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물건이 하나도 없네요.

by 승연



이사하던 날,

이사업체 직원들이 짐을 나르면서 했던 말들은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침대 매트리스에 오줌 자국이 많네요.

이 서랍장은 고장 난 것 같은데요.

여기 뒤쪽에 흠이 크게 났네요 알고 계셨나요?

앗, 이것도 가져가실 건가요? 버리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그들의 말을 요약하자면 집에 멀쩡한 물건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결혼한 지 10 년차니 우리집 물건들도 딱 10년을 묵었다. 성격이 털털한 편이라 매일 살림살이들을 부지런히 쓸고 닦지도 않았고 호기심 많은 아홉 살, 네 살의 아이 둘도 적극적으로 가전과 가구들을 낡고 상하게 했다. 결국 집의 웬만한 것들은 전부 금이 가거나 흠이 생기고 말았다. 처음에 이사업체 직원 분들이 견적을 내려고 오셨을 때, 집안을 둘러보며 혀를 끌끌 차던 것도 일견 수긍이 갔다. 남편과 나는 그들이 더 묻지도 않았는데 괜히 수줍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하하, 아무래도 애들이 화가가 되려나 봐요.


다들 바쁜지 대답이 없었다. 참, 썰렁했다.




신혼 살림을 장만할 때, 가장 고급스럽고 비싼 것은 텔레비전과 소파였다. 지금은 둘 다 사라지고 없지만, 그때는 욕심껏 무리하여 최고급으로 갖추었던 것들이다.


텔레비전은 남편이 가장 아끼던 가전이었다. 당시 최신 유행하던 제품으로, 살짝 휘어진 곡선의 화면에 60인치가 넘는 크기가 자못 위풍당당했다. TV는 24 평의 아담한 신혼집 거실 한 가운데에 떡하니 들어앉아 언제라도 버튼만 누르면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화면을 제공해주었다. 덕분에 퇴근 후면 그와 함께 TV를 보는 게 취미가 되었다. 매일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서 TV앞에 앉아 영화나 축구 중계 시합 등을 몰입해서 보는 것이 낙이었다.


남편은 TV를 신주단지 모시듯 애지중지했다. 수시로 곡선의 화면을 마른 걸레로 닦으며 흐뭇해하는 그를 보면서, 농담조로 TV가 나보다 더 좋냐며 질투나서 못봐주겠다 말정도였다.


그러나 첫째가 두 돌을 넘길 때쯤 그녀는 너무나 허망하게도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돌잡이로 골프채를 잡은 아들이 본인의 소명을 다하고 싶었는지 장난감 막대기를 멋지게 휘둘러 화면의 정중앙을 내리쳤다. 하필 그때 틀어놓은 만화에서 괴물들이 나왔던 탓이었다.


순식간에 화면의 절반은 찬란한 무지개빛 직선들에 점령되고 말았다. 아이는 신나서 점프를 뛰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나도 놀라긴 놀랐으나-특히 남편은, 몹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한 30초쯤 멍하니 섰다가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거의 절규를 했다. 남편의 모습은, 언젠가 그와 비슷한 장면을 어떤 현대 미술 퍼포먼스에서 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제목은 《죽어가는 디지털 연인을 바라보는 남자》 정도면 어울릴까? 한동안 남편은 정말 비통해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소파가 수명을 다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가위로 소파의 한 부분을 찢어놓았다. 아직 어려서인지 아이에게는 꽤 얄궂은 파괴 본능이 존재했다. 그날 내가 아끼던 듬직한 소파는, 성인의 중지 손가락 만한 크기의 자상을 입었다. 그것도 정 가운데에 위치한 치명상이었다.


이제는 내가 너무 괴로웠다. 집에 온 손님마다 일단 한번씩 앉아보면 다들 그 편안함에 감탄하던 고급 소파였다. 한때 내가 불면증으로 괴로웠을 때에 그나마 잠을 잘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하던 소파이기도 했다. 늘 든든하고 흡족하게 여기던 나의 최애 가구...


고급스러운 베이지 톤의 소파가 잿빛 상처 하나로 인해 너무 초라하고 보기싫게 변했다. 내가 며칠간 괴로워하자, 남편이 어디선가 가죽을 구해와서 임시방편으로 상처난 자리를 덧대었다. 아... 하지만 가죽의 색이 미묘하게 달라 더 튀어보였고, 소파는 더 보기싫게 변해버렸다.


한동안 소파의 흠을 가리기 위해 노력했다. 소파 깔개도 사서 덮어보고, 쿠션으로 가려도 보았지만 그는 예전의 아름답고 위풍당당하던 모습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했다. 마침내 우리는 때마침 소파가 필요하던 시댁으로 그를 입양보냈다. 용달차에 실려가는 소파를 바라보며 슬퍼하던 나의 모습은 《항상 포근히 안아주던 그와 이별한 여자》 정도로 제목을 붙일 수 있겠다.




TV와 소파를 차례대로 떠나보내고 마음 아픈 이별에 한동안 정신 못차리던 우리 부부는, 그때부터는 필요하면 가성비 좋은 저렴한 가전과 가구들 위주로 골라 사는 것으로 태도가 바뀌었다. TV는 적당히 해외직구로, 소파는 인터넷에서 30만원대 저렴한 걸로 골랐다. 그리고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고급의 물건들은 일절 집에 들이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 우리가 작은 가전이나 가구를 새로 사들여야 할 때는 '이케아' 혹은 '당근'부터 찾아보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 되었다.


그후 이사업체 팀장님이 농담하듯 던진 말이, 집에 멀쩡한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사는 좋은 동네로 가는데 가구들은 다 낡았어요. 왜 이렇게 아끼세요?"


전부 버리는 것들인 줄 알았는데 우리 부부가 가져가겠다고 하니 하시는 말씀이었다.(우린 민망해서 그냥 계속 웃었더랬다.)


사치의 끝은 가구와 그릇이라 했나. 5년, 꼭 5년 후에는 집에 우리의 취향을 반영해서 아름답고 귀한 것들로 다시 채워보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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