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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끄적끄적

안아픈 척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참아야 어른이다.

by 승연


만 19세 이상의 분들만 대답해 주십시오.


레고 블럭을 밟고도 안 아픈 척 할 수 있나요?

공포영화 보면서 한 번도 눈을 가리지 않을 자신 있나요?

알약 한웅큼을 한 번에 삼킬 수도 있겠네요?

드라마에서 슬픈 장면을 봐도 눈물을 참을 수도 있고요?

다들 자신 있다고요. 와, 네, 대단하시군요.

정말 잘 참는 어른들이시네요. 또 저 혼자 나잇값 못하는 아줌마가 됐고요. 주위에 저 같은 어른을 본 적은 없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봤습니다.


저는 잘 못참습니다. 며칠 전 무심결에 레고 블럭을 밟은 순간 콩벌레처럼 되어 거실 바닥을 뒹굴었구요. 치과 신경치료를 받으면서는 으어어 하다가 아직 시작 안했어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핀잔을 들었습니다. 분명 시리고 아팠는데 이상했어요. 헌신적인 한 의료진을 짜증나게 만들었죠. 더 이상은 노 코멘트하겠습니다. 절 보며 남편은 말하더군요. 네가 군대를 한번 다녀왔어야 되는데. 그럼 뭐가 됐든 싹 다 고쳐졌을 거라고요.


궁금합니다. 어른이 됐다고 해서 갑자기 감정이나 통각이 없어지는 것도 아닐텐데, 몇 살부터 다들 그렇게 아픔을 잘 참아내는 걸까요? 삶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감내하다보면 그까짓 레고 블럭이나 치과 치료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걸까요. 인생의 쓴 맛이 너무 강해서 점차 무덤덤하게 굴 수 있도록 변하는 걸까요.


그래도 주변의 모든 어른들이 다들 짠 것마냥 웬만한 고통들에 담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솔직히 아프면 아, 소리 정도는 낼 수 있잖아요.


가끔 액션 영화나 드라마 보면 총상을 입은 주인공이 스스로 상처에 술을 콸콸 들이부어 소독하는 장면 같은 게 나오잖아요. 상처 주변으로 부글부글 거품이 끓어오를 때 독하게 고통을 참는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다들 그런 걸 보면서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힌 걸까요.


육체적 고통 뿐만이 아닙니다. 왜, 살면서 울고 싶어지는 일들이 있잖아요. 독하게도 다들 꾹꾹 참아내더라구요.

아무래도 다들 알고 저만 모르는 '어른들의 참는 비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살면서 점점, 이 정도면 정말 나한테 큰 하자라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다. 나이를 먹어도 참을성이란 게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그러면서도 아이는 둘이나 낳았다. 주사기도 무서워하는 여자가 출산인들 뭐가 달랐을까. 번의 신음으로 아이를 낳는다면 참 좋았겠지만 나는 어른답지 못하게 온갖 유난을 떨며 두 아이를 낳았다.


조금이나마 의연하게 대처해보고자 인터넷에서 미리 출산후기들을 검색해서 읽었는데 괜한 짓이었다.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느낌이라고도 하고 코끼리가 배 위에서 뛰어노는 듯하다고도 쓴 글에 공포심은 배가 되었다.


직장 동료 중에 늘 야무지게 행동해서 감탄이 나오는 똑순이 선생님이 있었다. 그녀는 출산 전에 산통을 줄여주는 산전 요가를 배우러 다니고 라마즈 호흡법을 익혔다. 그러더니 자연주의 출산 전문 병원에서 아기를 위해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나보다 한참 어리고 체구도 작았지만 그녀는 정말 준비된 어른이자 엄마였다.


그에 반해 나는... 어른스럽지 않았다. 다행히도 초산일 때는 네 시간 만에 아기가 나와서 진상짓을 덜할 수 있었지만 그땐 간호사들이 내가 심상치 않은 겁쟁이인 것을 눈치채고 무통주사를 적절하게 놔준 공이 컸다.


그러나 둘째는 집 근처 가장 가까운 병원에서 낳았는데 알고보니 그곳은 무통주사를 최최소한으로하는 자연주의적 병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애를 낳고난 후에야 알았다는 슬픈 이야기...)


둘째를 낳을 때는 종일 산통이 지속됐다.

그리고 그날, 나는 할 수 있는 진상 짓을 다 했다.


엑소시즘을 다룬 영화를 보면 으레 첫 장면에 악마에 빙의돼서 침대에 묶인 채로 발광하는 이가 나오지 않던가. 그때의 내가 그랬다. 악마에 빙의된 산모. 내진부터 상상 이상으로 아파서 화가 났다. 있는 힘껏 몸을 비틀어대고 소리를 질렀다. 거기다 가장 가까이, 오래 붙어 있었던 남편 역시 그날 나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난 그날 남편의 멱살을 잡고 신나게 흔들어댔다.


신음하다가 숫자 욕을 내뱉다가 그래도 아픔이 가시지 않으면 차라리 죽여를 외쳤다. 실성한 듯이 웃다가 울기를 반복했다. 그날 이른 아침 병실에 들어왔는데 밤 11시가 넘어서야 가냘픈 둘째의 울음소리를 들었으니. 유난스런 퇴마의식은 종일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결국 밤 12시에 가까운 시각에서야, 아이를 낳았다.

평화로운 후처치 시간. 나도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병실 저쪽 구석에 온종일 시달려 나만큼이나 지친 남편이 간이침대에 드러누워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내 몸 어딘가가 찢어졌다며 한땀 한땀 섬세하게 바느질을 해주었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옆에 선 중년의 간호사는 날 질책했다. “산모님, 출산이 처음도 아니면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울면 되겠어요? 참 유난이네요, 진짜.


진심으로 미안했다. 아픈 걸 잘 못 참겠어요, 죄송합니다. 그녀의 못마땅한 시선과 날카로운 말투에서 나는 오늘의 진상 산모에 등극했음을 직감했다. 그러고보니 정말 다른 방에서는 신음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독한 여인들, 같이 좀 울부짖어 주시지...


아야, 그 순간 아래가 너무 따끔하다. 나는 또다시 참지 못하고 왼발로 의사 선생님의 어깨를 차버렸다. 그는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간호사를 나무랐다. "그냥 무통 좀 놔주지 그랬어." 아... 이제 그녀는 나를 더 미워하게 될 것이다. 나는 마취주사를 두세 방 맞고 나서야 드디어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바람같이 사라지고 개인 병실로 옮겨질 때 좀 전의 그 간호사는 다시 한번 내게 쏘아붙였다.“아니, 선생님이 이렇게 예쁘게 꼬매줬는데 그걸 못참아서 그래요?


예쁜지 안예쁜지 저한테는 안보이는 걸요...





그래도 아이를 둘 낳고나니 조금 용기가 생기긴 했다. 애도 낳았는데 이쯤이야...싶은 일들이 많아졌달까. 아이들의 토나 응가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맨 손으로 받아내는 용기. 편식하는 아이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으름장을 놓는 용기. 독감예방접종은 표정 변화 없이 맞는 용기.

드디어 정도의 용기는 생겼다.


내게도 의연히 고통을 참아내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안 울고, 안 웃고, 안 아픈 척만 잘 한다면.

제법 어른스럽게 보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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