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첫돌을 막 넘길 무렵 시작된 주말부부 생활은 그후로 3년간이나 이어졌다.
홀로 육아와 직장을 병행해야 했던 나는 나대로 죽을 맛이었지만, 그 역시 종일 일에 파묻혀 지내다 좁은 원룸에 돌아와 잠시 눈만 붙이는 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그는 늘 약간의 피곤함을 얼굴에 달고 집으로 내려왔다. 주말만 되면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지나던지. 토요일은 좀 괜찮았지만 일요일이 되면 다들 우울해했다. 갈 시간이 되어 남편이 가방을 챙기거나 외투라도 입을라치면 눈치 빠른 아이가 먼저 훌쩍이기 시작했다. 한번 터진 아이의 울음은 숫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방불케 했다. 난감해하는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하도 서럽게 울어대서 지켜 보던 나까지 함께 눈물이 흐르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부부는 점점 더 예민하게 부딪쳤다. 서로를 위로하는 말 보다는 누가누가 더 힘든지 자랑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새 신혼의 달콤함은 사라진 지 오래, 아이는 날이 선 부모 틈새에서 혼자 자라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원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하고 3대가 덕을 쌓아야만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 아니었나. 주변에선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든가, 잠시만 참으면 낙이 온다든가의 말을 건네며 위로를 해왔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고, 이겨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조금만'이 어느새 3년이나 이어질지는 몰랐다. 3년이란 시간은 우리 가족에 점차 조용하지만 위태로운 실금을 긋기 시작했다. 그대로 더 두었다간 금방이라도 산산조각 부서질 것 같은 금이었다.
그는 짠돌이답게 저렴한 원룸에서 지냈다.
그가 사택을 나와 방을 구할 때에 따졌던 건 오직 하나, 가격이었다. 채광이 좋다거나 교통이 편하다거나 하는 다른 조건들은 전부 무시하면서도 그는 유독 '값이 싼 방'만을 고집했다.
나는 그가 삶의 질은 무시한 채 저렴한 방만 구하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왕이면 회사와 가까운 곳에서 괜찮은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구해서 편히 지냈으면 했다.
그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잠만 자는데 뭐. 괜찮아."
결국 그가 고집을 부려 계약한 곳은 회사와 1시간 넘게 떨어진 낡은 원룸이었다. 보증금 300에 월세 30. 그 근방에선 단연코 제일 저렴했다.
그는 돈을 많이 아낀 것을 자랑스러워 했지만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갈수록 그의 피부며 머릿결은 버석버석해지고 잔병치레도 잦아졌으니까.
남편의 원룸은 그 도시의 우범지역에 위치했다.
그곳에 처음 간 날, 충격을 받았다. 그전까지는 남편이 거부하여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직접 내 눈으로 동네를 둘러보니 왜 그가 한사코 나를 오지 못하게 했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거대한 유흥가, 그 전에는 본 적 없던 낯선 세상이 펼쳐졌다. 온통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술집들과 만취한 남녀의 무리만 보였다. 가벼운 웃음소리와 비속어들, 담배꽁초와 전단지와 토사물이 어지러이 나뒹구는 길바닥... 어린 아이와 걷기에는 좀 불쾌하기까지 한 거리였다.
원룸 바로 옆에는 범죄를 피하기 위한 안심 부스도 설치되어 있었다. 안심 부스를 설치해야 할 정도로 안심 못할 환경인 것인가... 나도 모르게 아이의 손을 바짝 잡아 끌어당겼다. 안심 부스 옆에는 젊은 남녀가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를 흘깃거리는 눈빛이 왠지 싸했다. 그들이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를 피하려 종종걸음을 치니, 뒤에서 가래침을 끌어모아 퉷, 하고 뱉는 소리가 들렸다. 최악이었다.
돈 조금 아끼겠다고
이런 곳에 방을 구한 남편에게 화가 났다.
들어선 원룸 건물에서는 싸구려 라벤더 향이 강하게 났다. 앞선 남편은 아이가 볼세라 복도에 다닥다닥 붙은 퇴폐업소 광고지들을 황급히 떼어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여보, 빨리 나와. 여긴 정말 아니야."
그는 멋쩍은 표정이었다. 그쯤엔 그도 뭔가 느낀 게 있었는지 종종 후회의 말을 해오던 참이었다. 얼마 전에는 <성범죄자 알림e>를 찾아보며 침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방 값이 저렴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쯤 우리는 주말부부 생활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져 있었다.
"우리,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다른 것들만 쫓다가 정작 중요한 걸 놓치는 것 같아."
그도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주말부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따져보았다.
그의 직장이 너무 멀어서 떨어져 살았지ㅡ내가 이곳의 집을 팔고 직장을 옮겨야 한다ㅡ집을 팔기에 적당한 시기인가, 손해는 보지 않겠는가ㅡ시도교류로 경기도에 갈 수 있는 확률은 높은가, 벌써 수년째 떨어진 분들도 있다던데ㅡ이곳의 깨끗하고 정돈된 환경에 겨우 적응했는데 또다시 경기도의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것인가ㅡ
집값은... 직장은... 아이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모르겠다. 일단 가자.
다시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
남편이 그 방에서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가족이니까 함께 산다.'는 가장 단순한 원칙으로 돌아가기 위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