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9세 이상의 분들만 대답해 주십시오.
레고 블럭을 밟고도 안 아픈 척 할 수 있나요?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을 때에 손바닥에 땀이 나진 않나요?
코로나 진단검사를 받을 때 미동 없이 가만히 있었나요?
공포영화 보면서 한 번도 눈을 가리지 않을 자신 있나요? 있다고요? 분명히 '한 번도'라고 말했습니다만.
알약 한웅큼(다섯 알 이상)을 한 번에 삼킬 수도 있겠네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슬픈 장면을 봐도 눈물을 참을 수도 있고요?
(여자분들만) 자연분만할 때 욕을 안할 자신 있나요?
다들 자신 있다고요. 와, 네, 대단하시군요. 정말 어른들이시군요.
또 저 혼자 나잇값 못하는 아줌마가 됐고요. 주위에 저 같은 어른을 본 적은 없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봤습니다.
참고로 저는 마흔입니다. 저는 못참습니다. 며칠 전 무심결에 레고 블럭을 밟은 순간 고함을 지르고 한참을 거실 바닥에 뒹굴었습니다. 콩벌레처럼 몸을 둥그렇게 말았죠. 정말 발바닥에 구멍이 난 줄 알았거든요. 치과 신경치료를 받으면서는 으어어 목청을 돋우고 왼손을 정신사납게 흔들다가 아직 시작 안했어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핀잔을 들었습니다. 분명 시리고 아팠는데 이상했습니다. 그러니까 진작에 곰인형 하나 손에 쥐어주셨어야죠, 선생님. 코로나 검사를 받을 때는 또 어땠냐고요?아팠어요. 자꾸만 고개를 뒤로 빼서 헌신적인 한 의료진을 아주 짜증나게 만들었습니다. 알약이나 공포영화는... 더 이상은 노 코멘트하겠습니다. 더 말 안해도 이젠 잘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절 보며 남편은 말하더군요. 네가 군대를 한번 다녀왔어야 되는데. 그럼 뭐가 됐든 싹 다 고쳐졌을 거라고요.
그런데요, 궁금합니다. 어른이 됐다고 해서 갑자기 감정이나 통각이 없어지는 것도 아닐텐데, 몇 살부터 그렇게 아픔을 잘 참아내는 걸까요? 삶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감내하다보면 그까짓 레고 블럭이나 치과 치료쯤은 아무것도 아닌 걸까요. 인생의 쓴 맛이 너무 강해서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는 아픔들에는 무덤덤하게 굴 수 있게 되는 걸까요.
물론 제가 보통 사람들보다 타고난 감각이 예민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저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어른들이 다들 짠 것마냥 담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솔직히 아프면 아, 소리 정도는 낼 수 있잖아요. 눈물 한 방울쯤 흘려도 아무도 뭐라고 안하잖아요.
가끔 액션 영화나 드라마 보면 총상을 입은 주인공이 스스로 배나 팔을 째서 총알을 빼내고 상처에 술을 콸콸 들이부어 소독하는 장면 같은 게 나오잖아요. 상처 주변으로 부글부글 거품이 끓어오를 때 독하게 고통을 참는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비장한 음악이 흐르고... 다들 그런 걸 보면서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힌 걸까요.
육체적 고통 뿐만이 아니라 왜 살면서 울고 싶어지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항상 다들 꾹꾹 참아내더라구요.
아무래도 다들 알고 저만 모르는 '참는 비법'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좀 알려주세요. 아이들에겐 비밀로 할게요. 안아픈 척 하는 법, 눈물이 나도 참는 법, 저도 좀 알게요. 그래야 어른다우니까요.
살면서 점점, 이 정도면 정말 나한테 큰 하자라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다. 같은 어른이면서도 보통의 아이들이 울 법한 상황이면 나 역시 눈물이 줄줄 나왔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불편한 감정들은 커져만 갔다. 어른스럽게 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은 갈수록 많아졌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둘이나 낳았다. 주사기도 무서워하는 여자가 출산인들 뭐가 달랐을까. 몇 번의 신음 만으로 아이를 낳는다면 참 좋았겠지만 당연하게도 난 온갖 난리를 다 치면서 두 아이를 낳았다.
조금이나마 의연하게 대처해보고자 인터넷에서 미리 출산후기들을 검색해서 읽었는데 괜한 짓이었다.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느낌이라고도 하고 코끼리가 배 위에서 뛰어노는 듯하다고도 쓴 글에 공포심은 배가 되었다. 다들 허풍이 심하시네, 익명이라고 너무 과장했네, 하면서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막상 출산을 해보니 그들의 후기에 과장은 없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직장 동료 중에 늘 야무지게 행동해서 감탄이 나오는 똑순이 선생님이 있었다. 그녀는 출산 전에 산통을 줄여주는 산전 요가를 배우러 다니고 라마즈 호흡법을 익혔다. 그러더니 자연주의 출산 전문 병원에서 아기의 정서를 위해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리고 체구도 작았지만 그녀는 정말 준비된 어른이자 엄마였다.
그에 반해 나는... 어른스럽지 않았다. 그날의 진상 산모에 선정되고 말았다. 초산일 때는 다행히도 네 시간 만에 아기가 나와서 진상짓을 덜할 수 있었다. 그땐 간호사들이 내가 심상치 않은 겁쟁이인 것을 알고 무통주사도 적절하게 놔주었다. 그러나 둘째는 동탄에 있는 한 병원에서 낳았는데 알고보니 그곳은 무통주사를 최소한으로 한다고 했다. 산모와 태아 둘 다에 좋지 않기 때문이라 했는데 아무튼 나는 모르던 사실이었다.
둘째를 낳을 때는 하루종일 산통이 지속됐다. 그리고 그날, 나는 할 수 있는 진상 짓을 다 했다. 엑소시즘을 다룬 영화를 보면 으레 첫 장면에 악마에 빙의돼서 침대에 묶인 채로 발광하는 이가 나오지 않던가. 그때의 나도 그런 느낌이라 보면 되었다. 악마에 빙의된 산모. 몸 속에 손을 넣어서 휘젓는 내진부터 너무 아파서 분노가 치밀었다. 있는 힘껏 몸을 비틀어대며 방해를 해서 간호사들의 이마에 내천자가 그려지게 했다.
무엇보다도 제일 가까이 붙어있던 남편이 제일 고생했다. 나는 온종일 남편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여보, 너무 아파. 무통 좀 놔줘 무통... 내 손이 닿기 편한 위치에 그의 머리가 있었다면 앙칼지게 머리카락도 뜯었을 것 같다. 신음하다가 숫자 욕을 내뱉다가 그래도 아픔이 가시지 않으면 차라리 날 죽여를 외쳤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가 울기를 반복했다. 이른 아침 병실에 들어왔는데 밤 11시가 넘어서야 가냘픈 둘째의 울음소리를 들었으니. 퇴마의식은 온종일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밤 12시. 평화로운 후처치 시간이었다. 나도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병실 저쪽 구석에 나만큼이나 지친 남편이 간이침대에 드러누워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내 몸 어딘가가 찢어졌다며 한땀 한땀 섬세하게 바느질을 해주었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중년의 간호사는 날 질책했다. “산모님, 출산이 처음도 아니면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울면 되겠어요? 참 유난이네요, 진짜.”
진심으로 미안했다. 제가 잘 못참아서요. 죄송합니다. 그녀의 못마땅한 시선과 날카로운 말투에서 오늘의 진상 산모에 등극했음을 직감했다. 그러고보니 정말 나를 제외한 다른 방에서는 작은 신음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독한 여인들, 같이 좀 울부짖어 주시지...
아야, 그 순간 아래가 너무 따끔했다. 또다시 참지 못하고 왼발로 의사 선생님의 어깨를 차버렸다. 그는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간호사를 나무랐다. "그냥 무통 좀 놔주지 그랬어." 아... 이제 그녀는 나를 더 미워하게 될 것이다. 나는 마취주사를 두세 방 맞고 나서야 누워서나마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바람같이 사라지고 개인 병실로 옮겨질 때 그 간호사는 다시 한번 내게 쏘아붙였다.“아니, 선생님이 이렇게 예쁘게 꼬매줬는데 그걸 못참아서 그래요?”
예쁜지 안예쁜지 저한테는 안보이는 걸요... 그러면서도 그날따라 많이 힘들었을 그 간호사에게 끝까지 사죄하는 걸 잊지는 않았다. 그날 한 백 번은 사과했나.
죄송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아이를 둘 낳고나니 그 사실 만으로도 조금 용기가 생기긴 했다. 애도 낳았는데 이쯤이야...싶은 일들이 많아졌다. 아이들의 토나 응가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맨 손으로 받아내는 용기. 편식하는 아이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으름장을 놓는 용기. 독감예방접종 같은 아픔쯤은 큰 표정 변화 없이 맞는 용기. 그 정도의 용기는 생겼다.
이제는 남들처럼 의연하게 잘 참으면 될 일이다.
쉽게 안 울고, 안 웃고, 안 아픈 척만 잘 한다면. 그러면 좀 더 어른스럽게 보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