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2

사랑에 대하여 2

by 이민주

그 아이를 만난 건 2013년 겨울이었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아팠던 시절 우연히 보게 된 입양공고 하나. 그 작고 하얀 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엄마와 언니는 줄기차게 나와 아빠를 설득했다. 그 아이에게 내 마음이 동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손바닥만 한 녀석이 꼬물거리는데 어찌 안 예쁠 수가 있을까. 다만 단순히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함께하기엔 생명에 대한 부담감과 불안함이 더 컸을 뿐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였음에도 그 아이와의 첫 만남은 참 당혹스러웠다. 사진 속의 녀석은 분명 바닥을 기어 다니는 솜뭉치정도였는데 내 품에 안겨진 아이는 족히 30cm는 되어 보였다. 첫날부터 우리는 녀석을 둘러싸고 누워 사기를 당한 것 같다며 한참을 웃었다.


녀석은 내게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 아이가 온 이후로는 퇴근 후 동료와의 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 낮 시간 내내 혼자 있을 녀석이 눈에 밟혔다. 퇴근시간이 가장 이른 나는 텅 빈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향해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어쩌다 회식이 잡힐 때면 며칠 전부터 가족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약속을 최대한 일찍 끝마치기 일쑤였다. 시간이 늦어질 때면 힘없이 앉아있을 녀석의 모습에 초조해졌다. 녀석은 내게 짐 같은 존재였다. 그 아이가 온 이후로 주말이면 하루종일 녀석과 함께 있어야 했다. 녀석과 함께 강가를 걷고 산을 갔다. 차를 타고 캠핑을 갔고, 집 주변을 산책했다. 집에 돌아와 맛있는 간식을 나눠먹으며 방바닥에 함께 뻗었다. 녀석은 내게 버거운 존재였다. 그 아이가 온 이후로 산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면 모자를 뒤집어썼고, 한파로 모두가 얼어붙은 날이면 몸을 꽁꽁 싸매고 길을 나섰다. 장마가 시작되면 밖을 나가지 못해 축 늘어져있는 아이를 보며 비가 그치길 기도했다.


그 작은 녀석은 100kg이 훌쩍 넘는 책임감의 무게로 나를 짓누르곤 했다. 유독 힘든 어느 날은 그 무게가 너무 버거워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나 혼자 많은 것을 희생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녀석을 위해 일찍 귀가해야 하는 것도, 밥을 챙겨주는 것도, 산책을 하는 것도 언제나 내 몫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최근까지도 나는 이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을 단순히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치부해 버렸었다.


몇 주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녀석이 검진을 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시한부판정을 받았다. 부정과 기대 또다시 좌절하는 시간을 거쳐 마침내 나는 녀석이 없는 우리를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공간에 네가 없다면, 우리의 시간에 네가 없다면, 우리의 일상에 네가 없다면, 짐작조차 되지 않는 가정을 하다 문득 흔해 빠진 사랑과 이별의 클리셰가 떠올랐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바로 보였다. 밖에 나가 있을 때면 집에 오고 싶었던 이유를, 녀석은 뭐 하고 있을까 떠올렸던 하루를, 누워있는 녀석을 괜히 만지고 싶었던 심술을, 존재 자체로 축복이라는 말의 실체를.


아, 나는 너를 사랑했구나.

어쩌면 평생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 감정이 바로 너를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랫동안 나랑 함께 했었구나. 끝까지 나는 작디작은 너에게 한없이 받기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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