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입주청소를 했습니다.

by 승연


아침에는 각종 청소 도구들을 든 채 호기롭게 나섰지만 저녁에는 패잔병의 모습으로 돌아와 앓아누웠다. 셀프 입주청소를 끝낸 직후였다. 돈 좀 아껴 보려다가 병원비가 더 들게 생겼다.



이삿날을 달 남겨두고 입주청소 업체를 알아보았다. 34평 아파트를 청소하는 비용은 40부터 70 이상까지 다양했다. 우리 부부는 한동안 가성비와 만족도를 따지다가 어느 순간 비용도 아낄 겸 직접 청소를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동안 이사는 많이 다녔어도 직접 청소할 생각은 처음이었다. 그 돈이면 첫째 학원이라도 하나 더 보낼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고 마침 내가 휴직 중이라 시간 여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를 몇 번 다니다 보니, 볼수록 왠지 할 만 해보였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보니, 그건 아주 큰 착각이었다.




우리가 이사갈 집은 중년의 딸이 노모와 단둘이 살다가 비운 집이었다. 나는 나중에 집이 비워진 후에 가서 한번 봤고, 모녀가 아직 그곳에 살 때는 남편 혼자 가서 살펴보았다.


그의 말로는 가구들이 아주 많았다고 했다. 둘만 살기에는 넓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사람 대신 가구들로 집을 가득 채운 느낌이라 했다. 그가 집을 둘러볼 때 모녀는 스탠드 같은 간접 조명들만 켜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고. 집도 사람도 좀 어둡게 느껴졌다고 했다.


우리는 한참 후에야 그들이 간접조명만 켜두고 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집에 있는 전구란 전구는 다 나가 있었다.

모녀는 전구를 갈 줄 몰랐던 듯하다. 대신 여기저기 스탠드를 두고 지냈던 것이다. 전구를 갈아달라 부탁할 지인 하나 없었던 걸까. 어두컴컴한 집에서 답답하진 않았던가.

그날 우리는 관리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열두 개도 넘는 전구를 전부 갈아야 했다.


수많은 벽걸이 후크들도 눈에 띄었다. 현관, 옷장, 주방 등 곳곳에 붙여놓은 벽걸이 후크는 어림잡아 20개는 돼 보였다. 현관에는 마스크를 걸었으려나. 아니면 스카프? 저기에는 모자나 가방... 안방 문에 달린 후크는 유난히 크고 튼튼한 걸 보아하니 왠지 겉옷을 걸었을 듯하다. 그집의 모녀가 남기고 간 유일한 흔적이었다.




짐이 다 빠지고 난 집은 언뜻 봤을 땐 깨끗해 보였는데 자세히 보면 경악할 만큼 더러웠다. 창문마다 붙여놓은 단열필름을 제거하고 나니, 창틀에 두껍게 내려앉은 까만 먼지가 보였다. 여름에도 창문을 닫고 살았던 듯 하다. 쌓인 두께로 봐서는 몇 년은 묵은 듯했다. 가볍게 닦아보려 했는데 먼지가 너무 날렸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계속 마른 기침이 나왔다. 기침이 하도 멈추지 않아서 나중에는 짜증이 정도였다.


주방 후드, 베란다, 실외기실, 세탁실...... 군데군데 페인트 칠도 다시 해야 하고 탄성코팅이며 시트지 교체며 손봐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제야 왜 여자가 천만 원을 깎아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슴에 연민과 분노가 뒤섞여 휘몰아쳤다.


청소를 하면서 그 집에 살았던 이들의 희미한 흔적을 열심히 지워냈다. 남겨진 흔적들이 자꾸만 그들이 이 집에서 머무르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적막한 집안, TV 소음만 방안을 채우고. 쇠약한 노모는 집의 정물처럼 움직일 줄 모르고. 퇴근한 중년의 딸은 지쳐서 벽걸이에 외투를 걸고 몸을 눕히던. 집은 안락한 동굴처럼 어둡게 모녀를 품어주었을 거다. 이 집의 흔적을 보면 그들에게 바깥의 풍경이나 신선한 바람, 환한 햇살이 필요 없었던 건 분명해 보였다.





입주 청소는 두 번에 걸쳐 진행됐다.


첫 날은 주말이어서 아이들까지 온가족이 출동했다. 남편은 청소도구들을 플라스틱 아기욕조에 담아 트렁크에 실었고, 나는 새벽에 싸둔 김밥과 유부초밥, 과일과 쿠키, 생수까지 넣어 무거워진 보냉가방을 들고 차에 올라탔다. 돗자리도 두 개 실었다.


아이들이 짐을 보더니 우리 소풍가는 거야? 하고 천진하게 물었다. 일견 나들이를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가벼운 목소리로 응, 우리 이사갈 집으로 소풍가는 거야-라고 답했다. 자, 갑시다- 남편의 목소리도 밝았다. 아름다운 호수공원과 도시의 활력이 공존하는 우리의 새 집으로 희망차게 출발하자꾸나.


집에 도착해서 상태를 파악하고 나니 덜컥, 후회가 됐다. 이사갈 집을 처음 본 아이들은 뭣도 모르고 좋아하며 환호성을 질렀지만 우리 부부는 두껍게 쌓인 먼지를 보고 굳은 표정이 됐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깔끔하게 업체에 맡기자고 할까. 슬쩍 남편의 눈치를 봤다. 난감한 표정을 짓는 걸보니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아 모르겠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 해보고 안되면 그때 말하자 싶었다.


옷을 갈아입고 마스크와 고무장갑, 앞치마로 중무장을 했다. 급한 대로 거실 가운데만 쓸고 돗자리를 깔았다. 아이들은 그 위에서 놀고 있으라고 당부하며 남편과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네 시간쯤 지났나. 닦고 닦고 또 닦으면서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아아- 몰카 찍는 거냐고ㅡ 그렇지 않고서야- 둘만 살던 집이 이렇게 지저분할 수는 없다고- 중얼거렸다. 지루하다고 떼쓰는 아이들 손에 하나씩 핸드폰을 쥐어준 지도 한참 지난 터이다.


남편 역시 그가 맡은 구역에서 끊임없이 신음을 내뱉었다. 우리는 지금 본인이 얼마나 힘든 일을 하는지 또 얼마나 심기가 불편한지를 여러 감탄사로 드러내고자 했다. 내가 휴우-하면 그는 하아-했고 그가 끄응-하고 숨을 뱉으면 내가 아이고-하고 답했다. 한동안 메기고 받는 소리를 하며 우리는 희한한 노동요를 불러댔다.




여보, 이제 집에 가자.


밖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100매짜리 소독 티슈 네 통을 비운 뒤였다. 두 다리는 후들거렸고 산발한 머리를 다시 묶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편은 집을 나가는 순간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들고 있던 손걸레로 눈에 보이는 아무곳이나 문질렀지만, 그런 그의 팔뚝도 사정없이 떨렸다.


우리는 고개나 어깨를 좀처럼 반듯하게 두지 못하고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였다. 자꾸만 비틀거렸다. 아이들은 화가 단단히 났다. 좁은 돗자리 위에서 꼼짝 없이 몇 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던 아이들은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소풍이야, 재미없어!

엄마, 아빠,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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