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원룸

by 승연
출처: 픽사베이



P시에서 기간제 교사로 첫발을 내딛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이 하나 있었다.

앞으로는 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더 이상은 부모님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수험생 생활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나이 삼십이 다 되도록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타 쓰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었으니까. 비록 계약직일 망정 직장을 구했으니, 스스로 돈을 벌고 저축도 해보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P시에서의 생활은 기대보다 더 좋았다. 서울만큼 번잡하지 않으면서 생활여건이 적당히 갖추어져 있었다. 느릿느릿 여유를 지닌 듯한 이곳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 역시 여기에선 나만의 속도로 살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학교 근처에서 구한 원룸도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거쳐온 고시원이나 낡은 전셋방과는 달리, 신축 건물의 정남향 방에는 종일 환한 햇살이 들어왔다. 작지만 베란다와 분리형 주방도 갖춰져 있었다. 나는 첫 월급을 받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소품 몇 가지를 사서 방을 꾸몄다. 노란 꽃다발을 꽃병에 꽂고, 마음에 드는 포스터 한 장을 벽에 붙이면서 작은 방에 나만의 취향을 담는 일에 열중했다.


원룸 현관에는 본가에서 가져온 아버지의 낡은 운동화를 부적처럼 놓아두었다. 배달이나 검침 기사님이 올 때면 일부러 아버지의 운동화가 잘 보이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지만, 그때는 낡은 운동화가 마치 실제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처럼 참 든든하게 느껴졌다.


밥도 제대로 챙겨먹으려 노력했다. 어설퍼도 컵라면 대신 계란 프라이라도 해 먹었다. 그 무렵 어느 책에서 본 문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밥 한끼를 먹더라도 예쁘게 잘 차려서 먹었다."

나는 스스로를 잘 대접해왔던가. 그때부터 다짐을 했다. 작은 방을 취향대로 꾸미고 밥을 차려 먹는 일은 누군가에겐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작아진 내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이던 나만의 조용한 노력들이라 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점차 기간제 교사 일에도, 혼자 사는 일에도 익숙해졌다.


전기세와 수도세 고지서가 내 이름으로 날아왔고 매달 월급날이 되면 수입과 지출을 정리하고 적은 금액이나마 저축도 했다. 스스로 번 돈으로 꾸려가는 삶이 고단하긴 했지만, 그만큼 내면의 무언가가 단단해지고 힘이 생기는 걸 느꼈다.


그 때 학교의 또래 교사들 대부분은 나처럼 기간제였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다독거렸다. 같은 학교에서 함께 버티며 위로가 되어주던 동료들 덕에 그리 외롭지 않았다. 퇴근하면 식당이나 술집에 모여서 낄낄대며 농담을 주고받고, 내 원룸을 아지트 삼아 긴 수다를 떨었다. 그 선생님들이 없었다면 젊은 날의 고된 하루를 견디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무렵 내 곁엔 늘 S가 있었다.

우리가 같은 도시에 산다는 건 참 다행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S와 만나서 밥을 먹고 영화를 봤다. 조금씩 그에게 익숙해졌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그의 짧은 문자 몇 줄이면 위로를 받고 힘이 생겼다.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았지만 오히려 주변에서 더 난리였다. 부모님도 싹싹한 S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하지만 S의 어머니는 달랐다. 기간제 교사인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셨다. S는 결혼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어머니가 그냥 예쁘게 연애만 하라며 말을 돌리신다고 답답해했다.


나는 어머니의 의중이 무엇인지 수 있었다. 상처를 받았지만 한편 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는 이미 결혼이 준비된 사람이었고, 충분히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반면 나는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다. 결국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S가 눈물을 보이며 붙잡았지만, 어렵게 굳힌 마음이 흔들릴까 봐 서둘러 자리를 뛰쳐 나왔다.




얼마 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S의 어머니였다.

며칠째 술에 취해 괴로워하는 S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아들 살리는 마음으로 한 번 만나보자고 하셨다.


칼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이었다. 낯선 카페에서 처음 뵌 S의 어머니는, 무척 세련된 분이었다. 그날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어머니도 나도 눈물을 흘렸던 것만은 생생하다. 나중에 들으니, 어머니는 그날 머플러를 하지 않아 하얗게 드러난 내 목덜미가 너무 안쓰러웠다고 한다.


그날 긴긴 대화의 끝은, 어머니의 '결혼 준비를 시작하렴.'이라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그 후 우리는 P시에 신혼집을 구했다.

내 기간제 교사 계약이 끝나는 날과 맞물려 결혼식을 올렸다. 모아둔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방이라 운좋게 24평의 신축 아파트를 전세로 구할 수 있었다.


짐을 옮기기 전날, 나는 마지막으로 원룸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처음으로 내 취향을 온전히 담은 방이었다. 작은 싱크대와 냉장고, S와의 커플 사진을 붙여둔 화장대, 아기자기한 소품들 몇 가지... 서툴지만 이곳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교문 지도 때문에 새벽같이 나서던 날, 야자 감독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온 날, S와의 데이트, 동료들과의 즐거운 모임, 그 모든 달콤씁쓸한 기억과 시간들이 방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왠지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고 조용히 현관문을 닫았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 원룸과 작별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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