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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Sep 14. 2023

마흔, 죽기에는 아쉬운 나이

올해 마흔이 되었다.


내게는 상징적인 나이였다. 어릴 때 마흔은 죽어도 아쉽지 않은,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막 마흔이 되고 보니, 죽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너네, 마흔 살이 돼도 이렇게 시끄럽게 살 거니? ”  

        

대책 없이 해맑기만 한 중학교 1학년 교실은 어른이 참기에는 지나치게 소란스러웠다. 담임 선생님이 칠판에 흰 분필로 ‘교실내 정숙’을 또박또박 적으며 나무라듯이 던지신 말씀에, 열네 살의 나는 처음으로 마흔 살의 나를 상상했다.          


 마흔 살이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데?         


궁금했다. 열일곱 살이나 스물세 살의 ‘예쁜 언니야’가 된 나의 모습을 그려본 적은 그 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40살이 넘은 나의 모습은 너무 까마득한 미래의 것이었다. 연예인이랑 놀이공원 데이트를 하거나 학교 안가고 땡땡이치는 상상은 꽤 많이 한 것 같은데, 늙어버린 나는 순간적으로라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마흔이란- 그 나잇대 사람은 아빠, 엄마, 지루한 선생님들, 배 나온 동네 슈퍼 사장님, 신경질적인 옆집 아줌마, 버스에 전철에 가득 들어찬 양복 입은 사람들… 아무튼 그 모든 ‘아저씨와 아줌마’들을 말하는 것 같기는 했다. 이제 막 교복을 맞춰입은 내 관점에서는 도저히 관심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매력 없는 사람들. 그래도 마흔 살 언저리인 듯한 선생님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드디어 어린 내게 마흔이란 나이를 처음으로 상상하게끔 만들었다.


 ‘마흔살의 나는 어른이다. 그때는 맨날 화장해야지.(미래의 나: 귀찮다...) 아직 무슨 일 할지는 안 정했지만 일할 때에는 뾰족한 하이힐을 신을거야.(미래의 나: 하이힐 안돼. 족저근막염 조심!) 잘생긴 남자를 만나서 결혼도 하겠지(미래의 나: 결혼은 했는데 잘생...은 모르겠네.) 엄청 큰 집에서 살고 빨간색 자동차도 살거야.(미래의 나: 국평이라고 있는데 그 정도 집에 살아. 차는 흰색으로 샀어. 중고로 팔 때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단다.)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스토랑에 가서 돈까스를 먹을테다.(미래의 나: 요즘 레스토랑에서 돈까스 안 판다.) 아들 한 명, 딸 한 명 예쁜 아기도 낳을거다.'


파스텔 색상이던 상상 속 세상이 왠지 흑백톤으로 바뀌었다.          


 ‘마흔 살이면 조금은 늙었겠지. 선생님이 지금의 우리가 제일 예쁠 때라고, 부럽다고 했으니까. 결혼하고 아기낳고 일하고 그 다음에 뭐하지?'

      

 무표정으로 시들시들 살아가는 주변의 마흔 살들이 떠올랐다. 최악이다. 더 이상 상상하기 싫어졌다. 그때부터는 죽어도 아쉬울 건 없겠다 싶었다. 잠시나마 상상의 나래를 펼친 철없는 열네 살이 도출해낸 결론이었다.

 죽어도 크게 아쉽지 않은 나이, 마흔.  


실제로 마흔이 된 나는 꽤 많은 걸 이룰 수 있었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짝도 찾았다. 종족 번식에도 두 번이나 성공하여 상상만 하던 아들과 딸의 엄마가 되었다. 울고 싶어도 울지 않고 참는 능력이 생겼으며 짓궂게 놀리고 싶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시종일관 점잖게 응대할 수 있게 되었다. 주식이나 부동산 동향에 관한 대화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뾰족한 주사바늘을 무서워하고 알약을 잘 삼키지 못한다. 밥보다 젤리가 더 맛있고 이 닦는 일이 너무 귀찮다. 나이만 먹었지 그대로다 싶은 것도 참~ 많다. 공자는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 했지만 나는 아직도 세상 모든 것에 흔들리고 미혹당한다.


 무엇보다도 막상 데드라인에 서고보니 ‘죽어도 아쉽지 않을 나이’ 같은 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죽기 싫은 건 열네 살이나 마흔 살이나 똑같았다. '인생은 60부터, 99세까지 88하게 살자!'를 외치는 양가 부모님은 아직도 나와 남편을 '철없는 애들'이라 불렀고 '이젠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사시는 여든의 외할머니도 속으로는 그래도 생에의 아쉬움을 주렁주렁 달고 계실 거라 생각했다. 만약에 저승사자가 ‘너 이제 죽어도 된다고 했다며-’ 하고 나를 데리러 온다면 나는 다급하게 '취소, 취소'를 외치며 거세게 반항할 것이다. 그래도 끝내 죽인다면 너무 아깝고 원통해서 두 눈을 크게 부릅뜬 채 죽지 않을까.


 “제가 은행 대출 이자 갚느라 힘들었거든요. 남편은 한강변 아파트에 살아보는 게 꿈인데요, 아직 못 살아봤어요… ”           

 

앗, 너무 속물 같나. 어이 없어서 바로 데려갈 것 같다. "네 말 듣고 생각해봤는데 별로 안타깝지 않아. 죽어도 괜찮겠어." 잠시만요, 좀 더 생각해볼게요.  

 

 아이들이 너무 어리고요(동정심 유발), 제가 저를 다 알지 못했습니다(뭔가 그럴듯 해보인다). 그리고 마흔은 아직 너무 젊은 나이입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들이 너무 많습니다. 박완서는 마흔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링컨은 51세에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실패를 밥먹듯이 했습니다. 배움에의 열정으로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6,70대의 만학도들 좀 보세요. 이처럼 저에게도 40년쯤 시간을 더 주신다면 앞으로 뭐라도 하나 이뤄보고 죽지 않겠습니까아!(어쩐지 웅변대회 느낌) ”          

 

 아, 한없이 가볍다. 좀 더 그럴 듯한 뒷말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저승사자 그분을 설득할 수 있을 때까지 왜 마흔은 죽기에 너무 아쉬운 나이인지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보려 한다.

정말로 죽어도 후련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눈 감을 그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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