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발령을 받은 터라 집을 알아볼 시간이 충분치 않았는데, 대신에 그의 회사에서 사택을 제공해줘서 그리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택은 지은 지 2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였다. 그래도 교통이 편리한 동네에 위치했고, 집 내부도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서 깨끗하여 좋았다. 수압도 세고 난방도 잘 됐으며 평수도 24평, 곧 태어날 아기까지 셋이 살기에는 충분했다.
다만, 하필 집 호수가 004동에 404호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미신은 잘 안 믿지만 집 주소에 4가 세 개나 있다는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소름이 돋아서 괜히 팔을 쓸어내리며 입고 있던 카디건의 앞을 여몄을 정도였다.
이사하던 날도 그랬다. 결혼할 때 구입한 커다란 소파가 거실에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아무리 애써도 일자로는 도저히 넣을 수 없어서 결국 디귿자 모양으로 분리해 들여놓아야 했다. 신혼의 달콤함만 누렸던 이전의 집과 달리, 이 집은 처음부터 '이게 현실이야'를 보여주고 있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변 시세를 둘러보니 우리의 예산으로는 이 오래된 아파트의 전세도 못 구한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이왕 꿈에서 깬 김에, 이 집을 '진짜 내 집 마련'을 위한 첫걸음으로 삼기로 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최대한 돈을 아껴 모아서 더 나은 집으로 옮기자는 계획을 세웠다. 남편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달콤한 신혼의 꿈에서 벗어나 점차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삶에 눈을 뜨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수많은 소규모 상가들과 배달 오토바이, 행인들로 어딜 가나 북적였다. 주말이면 남편과 손을 잡고 걸으며 동네 구경을 하고, 그때마다 구미가 당기는 먹거리를 사는 소소한 재미를 느꼈다.
그러나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신도시의 잘 계획된 깨끗함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왕이면 공원과 작은 도서관이 있는 조용한 동네였으면 했다. 그런데 남편을 따라 올라온 이곳은, 주변 회사 직장인들을 겨냥한 각종 유흥시설들이 즐비한, 낮보다 밤에 더 화려하게 피어나는 동네였다.
밤이면 골목마다 시끄러운 음악이 울려펴졌고 술에 취한 사람들이 주사를 부렸다. 방음도 잘 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새벽마다 열창을 하는 아랫집 젊은 남자 때문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번쩍번쩍한 네온사인의 불빛이 스며드는 방 안에서 남자의 노랫소리까지 들리는 날이면 이곳에서 뒤척이는 내 자신이 낯선 타국에 머무르는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내게 그 전에는 몰랐던 기쁨과 환희, 희생적인 사랑이라는 새로운 감정들을 알려 주었다. 우리의 작은 집은 곧 아이의 용품들로 하나씩 채워졌고, 집의 색채도 조금씩 알록달록하게 바뀌어갔다. 아이라는 새 생명체와 하루종일 함께 하면서 내가 엄마가 되었음을, 새로운 인생의 제 2막이 열렸음을 깨달았다.
남편은 점점 더 바빠졌다. 매일 새벽 6시면 집을 나가 밤 9시가 되어서야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듯했다. 그런 그를 이해하고 고맙게 느꼈지만, 한 편으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에서 나 혼자 아이를 키우자니 힘들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다. 어쩐지 필사적인 기분이 되었다. 놀이터에 유모차를 끌고 나가서 또래 아기 엄마를 보면 용기내어 말을 붙였다.
아기가 몇 개월이에요?
아무리 낯선 여자라도 경계를 허무는 마법의 문장이었다. 때로는 그녀들 역시 내게 같은 문장을 물어왔다. 온라인 지역 맘카페에서는 종종 '양띠 아가 엄마들 중 지금 ㅇㅇ공원으로 모이실 분!'과 같은 글도 올라왔다. 그럴때면 나도 재빨리 '저도 갈게요.' 의 댓글을 달아 함께 어울리려 했다.
어느 새 같은 처지의 여자들이 많이 모였다. 나는 그녀들과 품앗이 공동 육아를 했고 그러면 숨통이 좀 트였다. 한동안 우리는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외로움을 잊었다. 다들 집집마다 비슷하게 살고 있었다. 우리는 장난감과 육아용품 사이에 빽빽하게 둘러앉아 아이들의 이유식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았다. 주사를 안아프게 놓는 소아과와 괜찮은 육아용품 공구에 관한 정보들을 공유했다.
같은 '아기엄마'로서 느끼는 끈끈한 유대감은, 번잡한 이 동네와 사택에 정을 붙이게 하는 강력한 요소가 되어주었다.
나도 새 학교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학교는 사택에서 1시간 반쯤 떨어진 S시에 위치했다. 고민 끝에 나와 아이만 사택을 나와 거기에서 집을 구하기로 했다. 남편은 이 곳, 나는 그 곳으로 떨어져 주말부부를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친해진 아기 엄마들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그때쯤 다들 다른 동네로의 이사를 계획하고 있던 참이었다. 우리는 아쉬워 손을 마주잡고 눈물을 보이며 또 만나자고 말했지만, 쉽게 지키지 못할 말인 것은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이 동네는 어린 아이를 키우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좀 더 나은 거주지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