 아이를 19호실에서 꺼낼 시간이 된 것 같다. 아니, 19호실에 갇혀있던 비겁한 나를 꺼낼 시간이 된 것 같다. 이제야 너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나의 과오를 인정할 용기가 생겼다.



어린 당신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 늦게나마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용기 있게 당신의 손을 잡아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과거를 잊고 잘 살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껏 욕하고 힘껏 살아주세요. 부디 비겁했던 저보다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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