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스무 살의 방

낡은 여성 전용 고시원

by 승연


여름의 끝자락, 8월이었다.

우리는 단출한 짐을 챙겨 고시원으로 향했다.


부모님은 차 트렁크에서 짐 가방 몇 개를 내려 방 안까지 옮겨주셨다. 아빠는 매트리스 위에 이불을 펴고, 엄마는 작은 냉장고에 반찬을 차곡차곡 넣어주셨다. 그리고는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조용히 차를 타고 고시원을 떠났다. 그렇게 스무 살 여름, 나의 첫 독립이 시작되었다.


고시원에 들어가겠다고 한 건 순전히 나의 의지였다. 입시 결과에 만족하지 못히여 다시 수능을 보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집 근처에는 종합학원이 없어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학원에 등록했다. 그러면서 학원에서 백 미터쯤 떨어진 낡은 여성 고시원 방도 함께 얻었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집을 떠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철없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경제적 부담을 드린 셈이다.




고시원 방은 고작 2 평 남짓.

1인용 매트리스와 작은 책상 만으로도 공간이 가득 찼다.


부모님이 떠나고 혼자 남은 하얀 방에서 나는 헛헛한 마음에 가장 먼저 밥부터 차려 먹었다. 엄마가 만드신 반찬들을 한 접시에 조금씩 덜었다. 멸치볶음, 메추리알 장조림, 진미채 볶음...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책꽂이 맨 윗칸에 엎어둔 밥그릇을 들고 공용주방으로 나가 밥 한 공기를 조심스레 퍼 왔다.


처음 고시원에서 먹는 밥은 왜 그리도 목이 메는지. 낯선 적막 속에서 숨죽여 밥을 삼키다 엄마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생활이긴 했지만 막상 낯설고 좁은 방에 앉아 있으니 막막함이 밀려왔다.


내 방은 그 고시원에선 나름 제일 좋은 방이었다. 작은 창문이 두 개나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그래도 숨은 쉬고 살아야 한다며 그 방을 골라주셨다. 덕분에 아침에는 희미한 햇빛을 느끼며 일어날 수 있었고, 창문을 열면 플라타너스가 늘어선 거리 풍경이 보였다. 집에서는 당연한 듯 누리던 것들이었는데, 방에 있어서 자연광과 맑은 공기, 외부와의 연결이 그렇게나 귀하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창문이 없는 안쪽 방에서 지내는 이들도 많았다.

좁은 복도를 지날 때면 복도로 난 작은 창을 통해 컵라면 냄새가 새어 나오거나 소리를 죽여 통화하는 누군가의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곳의 다른 거주자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칠 일은 드물었지만, 다들 각자의 방 안에서 고단한 하루를 살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창문이 있는 방이라 해서 특별히 외로움이 덜한 것은 아니었다. 책상에 앉아 바쁘게 걸어가는 길 위의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볼 때면 나 홀로 시간이 멈춘 방에 갇혀 있는 듯 했다. 좁은 침대에 누우면 하얀 천장에 고향의 풍경도 떠오르고 보고 싶은 이들의 얼굴도 떠다녔다.


곧, 나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공부에 매달렸다. 아무 걱정 없이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 살던 학생 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교대나 사범대학을 다닐 거라 상상했는데 현실은 학원의 교대반이었다. 빨리 이 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종일 책을 들여다보았다. 불안함과 긴장감에 잔뜩 움츠린 채, 침묵으로 가득한 하루가 쌓여갔다. 스무 살의 내가 처음으로 호된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겨울 이불로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J가 고시원으로 찾아왔다.


같은 학원을 다녔던 J는 늘 다정하고 사려 깊은 친구였다. 오랜만에 본 그는 밝은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했고 한결 세련된 옷차림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내게 위로할 겸 밥을 사주겠다 했다. 오랜만에 고시원을 벗어나 J와 술집이 즐비한 번화가를 거닐었다. 대학 생활 이야기를 즐거운 듯이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가 명랑했다.


J는 고시원 입구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나도 그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J의 모습에서 나는 설렘보다 어색함을 더 크게 느꼈다. 결국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어두운 계단을 올라 방으로 돌아왔다. 불을 켜지 않은 방에 누워 잠시 그를 떠올리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날 J는 헤어지기 전에 내게 작은 허브 화분을 선물해주었다. 방 안에는 상쾌한 향기가 퍼졌지만 향을 맡을 때마다 서울의 넓은 캠퍼스를 걷는 그와 좁은 고시원에 머무는 내 모습이 겹쳤다. 지금 생각하면 서툴고 귀엽기까지 한 감정이지만, 그때는 화분을 볼 때마다 어쩐지 애틋해졌다.


허브는 곧 시들었다. 나는 시든 화분을 그대로 책상 위에 두었다. 화분은 -짐을 빼던 마지막 날까지- 내 곁에 함께 있어 주었다.




얼마 전, 우연히 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쳤다.

근방의 관광지에 가려다 보게 된 길이었다.


건물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지만, 고시원은 공무원 준비 학원으로 변했다. 작게 나 있던 창문들도 모두 넓게 트여 있었다. 벌써 이십여 년 전 일이고, 나도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니. 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법도 했다. 고시원과 학원을 오가던 스무 살의 내 모습이 건물 위로 스쳐 지나갔다.


"그 작은 방에서 어떻게 그렇게 지냈는지 몰라."


혼잣말처럼 읊조리자, 운전하던 남편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스무 살의 내가 처음으로 세상과 마주한 작은 방이었다. 작은 창문과 시든 화분, 어른들의 도움 없이 오롯이 하루를 책임지는 법을 배웠던 공간.


지금은 사라진 여성 전용 고시원. 열 차례가 넘는 이사의 첫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