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꿈꾸다.

by 승연


서울로 휴가를 다녀왔다.

성실한 남편 덕분이었다.


"여보, 나 우수사원 됐어!"

그는 팀원들의 추천으로 해당 분기의 우수사원에 뽑혔다며 들뜬 얼굴로 외쳤다. 평소에도 늘 묵묵하게, 지나칠 정도로 성실하게 일하던 그였다. 그는 매일 업무가 힘들다면서도 아침마다 경쾌하게 출근했고, 내가 아이를 낳던 날조차 출산실과 복도를 오가며 쉴 새 없이 업무 전화를 했다. 나는 그런 면이 안쓰럽기도, 가끔은 못마땅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그가 우수사원이라니, 드디어 노고를 인정받는 듯하여 나 또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상금 외에도 실장님이 호텔 식사권을 부상으로 주셨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아예 이참에 서울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자고도 했다. 식사권을 쓰려면 호텔에서 1박을 해야 하니까. 나는 배보다 배꼽이 큰 건 아닌가 잠시 고민했지만,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호캉스라는 멋을 부려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나도 곧 설레기 시작했다.




몇 주 뒤, 우리는 서울로 떠났다.
서울 사는 사람들에게는 '서울로 휴가간다'는 말이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지방에서 나고 자란 우리로서는, 확실히 들뜨고 설레는 일인 것만은 분명했다. 경부 고속도로를 달려 동탄과 판교를 지나면서 양 옆의 건물들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우리 대화의 톤도 점점 올라갔다.


"여보, 저기에 OO 살지 않았어? 잘 나가네."
"와, 여긴 외제차가 너무 많네. 앞에 슈퍼카 보이지? 가까이 붙지 마."


뒤에서 아이가 자꾸만 '왜? 무슨 뜻이야?' 하고 물었지만, 아이에게 설명하기엔 너무 속물적이었다.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지만 한껏 들뜬 남편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저 아파트 보이지? 우리 집 O채를 팔아도 못 사는 집이야."
"오늘 밥값은 네 한 달 학원비보다 비싸단다."
"호텔 방값이 하루에 OO만원이래. O밤만 자도 아빠 월급 다 쓰는거야."


그는 꼭 마지막엔 '그러니까 돈 많이 벌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아이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나는 그의 어깨를 쳤다. 아직은 우리 아이까지는 돈의 무게로만 세상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 뜻을 눈치챈 그도 그제야 입을 닫았다. 무안함을 감추려는 듯 "그렇지만 돈 때문에 양심에 어긋나는 짓은 하면 안 된다"라는 어설픈 말로 상황을 수습했다.


한편으로는 그의 말들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린 시절 그는 48평 아파트에 살던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그러다 가세가 기울면서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는 돈을 아끼려 하루 한 끼만 먹을 만큼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서울은 다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킨 곳이었다. 대학생이던 그는 서울의 빽빽한 아파트와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나도, 하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고 한다. 그날 운전대를 잡고 빌딩 숲을 올려다보던 그의 눈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욕망이 다시금 피어나는 듯했다.




호텔에 도착했다.

입장 시간을 기다린 뒤 식당에 들어서자 일렬로 쭉 서 있던 직원들이 우리를 향해 동시에 인사를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리고는 바로, 방금 놀란 티가 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민망해졌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어색하고 긴장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밥 한 번 먹기 참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이것저것 줘 봐도, 먹는둥 마는둥 제 입맛에 맞는 음식만 골라 먹고, 디저트 코너에서도 마카롱만 고집하며 까불거렸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둘 다 미묘하게 긴장했다. 나는 커피를 더 마시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조심스레 음식 사진을 찍었다.


남편은 음식보다 주변 테이블의 사람들이 더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모두들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무심하게 고급 와인을 주문하고, 느릿느릿 먹고 마셨으며, 가끔은 지루하다는 듯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나는 남편의 표정만 보아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마저도 그는 여전히, 언젠가는 저들처럼 이런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 아이는 곧 일상으로 복귀했다.

아이에게는 호텔의 화려함이나 비싼 식사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잘 놀다 온 또 다른 하루'였을 뿐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 역시 집이 제일 좋다!"


반면 우리 부부는 한동안 마음이 붕 떠 있었다. 이상했다. 짧은 서울 여행 동안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울 사람들에 대한 질투를 느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괜히 초라해 보였다. 남편에게 털어놓자 그는 당신도 그랬냐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곧 우리는 아이 앞에서는 차마 하지 못할 속물스러운 대화를 오래도록 나눴다.

더 올라가야 한다, 더 노력해보자, 일단 돈을 벌어서... 서로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다짐을 했다.


우리의 끝없는 대화는 2시간을 달려 거대한 서울의 밤하늘 어딘가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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