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몇 번의 임용시험 낙방 끝이었다.
중학교 이후 줄곧 타지에서 지냈기에, 다시 부모님과 한집에서 사는 건 거의 십 년 만이었다. 다행히 고향집의 내 방은 예전 그대로였다. 초등학생 시절 직접 골랐던 미색의 블라인드, 빛바랜 베이지색 벽지, 작은 침대와 책상, 그리고 엄마가 직접 그리신 노란 색감의 풍경화까지. 따뜻한 방 안에 들어서자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포근한 느낌의 방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건 나였다. 훌쩍 큰 키에 어두운 표정, 낡은 옷 몇 벌과 임용 서적 몇 권만 들고 돌아온 스물 일곱의 나. 그러나 부모님은 그런 나를 아무 말 없이 반겨주셨다. 무뚝뚝한 아빠의 "수고했다." 한 마디와 엄마의 따뜻한 포옹, 그것 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고향은 여전히 고요했다.
도시의 소음도, 불안한 청춘의 그림자도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며칠 쉬고 나서 곧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독서실에 갔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왔다. 조용하고 규칙적인 생활이 좋았다.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편해지진 않았다. 길거리에서 초등 교사가 된 동창을 마주치거나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여러 잡념이 들 때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럴 때는 무작정 나가 천변을 걸었다. 두근거림이 잦아들 때까지 그저 걷고 또 걸었다. 그러면 좀 나아져서 다음 날에도 책을 펼 수 있었다.
부모님의 조용한 응원도 나를 단단하게 했다. 엄마는 늘 나를 어린 아이 대하듯 보살펴 주셨고, 아빠도 내가 스치듯 말한 블루베리 케이크를 기억하고 사오시거나 집 근처 둘레길을 말없이 함께 걸어주셨다.
무엇보다 나를 치유한 건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이었다. 매 끼니마다 정성껏 차려주던 밥상 - 뜨끈한 쌀밥과 구수한 된장찌개, 신선한 나물 반찬들 - 은 서울살이로 생긴 어떤 결핍감을 조금씩 메워주었다. 욕심껏 먹다 보면 어느새 부른 배만큼 마음의 허기도 풀리는 걸 느꼈다.
몇 달이 흘렀다.
서울 살 때는 늘 달고 살던 피부 트러블이 점차 사라지고 얼굴빛이 맑아졌다. 살도 자연스레 빠졌다. 원래도 정상 체중이었지만 어느새 키에서 몸무게를 뺀 숫자가 120을 넘겼다. 가끔씩 너무 무리했다 싶은 날에는 다음날 꼭 앓아누웠지만, 누워서도 책을 폈다. 이번만큼은 꼭 끝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해, 나는 또 떨어졌다.
이번엔 정말 될 줄 알았다.
열심히 했고, 자신도 있었다. 1차와 2차를 무난히 통과했을 때만 하더라도 온 가족이 기대했지만 최종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논술 점수가 예상보다 낮았다.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정말 막막했다. 애꿎은 엄마에게 화를 쏟아냈다.
"사범대는 왜 가라 했어요? 이렇게 힘든 걸 왜 계속 하라고 했어요?"
노력이 부족해서 떨어진 걸 알면서도 못난 마음에 인정하기 싫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가족 모두가 상처를 받았다. 집 안에는 무거운 적막만 감돌았다. 따뜻하고 안락한 내 방에서, 나는 초등학생 아이처럼 베개에 얼굴을 묻고 소리내어 울었다.
한 달쯤 지났다. 나는 다시 짐을 쌌다. 불합격의 충격이 어느정도 가라앉은 뒤였다. 나는 이제 임고는 그만 보겠다고, 기간제 교사 자리부터 구해서 해보겠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번에도 조용히 나의 결정을 응원하셨다. 그렇게 다시 집에서 1시간쯤 떨어진 P시로 이사했다. 학교 근처에 원룸을 얻고, 임고 서적은 모두 내다 버렸다. 이만큼 했으면 됐다 싶었다. 계약직이든 뭐든 앞으로 내 밥벌이는 스스로 책임지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알고 지내던 S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지금 너희 집 앞이야. 잠깐만 나올래?"
S는 얼마전 면접을 봤던 기업 몇 군데에 합격을 했다고 웃었다. 그 중 한 회사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했다. 그의 노력과 성실함을 잘 알던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는 내 생각이 나서 찾아왔다고 했다. 스무 살 무렵 고시원 앞까지 찾아왔던 J가 떠올랐다.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기분이었다. 달라진 건 내가 이제 이십대 후반이라는 점 뿐이었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오랜만에 근황을 나눴다. 잠시 침묵 후 그가 조심스레, 진지하게 만나보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나도 한때 그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반면, 그는 이제 번듯한 사회인이었다. 나는 늘 그렇듯이,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시험 합격을 하든 일을 하든 자리를 잡기 전까진 다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무겁게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왜 꼭 미뤄야 해? 나랑 사귀면서 자리 잡으면 되잖아."
농담하듯 던지는 그의 말은 내 예상에 없던 거였다.
그 후 좀 더 얘기하다 보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이번에 내가 기간제 교사로 일하게 된 곳, P시는 S의 본가가 있는 곳이었다. 새로 구한 원룸에서 그의 집까지는 차로 15분 거리에 불과했다. 나는 그의 환한 웃음에 마음이 흔들렸다.
새로운 인연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음을 직감하던 순간이었다. 일 년간 내게 안식처가 되어준 베이지 톤의 내 방도 그 즈음 깨끗하게 비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