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꼭대기 집

by 승연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대학 등록금을 보내고 난 후 엄마와 집을 구하러 서울로 향했다. 기숙사가 없다는 말이 겨울 바람처럼 우리의 등을 힘껏 떠밀었다. 그때 아빠는 함께 가지 못한 사정이 있었을 텐데 이유는 기억나질 않는다. 아무튼 우리 모녀 단둘이 서울로 떠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추적거렸다. 엄마는 두꺼운 기모 스타킹 위에 옷을 겹겹이 껴입으셨다.

이런 날씨에 집 보러 다니려면 많이 추울 거야. 너도 따뜻하게 입어.

엄마의 목소리에 심란함이 잔뜩 묻어 나왔다. 나도 주섬주섬 옷을 껴입었다. 어쩌면 오늘 하루가 아주 길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부모님은 그때까지 오빠 결혼자금으로 모으던 돈을 전세 보증금으로 쓰기로 결심하셨다. 그 돈으로 먼저 서울에 올라와 있던 오빠와 내가 함께 지낼 수 있는 방 두 칸짜리 집을 구할 생각이었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우리집 형편에는 아주 큰돈이었다.


그때는 부모님 두 분 다 집안 형편에 관해 자녀인 우리에게 일절 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몰랐다. 만약 아버지가 친구의 빚 보증을 잘못 서서 난리가 났다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목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전부 얘기하셨더라면, 그날 엄마의 얼굴에 스치던 어두운 표정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거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서울로 대학을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엄마와 처음 간 곳은 마포역 근처였다.


왜 하필 마포로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엄마가 지도를 보며 막연히 오빠와 내 학교의 중간쯤 되는 곳을 짐작해서, 그 쪽으로 가자고 하셨던 듯하다. 마포대로 양 옆에 늘어선 빌딩들은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도로의 차들도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렸다. 앞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이 곳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긴장됐다. 시골에 사는지라 버스를 타고 시내에만 나가도 주눅들던 내가 낯선 서울 한복판에 서 있자니 긴장이 되었다.


하필 그날, 서울은 고향에 비해 유난히 더 추웠다. 아무리 따뜻하게 껴입었어도 옷 안으로 스며드는 칼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나는 몸을 떨며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다행히 엄마의 손은 따뜻하고 단단했다. 엄마는 곱게 화장을 하고 아끼던 핸드백까지 꺼내 들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전투복을 입은 사람처럼 비장했다.


엄마가 앞장서서 한 부동산에 들어섰다.

새하얀 셔츠에 손목에 금시계를 찬 중개사가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했다. 그는 추위에 떠는 우리에게 웃으며 따뜻한 커피를 권했지만, 엄마가 조심스럽게 예산을 말하자 그의 말투도 단번에 차가워졌다.

"그 돈으로는 여기선 방 한 칸짜리도 어렵습니다. 지방에서 오셨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엄마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표정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나 때문에 엄마가 겪지 않아도 될 모욕을 받는 것 같아 불편하고 속상했다.


중개사는 멍하니 앉은 우리 모녀에게 다른 동네를 추천해주었다. 그곳이라면 학교와 그리 멀지도 않고 생각한 예산 안에서 방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두번째 도착한 동네는

확실히 조금 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진갈색 벽돌의 다세대 주택들이 골목마다 들어찼다. 군데군데 슈퍼와 세탁소, 만두와 찐빵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보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중개사가 예산에 맞는 집이 몇 군데 있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러나 그는 집을 보여주겠다더니, 길을 걷는 대신 우리를 차에 태웠다. 근처에는 마땅한 집이 없다고 했다. 차는 평지를 벗어나 점점 더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찰 만큼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마침내 멈춘 곳은 달동네, 그것도 맨 꼭대기 집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언덕에 빼곡하게 들어찬 지붕들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그 풍경을 보자마자 가슴이 턱, 하고 막혔다.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공무원인 부모님이 성실히 모은 돈으로는 서울에서 이런 집들밖에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후로 몇 군데를 더 돌아봤지만, 어디를 가도 집의 모습들이 비슷했다. 어쩐지 겁이 났다. 나 역시 서울에 오면 그들과 같은 삶의 모습과 무게로 살아가야 한다니. 어쩐지 울고 싶어져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결국 그날 우리는 집을 구하지 못했다.

다시 세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길, 진눈깨비는 어느새 함박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눈송이들이 어두운 차창에 어지럽게 부딪쳐 올 때마다 심란한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번졌다.


엄마는 딸에게 괜찮은 방을 구해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했지만, 나는 죄송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래도 꾹 참기로 했다. 내가 울면 엄마가 더 속상해할 것이므로.


결국 당분간 서울 사는 친척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기로 했다. 아직도 눈 내리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돈에 따라 조금만 걸음을 옮겨도 동네의 공기와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지는 걸 보았다. 집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의 모습과 삶의 풍경은 물론, 꿈의 크기마저도 바꿀 수 있음을 알았다.


그날 우리가 본 달동네 꼭대기 집,
성년이 된 내가 만난 두 번째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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