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태어났다.
햇살 같은 미소가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가족은 셋에서 넷이 되었다. 아이 둘을 품으니 부모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둘째가 네 살이 될 무렵, 다시 이사 준비를 했다. 그때까지도 우리 가족은 살림을 합쳤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내 직장부터 옮겼다. 경기도로 전출을 신청했고, 다행히 운좋게 한 번에 승인이 났다. 발령을 받은 곳은 경기 남부의 한 도시였다. 남편의 직장과는 1시간 30분쯤 떨어졌다. 그와 나 둘 다 출퇴근이 가능한 지점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다. 수원, 화성, 오산... 조금 더 멀리는 평택까지 가능했다.
좋아, 이제부터는 직접 두 발로 뛰어보자.
그때부터 우리는 주말마다 여행을 가듯 후보 지역들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그 지역을 돌아다니다 좀 괜찮아 보이는 동네가 있으면, 주차하고 직접 걸으며 임장을 다녔다. 남편과 나는 심각했지만, 아이들은 낯선 동네를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보였다. 마치 소풍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네 가족이 함께 살아갈 곳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동네마다 풍경이나 분위기가 비슷한 듯 다 다르니, 오히려 고르기가 어려웠다. 어떤 동네는 조용하고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지만, 막상 둘러본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대로 집은 괜찮아 보이는데 동네의 분위기가 끌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대충 결정하기는 싫었다. 두 아이를 생각하면, 마트에서 저녁 찬거리를 고르듯이 집을 고를 수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나의 몰랐던 취향 차이도 드러났다. 나는 안정적인 느낌의 저층을 좋아했고, 그는 탁 트인 시야의 고층을 선호했다. 나는 조용하고 자연 친화적인 동네를 좋아했지만, 그는 생활 편의성과 도시적인 느낌을 최우선으로 봤다. 우리는 집을 보러 다니며 조금씩 타협점을 찾았다. 몇 번 다녀보니 집을 보는 시선이 점점 더 꼼꼼해지고 현실적으로 변해갔다.
몇 번의 실패를 거친 후,
드디어 우리 부부의 마음에 쏙 드는 동네를 찾을 수 있었다.
호수공원과 인접한 깨끗한 동네였다. 나는 넓은 호수와 잘 조성된 공원, 킥보드를 타며 웃음 가득한 그곳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남편도 깨끗한 건물들과 교통, 편의시설을 확인한 뒤 만족스러운 표정이 됐다. 이상하게도 이 동네에서 우리 부부 둘 다 낯섦보다는 편안함을 느꼈다.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우리 가족의 모습이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도 같았다.
처음에는 그 아파트를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40 평대부터 시작하는 집들이라 너무 넓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생각한 예산을 가뿐히 초과했다. 그러나 부동산 사장님이 급매로 특별히 싸게 나온 매물이 있다고 앞장을 섰다. 구경이나 한 번 해볼 요량으로 가볍게 따라나선 것이 그 집이었다.
평수가 48평이라 했나, 들어선 집이 어찌나 크고 넓은지, 진한 흑갈색의 인테리어는 또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몰랐다. 현관에서부터 느껴지는 위압감이 대단했다. 방은 방대로 컸지만 그 안에 들어찬 가구들 역시 만만찮게 크고 고급스러웠다.
마침 거실에는 주인인 중년의 부부가 검은 가죽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집을 둘러보는 우리에게 말없이 은은한 미소만 지어보였다. 집을 보러 온 것 뿐인데 어쩐지 주눅이 들었다. 좀 더 꼼꼼하게 봤어야 했는데 막 기세 좋게 둘러보지는 못했다.
우리를 안내해준 부동산 중개사는 풍채가 좋고 화려한 60대 여성이었다. 그녀 역시 이 아파트에 산다고 하였다. 그녀는 우리가 이 아파트에 들어온다면 마주하게 될 이웃들로 의사와 교수, 판검사와 사업가를 읊으며 입주를 적극 권유했다.
중개사는 특히, 이 집에 살던 아이들은 전부 SKY에 갔다며 일명 명문대 합격이 보장된 집이라고 속삭였다. 입주만으로 보장된 SKY 합격이라니,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과 품위있는 이웃 주민, SKY 합격 보장까지! 대단히 매력적인 집이 아닐 수 없었다.
"젊은 부부 꼭 와요, 우리 이웃주민 되면 참 좋겠어."
사장님은 남편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리며 웃었다. 마흔의 그를 보고 대학생인 줄 알았다며 한껏 치켜세운 뒤였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오래전 우리의 신혼집이 떠올랐다. 철길 옆 작은 아파트, 집값이나 미래 가치를 따질 줄도 모르고, 그저 우리가 함께 산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던 곳. 돌이켜보면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던 집이었다. 지금이라면 아마 현실적인 이유들로 선택하지 않을 집이기도 했다.
반면, 단순히 집값만 따지면 가장 좋아야 했던 S시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는가. 그곳에선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아이와 단둘이 지내며 버티는 하루하루가 힘겹고 우울했다. 결국 집이란, 아무리 따지고 재서 신중하게 선택해도 결국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일 것이다.
지금 마음에 쏙 드는 이 동네도, 앞으로의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한 곳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굳이 애쓰지 말자. 어디 가든 잘 살 수 있다. 갑자기 설명하기 어려운 희망과 자신감이 스며들었다.
사장님과 헤어지자마자 남편은 내게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구나. 아주 좋은 집이지만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어린 아이가 아빠 옷을 입고 뽐내는 것 같달까. 결국 우리는 그 집을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여보, 나는 괜찮으니까 천천히 알아보자. 당신 좋은 대로 해."
그의 눈이 좀 커지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방금 전까지도 '집값'과 '도시'에 관한 욕망들로 가득 찼던 우리인데, 막상 여러 동네를 둘러보면 볼수록 단순한 세속적 욕망들로만 집을 구하는 일이 오히려 어리석게 느껴졌다. 더구나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어찌됐든 이번 이사는, 다시 한 번 우리 가족이 단단해지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그렇게만 생각하자고 다짐하니, 그 순간부터는 이사에 대한 스트레스나 두려움이 덜해졌다.
그후 우리가 계약한 집은 그 집과 10분쯤 떨어진, 좀 더 저렴한 30평대 집이었다.
집 바로 앞에는 놀이터와 공원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 집을 보자마자 행복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