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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Sep 14. 2024

승우와 민지


1. 승우


승우(가명)는 점차 학교에 흥미를 잃었다.


하루는 승우가 무단 결석을 했다. 아이의 전화기는 종일 꺼져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계속 전화를 걸다가 밤 늦게 가까스로 승우의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어머님의 한국말이  서툴러 통화가 수월하지 않았다 한다. 나는 그때서야 승우가 다문화 가정의 학생인 줄 알았다. 외모만 봐서는 잘 몰랐던 사실이다.


어머님 말로는 아이가 갑자기 학교에 가는 걸 거부한다 했다. 아이가 바깥 생활에 더 이상 어떤 호기심이나 기대감이 없다고 말했단다. 지난 십수 년간 아이가 지나온 삶이 많이 녹록치 않았던 듯 하다.


승우는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결석 3일차가 됐을 무렵 담임선생님과 가정 방문을 갔다. 직접 아이를 만나서 자세한 사정을 듣고 학교에 나오기를 권유할 참이었다.


한참 현관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걸었지만 묵묵부답이라 그냥 돌아서려는데 문 안쪽에서 작게 기척이 들렸다. 잠깐 얼굴만 보고 가겠다며 다시 목청을 높였다. 그제서야 겨우 문이 열렸다. 승우는 방금 잠에서 깬 듯했다. 열린 문틈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신 듯 아이는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다.


"선생님,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무슨 일이긴, 너 보러 왔지~!"


그새 며칠 못 봤다고 왈칵,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승우는 몸이 좀 아프기도 고 엄마랑 싸운 일도 있어서 홧김에 결석을 했다고 말해왔. 며칠 간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신나게 게임을 했다며 웃었다. 아이의 웃음은 밝았지만 반면에 그걸 보는 어른들의 표정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컴컴한 집을  둘러봤다. 밥통에 불이 꺼진 게 눈에 띄었다. 아이에게 점심을 먹었냐 물으니 대답 대신 발 밑의 초코파이 상자를 가리킨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감기약과 컵라면, 핫바를 사서 아이의 손에 들려줬다. 담임 선생님께서 일단 큰 문제는 없는 걸 확인했으니 내일은 꼭 학교에 나오라고 하며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승우는 잠시 멈칫하다 선생님의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었다. 힘이 없어 보였다.


학교로 돌아오는 차 안, 무거운 적막감이 차 안을 휘감았다. 담임 선생님과 나는 왠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승우가 우물쭈물 내뱉은 마지막 말들이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선생님, 학교에 안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시간 낭비 같아서요. 그냥... 나 하나 안 가도 뭐... 어차피 이번 생은 망한 것 같이요."




2. 민지


그날 승우의 일로 가라앉은 마음을 채 추스리기도 전에 학교에서는 선도위원회가 열렸다. 교내 흡연 사안이었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됐는지 나란히 앉은 여학생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놈들...그러게 좀 잘하지. 아이들을 보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교내 봉사 처분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민지는 징계가 누적되어 가장 무거운 사회 봉사 처분을 받았다.


민지(가명)는 북한에서 온 새터민 가정의 아이였. 민지는 그 사실이 싫고 창피한 듯 했다. 친구들 앞에선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대신에 민지는 또래 누구보다도 세고 강한 척 보이는 것에 몰두했다. 마치 방어기제로 가시를 곤두세우는 아기 고슴도치 같았다.


학교에서 사회 봉사 기관까지는 거리가 꽤 됐다. 나는 민지를 직접 기관까지 태워다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며칠 후 민지를 기관에 데려다 주고 돌아서는 길,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다. 기관 담당자의 눈초리가 아주 차갑고 날카로웠기 때문이었다. '징계 처분으로 사회 봉사를 하러  아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눈빛 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를 본 후 나는 어쩐지 초조해졌다. 내가 받은 느낌을 아이는 좀 몰랐으면 했다.


"앞으로는 학생 복장 좀 신경 써주세요."


남자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주의하겠다고 힐끔 뒤를 돌아봤다. 담당자의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고개 숙인 민지의 시선은 제 운동화 끝에 고집스레 머물러 있었다. 민소매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 진한 화장을 한 아이 모습이 하기사 좀 튀기는 했지만 조금만 자세히 봐도 그 속에 가려진 여리고 아기 같은 모습이 눈에 띄는데.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물론 민지 녀석이 사회봉사 처분을 받기까지 학교에서 생활을 잘 했냐, 하면 그건 아니다. 3월부터  크고 작은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지각과 결석도 밥 먹듯이 했다.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어찌나 고생을 하시던지...

민지는  쉽게 변화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담임 선생님의 애를 태우는 중이다. 그러나 아이를 볼 때마다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날따라 너무 작고 연약해 보이는 민지의 어깨를 가만히 바라보다 씁쓸해져 돌아섰다. 아이는 미안한 듯 배시시 웃었다. 눈가에는 눈물이 조금 맺혔다. 아이는 돌아서는 내 뒤로 조그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죄송해요."


나는 목이 메어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그대로 다 적기에는 무리가 있어 약간의 각색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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