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난 많은 책 중 카뮈를 읽고 있을까

명분 : 나를 행동하게 만드는 무언가

by 이시정

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다.

어린 시절에는 ‘무의식’이라는 단어에 꽂혔고, 무의식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몇 가지 있다.

‘가치관’, ‘명분’, ‘정체성’이다.

오늘은 ‘가치관’,‘명분’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고 싶어졌다.


가치관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경험을 통해 생성된 가치관은 여러 방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식습관, 하루패턴, 핸드폰을 보는 시간의 총량, 읽고 있는 책, 대화 속 내용들 하물며 그의 쓰레기통을 뒤져서라도 확인할 수 있다.


건강을 유독 신경 쓰는 사람은 주변 사람이 아팠던 경험이 있을 확률이 높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은 돈이 없는 가난함의 슬픔을 알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

새로운 이성친구를 사귈 때 그 사람의 폭력성이나 바람기의 여부에 민감한 사람은 이전 연애에서 그로 인한 상처를 받았을 확률이 높다.


주말에 등산을 하러 가는 사람들과 주말에 술과 과식을 즐기고 있는 사람과의 가치관은 다를 것이다.

(술과 과식을 즐기고 있는 사람의 가치관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일 것이다)


예시를 좀 더 들어보자면, 책을 고를 때도 사람마다 명분이 있다.

이제 막 입사한 신입에게는 문학 작품보다는 엑셀을 알려주는 책을 사야 할 명분이 있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집은 책의 종이를 후루룩 넘기다 보이는 가슴에 와닿는 문장 하나가 책을 사야하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

가격도 명분이 될 수 있다. 내가 느끼는 책의 가치가 가격에 비해 높냐 낮냐도 내가 책을 살 수도 안 살 수도 있게 하는 명분이다 (가끔은 정말 별로라고 생각하는 책이 겉만 화려하고 값이 비싸면, 셰익스피어 책도 9천 원인데,,, 하고 내려놓게 만든다)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가치관 이것들은 경험이 만들어준 명분이다.


한때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던 시기가 지나고 많은 사람들이 신과 종교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그리고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느꼈고, 미래보다 현재의 즐거움을 더 중요하게 느끼게 되고, 수많은 쾌락주의자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경험은 명분을 만들어준다. 가치관을 형성해 줄 명분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가치관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명분에 따라 움직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조선을 침략했을 때 명나라를 지나가기 위해서 조선의 땅을 밟아야 한다는 명분을 만들었다.


전쟁에도 명분이 필요하고, 나의 사소한 행동에도 명분이 필요하다.

그리고 명분은 모든 행동과 생각에 합리성을 불어넣고, 사람이 행동하기에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예를 들어 비가 미친 듯이 오는 날에는 내가 수영을 안 갈 명분을 만들기가 쉽다.


하지만 두 갈래의 길이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된다.

‘죽음’을 목격한 사람은 ‘죽음’이라는 것이 멀리 있지 않구나 하고 수용할 수도 있고, 반면 ‘죽음’의 두려움을 느낀 이는 죽음과의 거리를 더 멀리 두기 위해서 삶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아등바등한 인생이 될 수도 있다. 이건 개인의 선택이고 개인의 성향이다.

(가치관과 경험이 100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중요한 건 경험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유’하게 만들고, ‘사유’로 인해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명분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알베르 카뮈는 젊은 시절부터 폐렴을 앓고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카뮈의 작품은 ‘죽음‘이 많다.

이방인, 페스트 등

하지만 죽음과 내 삶은 거리가 먼 듯하다. 그래서 평소에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나에게 카뮈의 작품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를 이해해 보고자 읽은 [시지프 신화]를 읽으니 더 이해를 못 하겠다.

(한 땀 한 땀 장인 정신으로 읽어야 한다. 가방에 넣고 읽고 다닐 책은 절대 아니다. 그래도 잘 읽고 있다)


그러다 한번 섬뜻했을 때가 있었다.

죽음은 바로 옆에 있구나 느꼈던 순간


그리고 다시 카뮈의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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